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테러지원국 재지정…수출·금융·원조 '꽁꽁', 상징효과에 무게

[the300]행정부 재량사항으로 미 국내법에 적용…추가적 제재효과보다 '불량국가' 상징적 효과 클 듯

박소연 기자 l 2017.11.21 11:36

/사진=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북한을 9년 만에 테러지정국으로 재지정한 것은 대북 압박·제재를 최고수위로 끌어올리겠다는 대내외적 의지의 천명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미 북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와 독자제재가 전방위적으로 실행 중이어서 '불량국가'로 낙인찍는 상징적 효과 외에 이번 제재로 인한 실질적 변화는 미미할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각료회의를 주재하며 "북한은 핵 초토화로 전 세계를 위협하는 것에 더해 외국 영토에서의 암살 등을 포함한 국제적인 테러리즘을 지원하는 행동을 되풀이해왔다"며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못박았다.


미 국무부는 테러 확산을 막는 차원에서 1978년부터 테러지원국을 지정해 각종 압박을 가했다. 테러지원국이란 국제 테러리즘 활동을 끊임없이 지원하는 나라이거나 정치적 분쟁이 잦아 테러에 준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곳을 의미한다. 원칙적으로 미국의 국내법에만 적용되는 용어이지만 전세계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미국은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나라에 무기수출통제법·수출관리법·국제금융기관법·대외원조법·적성국교역법 등 5개 법률에 근거해 제재를 가하게 된다.


테러지원국이 되면 우선 무기 관련 수출과 판매가 금지되고, 민군 겸용(dual-use)으로 쓰일 수 있는 물품의 수출도 엄격히 통제된다.


아울러 수출관리법의 시행법규인 수출관리규정(EAR)에 따라 적용되는 규제가 국가마다 다르지만, 엄격한 수출 통제를 받게 된다. 미국의 대학이나 연구기관 등이 해당국과 교류할 때도 미국 정부의 관련 법 규정 이행과 관련해 법적 해석을 받아 허가받아야 가능해진다. 미국의 대외 경제원조도 금지된다.


또 국제금융기구 가입 및 금융지원 금지 등 금융제재도 가해 해당국의 '돈줄'을 차단하게 된다. 미국은 테러지원국에 대해 유엔 결의와는 다른 별도의 법률을 통해 압력을 넣을 수 있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재무부가 내일 북한에 대한 거대한 추가제재를 발표할 것이며 2주가 지나면 제재는 최고의 수준이 될 것"이라고 선전포고했다.


다만 이번 테러지원국 지정에 따른 제재는 상당 부분 현재 실행중인 안보리 결의, 미국의 독자제재와 중복돼 추가적인 제재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사진=뉴스1

테러지원국 지정은 입법사항이 아닌 행정부의 재량사항으로,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 판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 국무부는 테러지원국 지정 요건으로 테러조직에 대한 기획·훈련·수송·물질 지원, 직·간접적인 금융지원 등을 밝히고 있는데,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러한 요건에 충분히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지난 2월 김정남이 대량살상무기(WMD)인 신경작용제 VX를 통해 암살당하고, 북한에 억류됐다 석방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6월 사망하면서 미국 내에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져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국무부는 앞으로 매년 4월30일까지 테러지원국에 관한 보고서를 내야 한다.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려면 미 대통령이 의회에 해제 요청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행정적 절차를 거쳐야 하며, 보고서에는 △해당국 정부 리더십이나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 발생 △해당국의 국제 테러리즘 지원 행위 중단 △앞으로 해당국이 국제 테러리즘 지원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확약이 담겨있어야 한다.


북한은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을 계기로 미국 국무부에 의해 1988년 1월 처음으로 테러지원국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08년 10월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하고 핵 검증에 합의하며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빠졌다. 북한이 이후 수차례 추가적 핵실험과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등을 감행했으나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테러의 개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 등을 들어 재지정을 거부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이번 테러지원국 재지정으로 북미 대화의 기회가 사실상 끝난 것이라며 우려를 제기하지만,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아직 외교적 해법이 유효하다며 북한이 대화테이블로 나올 것을 촉구하는 등 출구를 열어놓은 상태다. 실제 미국은 2014년 테러지원국이었던 쿠바와 관계복원을 선언하고 이듬해 쿠바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33년 만에 삭제한 전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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