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부정청탁'과 '민원'사이 의 국회의원들

[the300] [채용, 공정과 부정의 경계]"거절도 쉽지 않고 구분도 어려운게 현실"

김민우 기자 l 2018.03.15 04:29


국회는 국민의 '민원창구'다. 어려움을 겪는 사회각계 각층의 목소리를 듣고 입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게 일이다. 국정감사 등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기도 한다. 그러나 '듣는 게' 일인 국회의원들에게도 민원과 부정청탁 사이의 경계를 가르는 것은 '난제'다.

하루에도 수십건씩 쏟아지는 민원 탓에 의원실 자체적으로 민원과 부정청탁을 가르는 매뉴얼을 정한 곳도 있다. A 재선 의원은 "대가를 받느냐 안 받느냐가 1차 경계선"이라며 "내용적으로는 '잘 되게 해주세요'와 '억울합니다'를 먼저 구분한다"고 말했다.

A의원이 말하는 '억울합니다'류는 일단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행정부가 지나친 규제를 적용해 기업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민원, 대기업의 갑질로 하청업체가 피해를 겪고 있다는 민원 등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잘 되게 해주세요'류는 취업청탁, 사업수주 등 개인적인 민원이 주를 이룬다.

A 의원은 "'억울하다'는 민원은 일단 듣고 보좌진들을 통해 진상파악을 주문한다"며 "반면 '잘 되게 해달라'는 민원은 일단 제쳐둔다"고 말했다. 그러나 투표로 선출되는 국회의원이 지역구 민원을 마냥 거절하기는 쉽지 않다.

A의원 거절에도 나름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A 의원은 "민원을 매몰차게 거절할 경우 안티(Anti)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앞에서는 '알겠다'고 대답한다"며 "(취업청탁이라면) 해당기관에 전화해 결과만 먼저 좀 알려달라고하고 민원인에게 '밀어봤지만 이번엔 잘 안됐다'는 식으로 결과를 먼저 전해주는 정도로 민원인을 위로한다"고 말했다.

B의원은 "민원 중에 거절하기 힘든 부분이 '누구를 만나게 해달라'는 민원"이라고 말했다. B의원은 "초선 때는 누가 누구를 좀 소개해달라고 하면 그건 아무생각없이 다 들어줬는데 시간이 지나서보니 내가 누구를 소개해주는 것 자체도 알선, 주선 혐의 등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더라"라며 "그 이후로 사람을 소개해주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설명했다.

이처럼 조심하는 경우도 있지만 '부정청탁'과 '민원'에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경우도 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에 연루된 한 국회의원은 사석에서 "아는 사이에 완전히 모른 척할 수도 없고 누가 (어디 취업했으니) 도와달라고 하면 지나가는 말로라도 '잘 봐달라'고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니냐"며 "리스트를 만들어서 전달하고 채용 압박을 넣고 이렇게 한 것도 아닌데 그게 채용청탁이냐"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입법권, 예산심의권 등 국회의원이 가진 권한을 비추어볼 때 의원의 '말 한마디'는 단순한 '말'이 아닌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의원의 발언은 국회의원의 '지나가는 말' 한 마디가 부정한 청탁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지 못 한 것으로 풀이된다. 

취업청탁의 경우 '국회 내 관행'이 부정청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4년 임기의 국회의원이 낙선할 경우 보좌진들도 하루 아침에 직업을 잃는다. 이 때 낙선한 국회의원은 다른 초선 의원이나 다른 협회, 기관 등에 등에게 자기 의원실 식구들의 취업을 청탁하는게 관례다.

정치권에서는 이것이 '의리'로 통한다. 형식은 '추천'이다. "얘 내가 써보니 일 잘하니더라. 데려가서 써보라"는 식이다. 보좌진뿐 아니라 선거 때 자신을 도와준 캠프관계자들에 대한 '보은'차원에서의 채용 청탁도 빈번하다. 

C의원실 보좌관은 "민원이 일상화 되다보니 결과론적으로 '민원해결'이 '부정청탁'의 결과로 나타나도 잘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부정청탁에 관한 부분은 개별 의원실의 대응에 맡길 문제가 아니라 국회차원에서 대응 매뉴얼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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