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민원조사청문회를 도입하자(하)

[the300][정재룡의 입법이야기]정치청문회 넘어 민생 다루는 민원청문회로

정재룡 국회 수석전문위원 l 2018.01.04 12:00
(상편에서 계속) 국회가 민원처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미국의회처럼 민원사항을 조사하기 위한 조사청문회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청문회제도는 역사적으로 영국에서 시민의 의회에 대한 청원권과 관련하여 발전한 것으로서, 특히 개인의 권익구제를 내용으로 하는 사법안(private bills)과 관련하여 시민의 청원이 있을 경우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발전하였다. 미국의회는 민원처리과정에서 조사청문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민원사항을 조사함으로써 국민의 권익구제와 행정통제기능을 내실화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회의 Firestone/Ford 청문회(2000년)는 일련의 치명적인 차량충돌사고들이 타이어의 결함으로 발생한 것인지를 규명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우리 국회는 1988년 13대에서 처음 도입한 조사청문회를 주로 정치적 이슈와 관련된 사건 등을 조사하는 데 이용해왔다. 그러다 보니 조사청문회는 진지하게 당해 사안의 본질을 규명하기보다는 여·야간에 정치적 공방을 전개하다가 성과 없이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로 인해 조사청문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원조사청문회는 국정조사청문회와는 달리 민원으로 제출된 국민생활 속의 사건과 문제들을 진지하게 조사하여 국민의 고충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잘못이 있는 관계자들의 책임을 추궁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입법조치 등 제도적 개선책을 강구하는 데 유효한 수단이 될 것이다.

민원조사청문회는 소규모로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의사정족수를 대폭 완화하여 2인 이상이면 청문회 운영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의회에서는 주로 소위원회가 청문회를 주관하고 있는데, 의사정족수는 하원은 2인, 상원은 1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의원 개인이 독자적으로 비공식 청문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이 갖추어진다면 일반 위원회나 소위원회 활동과 달리 민원조사청문회는 의원 개인의 활동이 크게 부각될 수 있기 때문에 비록 국민적 관심이 크지 않은 사안에 대한 청문회라 할지라도 홍보를 중시하는 의원들의 적극적 활동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민주화 이후 민원성 업무를 위한 기구로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등을 신설하여 국민의 고충을 해소하고 권익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와 달리 민의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국회에서는 민원을 처리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오히려 외환위기 이후 국회사무처의 민원업무 총괄부서가 축소되었다. 

국회는 현재 '계' 단위로 운영되고 있는 민원업무 총괄부서를 확대하거나 인력을 보강하고, 다수 국민에 의해서 제출되는 민원을 유형별로 분류하여 일반국민의 여론과 고충이 어디에 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로써 민원의 내용뿐만 아니라 빈도를 참고하여 우선순위에 따라 민원을 심사·처리할 수 있도록 하며, 민원처리결과를 분석하여 발표함으로써 민원에 대한 관심과 열의를 제고하고 민원처리가 형식화되지 않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위원회의 경우 회기 중에는 법안이나 예·결산 심사 등으로 우선순위 상 민원이 소홀히 취급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므로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국회도 일본의회처럼 민원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전문위원을 따로 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국회법상 청문회는 국정 사안이나 안건에 관한 것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민원 중 안건이 아닌 진정에 관한 것은 청문회를 실시하기가 어렵다. 사실 2016년 5월 19대 임기말 가결된 이른바 ‘정의화법’은 그러한 제한을 풀어서 안건이 아닌 사안에 대해서도 청문회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는데, 그것이 국정조사청문회를 양산하여 정부를 마비시킬 것이라는 논란이 야기되면서 급기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되고 말았다. 그것은 국회가 국민의 민원을 돌보려는 좋은 뜻이었고 국회의 자율권에 관한 사항이었는데도 정부가 반대하여 좌절되어 버린 것이다. 20대 들어 2017년 3월 김관영, 박완주 두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같은 취지의 국회법 개정안이 현재 계류 중이다.

국회는 민원이 감소하고 반면 청와대 국민청원은 급증하는 현 상황을 그냥 수수방관할 수는 없다고 본다. 국회가 그 대책의 일환으로 민원조사청문회를 도입한다면 그 대국민 효과는 적지 않을 것이다. 청문회를 통해 정당간 이해관계를 떠나 합심으로 국민생활상의 민원을 진지하게 돌보는 국회의원의 활동이 국회방송 등을 통해 중계 또는 보도되면 국민의 관심을 끌어 국회 민원도 증가하고 국민의 국회에 대한 신뢰도 향상될 것이다. [외부기고/칼럼]
정재룡 국회 교문위 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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