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이 행복한 도시

[the300][워킹맘 좌충우돌](14)유니세프 인증이 전부는 아냐

이윤진 사회복지학 박사(육아정책연구소) l 2018.03.12 11:00
집에서 출발하여 지하철을 타기까지가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안 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 애들을 데리고 길을 걸으면서부터 알게 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 아이 손을 잡고 다른 손엔 유모차를 밀며 길거리를 걷다보면 뒷사람들에게 민폐, 앞 사람에게도 민폐다. 느려지는 걸음 속도, 울퉁불퉁한 길. 그 중에서도 최대 난코스는 승강기 없이 1-2층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상점, 경사로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오래된 건물, 둔 턱이 너무나도 높게 느껴지는 횡단보도 등이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흔히 지나치기 쉬운 도시의 길거리 모습이지만 아이와 동행하는 엄마 입장에서는 -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 대중교통과 도보로 이동하여 목적지에 정착하기까지가 전쟁과 다름없다. 무엇이 바뀌어야 이러한 소소한 어려움이 해소될까? 현재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기는 한 것인가? 

# 아동친화도시, 유니세프(unicef) 에서 선정한 조건
유니세프는 2002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아동친화도시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그 외에도 유럽의 여러 나라와 각 국가들은 해당 국가의 특성에 알맞은 아동친화도시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아동의 권리를 지역의 공공 정책, 아동과 그 가족들에 대한 지역적 대책, 또 지역의 예산에 반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아동의 생활환경, 특히 가장 취약한 환경에 처해있는 아동들의 생활환경에 대응하는 혁신적인 행동 계획을 마련하고, 아동의 권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며 지역 사회에 이것이 잘 적용되는지 평가하고 있다(유니세프 홈페이지 참조, 2018). 이렇듯 해당 지자체에서는 아동이 주체가 되고, 아동의 필요, 의견, 목소리, 활동은 아동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 대한 단체장의 결정에 영향을 주게 된다. 즉, 아동친화도시는 아동을 위한, 아동에 의한 도시이다. 

우리나라의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위한 체크 원칙은 유니세프에서 마련한 국제 기준에 의한다. 그 열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동의 참여, △아동친화적인 법체계, △아동권리 전략, △아동 권리 담당 및 조정 구조, △아동에 미치는 영향 조사 및 평가, △아동 예상, △정기적인 아동실태보고, △아동 권리 알리기, △아동을 위한 독립적 대변인, △아동 안전을 위한 조치가 그것이다. 즉 우리나라는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였을 때 유니세프의 인증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조건을 충족하여 인증을 받은 아동친화도시에서 과연 아동들은 행복한가? 

# 우리가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개별성과 특수성의 조화
우리나라에서 아동 권익과 복리의 증진을 위한 근거 법은 아동복지법이다. 해당 법상 아동은 만 18세 미만으로 그 연령이 규정되어 있고, 이에 의하면 막 태어난 신생아부터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연령층에 해당된다. 따라서 해당 연령 주기별, 지역별로 ‘아동이 주체가 되는’ 범위와 내용적 요소는 그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다. 세부적으로 해당 내용이 재구성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영유아 시기에는 아이의 권리 실현과 양육자의 권리 실현이 따로 떼어질 수 없고, 아동이 성장하면서 주체로서의 욕구와 그 내용은 상이하게 변화한다. 또한 각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자립도에 따라 아동의 행복 크기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각 지역의 특성별로 아동친화의 내용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만의 세부적인 가이드라인과 지역별로 달성하여야 할 기준이 별도로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나라는 2013년 서울 성북구를 시작으로 2018년 2월 기준 23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아 운영 중이다. 유니세프의 기준을 바탕으로 각 지자체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이다. 하지만 과연 유니세프의 기준으로 인증 받은 각 지자체에 살고 있는 아동과 그 부모들은 본인이 생활하는 도시가 ‘아동친화적’ 이라고 모두 느끼고 있을까? 이러한 아동친화도시는 철저히 지방자치단체의 자체의 역량에 좌우된다. 재정 자주도 뿐 아니라 단체장의 필요 의식과 역량에 좌우될 수 있다는 말로 바꿀 수 있다.

현재 많은 지자체들이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위해 애쓰고 있다. 올해 있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지자체들의 노력 또한 더욱 분주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생활하는 도시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의견을 표출하고 반영되는 통로가 마련되어 있는 도시,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엄마들이 편안한 도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오가는 통학차량 버스 탑승 아동들이 안전한 도시,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는 영유아가 행복한 도시가 진정 우리가 원하는 아동친화(Children Friendly) 도시라는 점이다. 각 지역별로 세밀함과 개별성, 고유성에 입각한 기준이 요구된다. 

국제적인 기준에 발맞추어 인증을 받기 위한 노력 이전에, 내 이웃이 아이를 키우면서 이 도시 안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무엇인지, 그리고 내 주변에서 생활을 작게나마 변화 시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실생활 속에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아동이 느낄 수 있는, 해당 도시 안에서 수요자가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외부기고/칼럼]
이윤진 박사/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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