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김어준과 금태섭, #위드 유

[the300]

박재범 기자 l 2018.02.26 19:10

# 누군가 전화로 묻는다. 의도가 뭐냐고. 반문한다. 발뺌이 아니다. 진짜 무엇을 묻는지 몰라서다. 또 의도를 묻는다. 생각한다. 의도가 있었던가. 없다고 답한다. 이번엔 이유를 물어온다. 다시 반문한다. 무엇을 묻는지 몰라서다. 생각한다. 의도는 없었는데 이유는 있었던가. 없다고 답한다. 의도도, 이유도 없었으니 솔직한 답이다. 질문이 한 번 더 온다.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 되묻기 전 생각한다. ‘무엇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특정 사안, 특정 정당, 특정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이해가 간다. 지지자 입장에선 표현 하나, 사진 한 컷이 주는 상처를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때론 과한 피해의식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신뢰잃은 언론을 자책하며 넘긴다. 다만 ‘의도’에 매달리는 모습이 남긴 씁쓸한 뒷맛까지 사라지진 않는다.


# ‘의도’를 떠올린 것은 ‘김어준 발언 논란’을 접하면서다. 방송인 김어준은 팟캐스트 방송에서 ‘예언’했다. ‘#미투(나도 당했다) 운동’ 관련해서다. 엄밀히 말해 ‘경고’다. 미투 운동을 악용할 가능성이 보인다는 염려다. 최근 그가 밀고 있는 ‘전사회적 댓글조작 가능성’을 40여분간 설명하며 ‘미투’를 꺼냈다.

"'미투 운동을 지지해야겠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이것을 보면 어떻게 보이느냐.…피해자들을 좀 준비시켜서 진보매체를 통해서 등장시켜야 되겠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다. 이렇게 사고가 돌아가는 거다."

#이 발언이 화제가 된 것은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비판 글을 올리면서다. 금태섭은 "눈이 있고 귀가 있다면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피해자들이 겪어야 했던 일을 모를 수가 없을텐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피해자들의 인권 문제에 무슨 여야나 진보 보수가 관련있나"라고 썼다.

그의 비판에 ‘좌표’가 찍혔다. 김어준의 '걱정'과 '염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금태섭을 향해 공격이 이어졌다. 금태섭은 추가 글을 썼다. 그의 논지는 간단하다. “미투 운동과 관련해선 다른 무엇보다 피해자 보호가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투가 이용당한다는 지적, 앞으로 그럴 수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는 예언을 이해할 수 없다”, 이 글에 대한 반응도 일방적이다. 반론 수준을 넘은 비난이 이어진다. 금태섭에게 ‘의도’를 묻기도 한다.

#김어준은 걱정한다. "남성 중심의 문화, 권력과 위계에 의한 성적 폭력을 개선할 기회다. 이 기회가 (누군가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 이용당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걱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보수 세력의 음모, 의도에 순진하게 넘어가면 안 된다는 처절한 외침도 이해한다. 댓글 조작 등 ‘설마’가 ‘실제’가 된 터에 의도를 캐묻는 것은 어찌보면 ‘공작적’이 아닌 ‘정상적’ 대응일 수 있다. 그것을 모른 채 일반적 사고를 하는 금태섭이 답답할 수 있다.

하지만 난 ‘미투 운동’을 두고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바라보면…’이라고 접근하는 태도가 너무 무섭다. 그것이 예언이건 경고건 말이다.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안에서 '말'은 생각지 않은, 의도치 않은 폭발력을 나타낼 수 있다. 김어준은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게 일반적, 정상적 사고방식이라고 했는데 근본은 피해자 관점이다. 김어준의 통찰력에 감탄하기 전 그의 접근 태도가 불쾌했던 이유다. 금태섭이 김어준에게 “깊이깊이 실망스럽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일 거다.

의도를 알면 본질을 꿰뚫을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정작 의도에 매몰되면 본질을 놓치기 마련이다. 미투보다 공작적 사고방식이 공작에 악용되는 것은 아닌지. 지금 필요한 것은 피해자 관점에서 ‘#위드 유(with you)’하는 거다. ‘공작적’보다 ‘정상적’ 사고방식을 가진 이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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