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인가 '급제동', M&A·초대형IB 안갯속

[the300]['인가장벽'에 막힌 자본시장]대주주 적격 심사서 줄줄이 막혀..M&A·초대형IB '안개속'

전병윤, 김훈남 기자 l 2018.02.02 06:45

"되는게 없다"
증시 활황속에서도 자본시장의 주축을 이루는 기업금융(IB) 전문가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사업과 '딜'들이 잇따라 감독당국으로부터 'NO'판정을 받게 되면서 얼어붙은 자본시장 현장을 짚어 본다.


초대형IB(투자은행) 발행어음 신규 사업과 M&A(인수·합병) 등 금융투자업계 숙제들이 금융당국 문턱을 넘지 못하고 번번이 좌절되고 있다.

정부의 초대형IB 육성 정책에 호응해 자기자본을 대폭 확충하고 조직개편을 서둘렀던 증권사들은 당국의 높아진 인가 '장벽'에 막힌 채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M&A 역시 금융당국의 심사 과정에서 급제동이 걸려 계약 취소 위기로 몰리고 있다. 이처럼 인가 불확실성이 증폭되자 금융투자업계의 '눈치보기'는 더욱 심해져 시장자율성이 후퇴하고 있다.

1일 금융당국 및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증권 M&A를 추진 중인 케이프컨소시엄은 최근 서둘러 인수 구조를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케이프투자증권, 케이프인베스트먼트의 공동 출자로 설립한 PEF(사모투자펀드)가 SK증권의 경영권을 인수하려 했는데, 감독당국이 이 과정에 위법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케이프투자증권이 SK증권 인수 주체인 케이프인베스트먼트가 조성한 PEF 출자자로 참여한 것이 증권사의 대주주 신용공여 금지 조항을 어겼다고 해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프컨소시엄은 지난해 8월 SK증권 인수를 위한 본계약 체결 후 9월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신청했다. 당국의 인가 문턱 앞에서만 4개월 이상 대기한 셈이다. 최근 인수 구조의 재편을 시도하고 있으나 통과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케이프컨소시엄 관계자는 "케이프투자증권을 대신할 재무적 투자자(LP)를 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파장은 확산되고 있다. M&A 무산시 귀책사유에 따라 운용사(GP)인 케이프인베스트먼트는 계약금(60억원)을 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주주 변경 여부가 미궁에 빠진 탓에 SK증권은 기관 자금 유치에 적신호가 켜졌다. 또 공정거래법상 일반지주회사의 금융회사 주식 보유 금지 규정에 따라 SK증권 매각을 추진한 SK㈜ 역시 매각 실패시 공정거래위원회 추가 제재를 걱정해야 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이날 공정위는 SK㈜가 일반지주회사로 전환(2015년 8월3일)한 후 2년간 유예기간(2017년 8월3일)이 지났음에도 SK증권 주식을 처분하지 못했다며 시정명령과 과징금 29억원을 부과했다. SK㈜는 앞으로 1년 이내 경영권 매각을 마무리짓지 못하면 검찰 고발과 과징금 추가 부과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본계약 이후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준비할 때 미리 문제될 사항을 전달했으면 보완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을 것"이라며 "4개월 뒤에야 판단을 내려 매도자와 인수자 모두 기회비용만 날린 셈"이라고 지적했다.

하나금융투자의 하나UBS자산운용 인수도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해 9월 하나UBS자산운용 지분 51% 인수 후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기다리던 하나금융투자는 3개월 뒤에 열린 12월 금융위 정례회의 후 심사 중단 통보를 받았다. 대주주 승인에 문제가 있는 안건은 정례회의에 상정되지 않는 관행에 비춰보면 매우 이례적인 결과다.

현재까지 하나금융투자는 어떤 사유로 심사가 중단됐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UBS자산운용은 순탄할 것 같던 대주주 변경에 난기류가 흐르면서 연기금·공제회 등 일부 기관투자자의 자금 회수로 타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칸서스자산운용 인수를 추진하던 웨일인베스트먼트는 대주주 변경 승인 보류로 인해 지난달 초 M&A 계약 해지 통보를 받는 등 후푹풍을 겪었다.

DGB금융지주의 하이투자증권 인수도 영향권에 들어왔다. 지주회사의 M&A에 대해선 자회사 편입 승인 절차를 밟기 때문에 대주주 적격성 여부를 따지진 않지만 깐깐해진 당국의 기조 변화로 최종 관문 통과가 불확실해졌다.

초대형IB 부문은 업계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현재 한국투자증권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증권사(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에 대한 발행어음 신규 업무 심사 일정은 연기되거나 잠정 보류된 상태다.
기관경고를 받은 전력이 있거나 대주주에 대한 검찰 수사 등이 진행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당국의 취지에 호응해 자기자본을 4조원 이상으로 맞췄던 증권사들은 결과적으로 돈만 묶이게 된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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