[단독]내진설계 건물도 위험…지반분류, 1997년 미국 기준 그대로

[the300][런치리포트-지진대응 체계의 민낯]①지난 3월 지진법 개정 됐지만 관련법 정비 안돼…"내년말 적용될듯"

김민우, 이건희 기자 l 2017.11.21 06:21

내진설계기준에서 사용하는 지반분류체계가 1997년 미국 서부해안지역 기준을 그대로 준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진설계를 한 건축물이라도 지반상황에 따라 지진피해를 그대로 입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 등에 따르면 올해 이전에 건축된 건물의 내진설계기준은 1997년도 미국서부 해안지역의 기준을 그대로 준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특수한 지반체계를 고려하지 않은 내진설계기준에 따라 '내진설계' 또는 '내진보강'이 이뤄지고 있었던 셈이다. 

정부는 '내진성능 평가요령'에 따라 기존 시설물의 내진 보강을 수행하고 있다. 내진 보강 여부와 규모는  지진이 시설물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지진하중'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실효성있는 내진 보강을 위해서는 '지진하중'을 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약한 토사지반 위에 건설된 시설물의 지진하중은 보통암지반 위에 건설된 시설물의 지진하중보다 2배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내진보강을 위한 지반종류 선택은 대부분 시공 당시 시행된 표준관입 시험결과를 기준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대부분의 지반조사는 '보통암'의 위치를 파악하지 않고 있다. 보통암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지진하중을 산정하기 위한 적정한 지반분류가 이뤄질 수 없다. 

정부는 지난 3월 지진·화산재해대책법 개정을통해 지진설계 기준의 지반조건 사항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시설물 내진보강을 위해서는 지반의 전단파 속도를 측정, 지반종류를 확인하고 지진하중을 계산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적용받는 건축기준과 도로설계기준 등 하위기준의 정비가 아직 마무리 되지 않았다. 재난안전관리본부 관계자는 "지진법 개정에 따라 내진설계를 해야하는 시설물 31종에 대해 공통 기준사항에 맞춰 내년말까지 계정하도록 계획돼다"고 설명했다.

3년전에 지은 내진설계 1등급 신축 아파트가 이번 지진에 맥없이 파손된 것도 이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이번 포항 지역은 지진 발생 이후 토사물이 뿜어져 올라오는 '액상화'현상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금까지 정확한 '지반조사' 없이 이뤄지는 내진보강 사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안태훈 국회 예정처 예산분석관은 "정부가 지난 3월에 발표한 내진설계기준 공통적용사항에 맞춰 각 시설물들의 내진설계기준을 개정한 이후 내진보강을 추진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행안부가 지난 5월 발표한 '내진보강대책 추진결과 공시'에 따르면 전체 공공시설물의 내진율(2016년 기준)은 43.7%다. 도시철도가 81.4%로 가장 높고 학교시설은 23.1%로 전체 평균보다도 20% 포인트 낮다. 내진보강률은 2015년 대비 공공건축물이 1.1%, 도로시설물이 2.0%, 고속철도가 3.3%, 병원시설이 0.4% 증가하는 동안 학교 시설의 내진율은 0.3% 각각 증가했다.

그러나 이는 일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주먹구구식 행정이라는 비난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그동안 추진해온 내진보강 사업이 각 지역의 지반상화에 따라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진하중'계산의 핵심이 될 지반조사 예산조차 편성 돼있지 않은 점도 문제다. 지반조사 예산 뿐아니라 지진관련 예산도 줄었다. 예정처 분석에 따르면 지난 9월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 가운데 지진 방재 예산은 3165억 수준으로 올해 예산(3668억원) 대비 503억원 이상 줄었다. 특히 내진 보강 사업의 내년도 예산은 2466억원으로 올해 예산(2877억원)보다 411억원 감소했다. 정부가 이번 포항 지진 발생 전에 제출한 예산안이지만, 지난해 9월 경북 경주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것을 감안하면 안이한 예산 편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