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러슨 "北과 조건없는 대화"에도 정부 '신중론'…왜?

[the300]백악관 "트럼프 대북견해 불변"…대화 '훈풍' 맞지만 공식제안은 아냐

박소연 기자 l 2017.12.13 17:53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부 장관이 12일(현지시간) 워싱턴의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과 국제교류재단 공동 주최 '환태평양 시대의 한미 파트너십 재구상' 토론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를 언급하면서 북미 간 대화국면이 열릴지 관심이 집중된다. 다만 실제 미국이 북한과 대화 의지가 있는지는 추후 행동을 지켜보며 판단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12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틸러슨 장관은 이날 미국 워싱턴DC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실이 공동 주최한 포럼 연설에서 "우리는 전제조건 없는 첫 만남을 가질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전에 조건으로 내걸었던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60일 중단'도 없앴다. 그는 북한이 원한다면 일단 만나 날씨에 대해서라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며 탐색적 대화는 조건 없이 열릴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틸러슨은 이전에도 북한에 대화의 문이 열려있다는 입장을 밝혀왔으나 이번엔 최초로 '조건없는 대화'를 입에 올렸단 점에서 '비핵화 대화'에 부담감을 갖는 북한을 대화로 이끌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틸러슨 장관은 이날 "대화 시작 전 북한에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라고 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며 문턱을 낮춘 '단계적' 북핵 협상 로드맵을 언급했다.


틸러슨 장관의 발언은 최근 북한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기조와 더불어 북미 간 대화 성사 기대를 높이고 있다. 북한은 최근 방북한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과의 만남에서 유엔과의 의사소통을 정례화하기로 합의했다. 내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의 방북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다만 틸러슨의 이번 발언이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닌 토론회 발언이란 점, 백악관과의 조율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점 등의 이유로 평가를 유보해야 한단 분석도 나온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북한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견해는 바뀌지 않았다"며 "북한은 위험한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외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틸러슨 장관의 발언을 승인했는지 분명치 않다는 논평을 내놓고 있다.


앞서 지난 9월 말 틸러슨 장관이 중국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 후 "우리는 북한과 두 세 개의 대화채널을 열어두고 있다"고 언급하며 북미 간 막후채널을 공개했으나, 이튿날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리틀 로켓맨(김정은)'과 협상하는 것은 시간낭비"라며 일축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틸러슨 장관의 발언에 대해 아직 직접적인 반응을 내지 않았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과 틸러슨 장관이 대북 해법을 놓고 수차례 '엇박자'를 드러낸 가운데 이것이 대북 압박과 대화를 병행하기 위한 양측의 전략적 역할분담이란 해석도 제기돼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틸러슨의 발언이 백악관과 조율된 발언인지 개인 입장인지 분명치 않고, 조율된 입장이라 해도 트럼프와 전략적으로 대북대화-압박으로 문제해결 방식을 분담한 것일 수 있다"며 "틸러슨의 메시지가 진정성이 있으려면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어떤 급에서 어떻게 만나자는 공식적 제안이 나와야 하며 그래야 북한도 호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만 최근 북한이 내부적으로 핵무력 완성 선포 후 도발보다 체제결속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러시아와 유엔, IOC와 접촉하는 것을 봤을 때 북한도 국면전환의 큰 틀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우리 정부는 일단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13일 서면 입장발표를 통해 "틸러슨 장관의 발언은 북한이 도발과 위협을 중단하고 대화에 복귀해야 한다는 미측의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으로 평가한다"는 원론적 수준의 논평을 내놨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도 같은 날 정례브리핑에서 "한미 양국은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위해 입장을 같이하고 노력하고 있다"며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대화가 조속히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중국을 국빈방문 중인 가운데 북미 간 대화에서 중국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 CCTV 인터넷판 등 관영매체들은 이날 "미국이 크게 양보했다"며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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