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떠난 자리…"'쇼통'이 소통을 만드는 시대"

[the300][보수의 몰락-⑤멋없는 보수下]보수·진보 희미해진 자리에 '깨끗한 이미지'·'소통 이미지'가 지지감 결정

백지수 기자 l 2017.12.15 04:30

트위터리안 '평행선'이 직접 찍은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고화질 '직찍' /사진=트위터 캡처

#제19대 대통령 선거일인 지난 5월9일, 인기 아이돌 그룹 엑소(EXO)의 한 팬이 운영하는 계정에 엑소가 아닌 활짝 웃는 문재인 대선 후보의 고화질 사진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그는 1만4000여명 팔로워를 거느리며 엑소 팬들 사이에 유명한 '홈마(팬페이지 운영자)'였다. 사진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그는 지난 10월 "대통령님·지지자들 모두 함께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 올리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탄핵 이후 치러진 지난 19대 대선은 그 어느 대선보다 후보들의 '이미지'가 부각됐다. 문재인 당시 후보의 경우 이 현상이 두드러졌다. 아이돌 팬들이 '오빠' 대신 문 후보를 찍으러 음악방송 스튜디오 대신 유세장을 따라다닐 정도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은 아이돌의 작은 몸짓 하나 하나처럼 정치 팬덤 안에서 소비됐다. 특히 문 대통령에게 '우리 이니'라는 친근한 명칭까지 붙었다.

 

문 대통령도 마치 아이돌처럼 대중이 원하는 '팬서비스'를 했다. 취임 8일 만이었던 지난 5월18일 광주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 현직 대통령으로서 9년 만에 참석했다. 옛 정부에서 제창을 금했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참석자들과 불렀다.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정부군에 가족을 잃은 유가족을 끌어안으며 위로하는 '돌발 상황'도 있었다.

 

야당에서는 이런 ‘소통’ 방식을 ‘쇼통’이라고 비판했다. 보여주기식 ‘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지지율은 비판보다 환호라는 점을 보여준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200일 넘게 70% 안팎을 유지한다. 각종 지지율 조사에서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문 대통령 지지율이 과반 이상으로 높게 나타났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2030 세대 지지율은 이달 첫주 조사에서 80% 이상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소통'은 문 대통령 지지 이유 1·2위를 다툰다.

 

이미지 정치가 탄핵 이후 국면에서만 효과를 본 것은 아니다. 정권을 막론하고 중요하게 작용했다. 17대 대선 국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국밥 먹방(먹는 모습을 방송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시장통 한 허름한 국밥집. 백발의 주인 할매가 뚝배기를 내려놓자 국밥 한 술을 크게 퍼 입으로 가져가는 이 전 대통령 모습에서 서민적인 '먹방왕' 이미지가 탄생했다. 실제 그의 정치가 어떻든 '복스럽게 잘 먹는다'는 평가는 샐러리맨 출신의 자수성가 정치인이라는 그의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졌다.

 

다만 이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쌓은 서민적인 '먹방왕' 이미지는 빠르게 무너졌다. 취임 직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에 대응하며 보인 불통과 친기업적 정책들이 이어진 탓이다. 한국갤럽 조사 기준 이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2주만에 23%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취임 초 76%였던 지지율이 취임 7주 만인 4월 셋째주 조사에서 44.6%에 불과했다. 온라인상에서는 그의 '국밥 광고'를 패러디하며 '국(國)밥을 말아 먹었다'는 조롱이 이어졌다.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는 "보수가 늙고 낡고 재미없다는 이미지를 가지면서 흥미를 끌지 못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진보·보수라는 낡은 프레임 대신 2030 세대 청년들은 진정성을 가지고 세련되고 멋있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정치인들을 지지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30대 자유한국당 한 관계자도 "솔직히 보수는 쿨하지 못하고 멋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에 대해 멋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사람들 마음을 사려고 하고 고상하고 따뜻해서인데 그것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며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을 최소한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점 때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2030 세대는 정치인뿐 아니라 정당에 대해서도 메시지보다 이미지로 지지 여부를 정한다. 여당 지지자라고 밝힌 한주현(28)씨는 "민주당이 기존 정치인 외 다양한 분야에서 인재를 영입한다거나 예쁜 디자인과 굿즈(goods) 등으로 홍보를 세련되게 하는 점이 좋았다"며 "하다못해 굿즈까지 좋은 품질로 만들 수 있는 정당이라면 좋은 사람들일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친구들 중에는 각 정당 대표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이 많다"며 "그런 친구들에게 다가가려면 세련된 이미지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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