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땜질 개정'으로 사각(死角) 만들고…발의 후엔 '나몰라라'

[the300][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는 나라]①"문제는 국회야!"

이재원 이건희 기자 l 2018.01.28 18:20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국회는 법안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문제가 된 부분만 콕 집어 경쟁적으로 개정안을 발의한다. 이른바 ‘핀셋 개정’이다. 참사의 원인 한두가지만을 찾아 땜질하는 개정은 언제나 사각(死角)을 남긴다. 그 사각에서 또다시 참사가 발생한다. 소 잃고 외양간을 제대로 고쳤으면 없었을 수 참사가 되풀이된 셈이다. 국회가 진지하게 관련법 전체를 검토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밀양 세종병원 참사는 땜질식 개정의 한계를 보여줬다.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소방시설법)의 사각에서 일어났다. 스프링클러 설치와 관련한 규정을 다루는 법이다. 현행 소방시설법에 따르면 의료시설의 경우 4층 이상 바닥면적이 1000㎡(제곱미터) 이상이어야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다. 세종병원은 5층이기는 하지만, 각 층의 바닥 면적이 394.78㎡여서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7일 오전 방문 때 이 문제를 언급했다.

소방시설법은 과거 2차례의 대형화재 사건을 거치며 개정됐다. 그때마다 사각이 남았다. 2010년 11월 스프링클러가 없는 경북 포항 인덕노인요양원에서 불이 나 노인 10명이 숨졌다. 이후 24시간 숙식을 제공하는 모든 노인요양시설 등 노유자시설에 (간이)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다.

하지만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요양병원은 그 대상에서 빠졌다. 결국 2014년 5월 전남 장성 효실천사랑나눔 요양병원에서 화재로 22명이 사망했다. 이를 계기로 다시 개정됐다. 모든 요양병원은 면적에 따라 스프링클러 또는 간이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기존 요양병원에도 소급 적용됐다. 하지만 세종병원과 같은 일반병원은 비용 문제 등을 이유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여전히 사각이 남았고, 그곳에서 참사가 발생했다.

이번 화재 피해를 키운 ‘드라이비트’ 역시 마찬가지다. 드라이비트는 외벽에 스티로폼을 붙이고 그 위에 시멘트를 덧바르는 방식이다. 저렴한 비용에 단열 성능이 뛰어나지만 화재에 취약하다. 화재 발생 시 외벽의 스티로폼을 타고 불이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퍼지고, 스티로폼이 타면서 유독물질이 발생한다. 화재로 많은 사망자를 냈던 제천 스포츠센터, 의정부시 공동주택 역시 드라이비트으로 외장을 마감한 건물들이었다.

국토교통부는 의정부 화재사고 이후인 2015년 9월 ‘건축법 시행령’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해 병원 및 노유자 시설 등은 규모에 상관없이 난연성 마감재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일반 건축물은 기존 30층 이상에서 6층 이상으로 의무 대상을 확대했다.

기준은 강화했지만 소급적용은 하지 않았다.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세종병원도 1992년 준공된 건물이어서 의무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땜질식 개정 외 경쟁적으로 발의되는 법안의 통과 여부도 의문이다. 지난해 12월 제천 화재 이후 국회에 발의된 화재 관련 법안만 10여건. 아직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사고 이전 문제의식을 갖고 발의한 법안도 국회에서 잊혀지기 일쑤다. 제천 화재에서 피해를 키웠던 ‘소방차 전용 구역’을 다룬 법안은 1년여동안 국회에서 잠잤다. 이것 말고도 홍수, 폭염, 한파 등 재난이 닥칠 때마다 수십개의 법안이 발의된다. 이 중 본회의 문턱을 넘는 법안은 열 손가락을 넘기기 어렵다. 일단 발의하고 보자는 마음 때문이다.

지난해 포항 지진 이후 국회에 쏟아진 40여건의 지진 관련 법안 가운데 국회 본회의를 넘긴 법안은 11건에 불과하다. 2016년 기록적인 폭염 당시 쏟아진 26건의 ‘폭염 법안’ 중 국회를 통과한 법 역시 3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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