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로 성폭력 피해자에 '#위드유'

[the300][이주의법안]①황주홍 의원 '인터넷을 통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법' 대표발의

조현욱 보좌관(금태섭 의원실), 정리=우경희 기자 l 2018.03.09 04:01


미투(#MeToo). 5개월 전 미국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당신이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당했다면 미투라고 써주세요”라고 제안하며 시작됐다. 국내서도 미투운동은 문화예술계에서 출발했다. 덜 알려진 사실은 2016년 ‘성폭력 말하기’ 운동이 있었다는 거다. 여성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문단 내 성폭력을 폭로해왔다. 

‘성폭력 말하기’의 장벽은 용기가 아니었다. 지난 2월 ‘강제추행’으로 유죄가 선고된 김요일 시인은 재판과정에서 피해자를 상대로 명예훼손 고소를 했다. SNS에서 ‘실명을 거론하며 악의적으로 명예를 훼손하고 조롱했다’는 이유였다. 피해자는 결국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경찰 조사를 피할 수는 없었다. ‘A 시인이 나를 성폭행했다’라고 가해자를 구체적으로 표시하지 않더라도 가해자가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경찰수사를 받기도하고, 심한 경우 피해자에게 벌금이 내려진 사례도 있다. 가해자의 명예훼손 고소로 피해자가 글을 내리기도 한다. 

성희롱이나 성폭력이 ‘사실’이라도 명예훼손으로 처벌을 받지 않으려면 피해자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진실한 사실이다’라는 점과 ‘공익 목적’이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피해 사실을 말하는 용기뿐 아니라 명예훼손 고소와 싸우는 용기도 필요한 것이다. 미투운동과 함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허위사실은 물론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형사처벌을 한다. 멀리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들지 않더라도 그동안 명예훼손죄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광우병의 위험성을 방송한 PD수첩, 정부의 환율정책을 비판한 미네르바, 떡값검사 명단을 발표한 노회찬 의원, 국정원의 사찰의혹을 제기한 박원순 시장 등이 대표적이다. 가처분이나 손해배상 등 민사책임을 지는 것 외에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는 것에 대해 형사처벌하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민주평화당 황주홍의원이 대표발의한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인터넷을 통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법’이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가 성폭력 사실을 알리더라도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하는 악용사례가 많이 발생하므로 피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의 '말하는 자유'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은 다른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는 경우 명예훼손으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반드시 필요한가?”=명예훼손죄는 그동안 개인과 관련된 사실이 공개됨으로써 침해되는 개인의 인격권과 명예권을 중요시하는 존치론과 국민의 알 권리, 언론·출판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는 폐지론이 대립하여 왔다. 존치론은 명예도 보호할 가치를 가지고 있고 인터넷 등 새로운 통신 수단의 발달로 명예훼손의 전파가능성이 커졌으므로 형사처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2015년 UN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우리나라의 형사상 명예훼손법에 대해 비범죄화, 즉 폐지를 요청했다. 또 대부분의 국가들이 명예훼손을 형사가 아닌 민사 사건으로 다루고 있다.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처벌조항이 있지만 진실한 사실인 경우 처벌을 면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은 타당한가?”=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는 정보통신망법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형법에 규정된 일반 명예훼손과 출판물의 의한 명예훼손 조항도 함께 삭제해야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폐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이미 발의한 바 있다. ‘진실한 사실’과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입증해야 처벌을 면하는 현행법에 대한 비판이다.

◇“이 법은 실행 가능한가?”=2012년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비슷한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4년 내내 단 한 번의 심의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폐기됐다. 앞서 금 의원의 2016년 형법 개정안도 지난 연말 법안소위에서 안건으로 다뤄졌지만 법무부, 대법원 의 반대, 여야 의원들의 신중검토 의견에 부딪혀 단 7분 만에 논의가 중단됐다. 이 법의 국회통과가 험난하리라는게 예상되는 대목이다.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변호사들에 의하면 성폭력 피해 자체에 대한 법률지원보다 명예훼손 관련 법률지원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개인의 인격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전략적 봉쇄소송, 즉 소송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소송을 통해 국민의 의사표현과 비판을 제한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들의 ‘미투’에 대한 국회, 그리고 우리 모두의 ‘위드유(#WithYou)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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