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지도자인 시대…정치인은 지도자입니까

[the300][3만달러 시대-정치인 리더십]<1>지도자 민주주의 시대의 종말-①프롤로그

김태은 기자 l 2018.03.14 04:01

편집자주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열었던 1990년대는 정치의 전성시대이기도 했다. '삼김(三金)시대'로 상징되는 '보스 정치'가 우리 사회 전체를 지배했던 시절이었다. 정치인은 이른바 '지도자'였다. 국정을 이끄는 대통령은 물론 마을 조합의 장 자리 하나까지 '정치 지도자'들의 몫이 당연하게 여겨지곤 했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국민에 대한 정치인의 우월적 위치와 인식 덕이었다. 이들 역시 자신의 신념과 소신, 가치관 등을 정치 인생을 통해 입증하는 것이 중요할 뿐 정치인의 전문성이나 실적 등은 사소하게 치부되곤 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눈앞에 둔 지금 정치인에 대한 인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대통령 탄핵을 경험한 국민들에게 정치인은 '지도자'는 커녕 끊임없이 감시하고 확인해야 하는 애물단지다. '직접 민주주의' 요소의 강화로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논의하는 정치인들은 고유 영역마저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이들에겐 '정치 지도자'가 아닌 새로운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를 보다 다층적으로 대변하고 풀어내주는 한편 합리적인 갈등 조정자로서 보다 확실한 전문성을 요구받는 정치전문가, 전문가 정치가 '3만달러 시대'의 정치 리더십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최종 선고일인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역 사거리에 헌법재판소로 향하는 길에 경찰 차벽이 설치되어 있다.


1년 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선고가 내려졌다. '국가 최고 지도자'의 공백 사태였지만 불안, 혼란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도자’를 끌어낸 게 바로 국민들 자신이었다. 그 과정에서 또다른 ‘정치 지도자’는 필요치 않았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이끈 ‘김영삼·김대중’ 같은 정치 지도자는 3만 달러 시대와 맞지 않는다. 기존의 정치 리더십은 “광장의 문화와 여의도의 문화는 다르다”고 항변했다. 정치적 무능, 뒤떨어진 리더십을 포장하는 변명일 뿐 결국 촛불의 곁에 섰다. 새로운 국가 지도자를 꿈꾸던 대통령 후보들도 마찬가지였다. 광장의 선두 자리 대신 뒷자리에 촛불 대열과 나란히 했다.

 

대통령 직무정지 기간과 탄핵 후 조기 대선까지, 지도자가 부재했던 시기의 '촛불 민주주의'가 가져다 준 경험은 아이러니하다. '정치 지도자' 시대의 부활 대신 '국민이 지도자인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새로운 정권이 탄생한 후에도 ‘지도자’를 기다리지 않는다.

 

"지금의 지도자는 촛불 국민이다. 지금의 여의도 정치인들은 진보적 시민 정신을 못 따라간다.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지도자입네, 나를 따라오라고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정치인이 대중을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라 대중이 정치인을 지배하고 장악하는 시대다."(정청래 전 국회의원)

 

'정치 지도자'의 몰락은 대통령 탄핵으로 그치지 않는다. 전직 대통령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검찰 소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낳은 구체제의 비극이기만 할까. '안철수 현상' ‘반기문 현상’ ‘안희정 현상’ 등 새로운 지도자를 향한 바람은 지속되지 못했다. ‘3김 시대’가 수십년간 이어져온 반면 새로운 시대는 ‘반짝’ 지도자에 그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지도자 정치’의 종말을 뜻한다. 개인의 인생사, 역정을 토대로 이미지를 만들고 그 이미지를 소비하는 ‘지도자 정치’ 말이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정치 지도자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줄 것이란 메시아적 정치인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반복돼왔고 탄핵 사태를 계기로 정치 지도자에 대한 과도한 기대보다는 정치인 역시 검증가능한 실력과 실적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강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도자 민주주의 시대'의 종말, 국민들은 정치인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지금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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