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명의 집이라도 함부로 못팔아..재산성평등 첫 발

[the300][이주의법안]김삼화 의원 '부부주택 공동처분법' 발의

조현욱 보좌관(금태섭 의원실), 정리=우경희 기자 l 2018.04.20 04:01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매년 3월8일, 세계 여성의날을 기념해 성평등 실현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성평등 디딤돌상’을 준다. 1999년 수상자는 '황혼이혼'소송을 제기한 김창자, 이시형 할머니였다.

 

당시 76세의 김창자 할머니는 '직장까지 그만두게 하고 생활비도 주지 않으면서 근거없이 의심해 온' 84세 할아버지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위자료 3000만원과 단독주택 1채를 분할해 주라'는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고등법원에선 패소했다. 중학교 영어교사였던 할머니는 결혼 후 쌀가게, 만화방, 하숙 등으로 생활비를 조달했고 부부는 수십억원의 재산을 모았다. 하지만 모든 재산은 '당연히' 남편의 명의였다. 또 '절대군주'처럼 군림해 온 90세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냈던 70세의 이시형 할머니 역시 가정법원에서 '해로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들은 한국여성의전화가 여성의 재산권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평생 살림하고 직장에서 일하거나 부업하며 부부가 함께 마련한 재산을 본인의 이름은 고사하고 공동명의로 하지고 말도 못 꺼내는 게 당시 사회의 의식수준이자 관행이었다. 여성의 전화는 '부부재산 공동명의', '부부재산계약' 운동을 펼쳤다. '부부별산제'에 대한 제도개선 요구였다.

 

부부별산제는 부부 사이라 하더라도 재산 명의자를 소유자로 봐 독자적으로 재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여성도 남성의 간섭없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으니 형식적으로는 평등을 지향하는 제도다. 하지만 성별 임금 차이, 여성의 낮은 경제활동 참여, 높은 비정규직 비율, 여성이 대부분 담당하는 가사노동의 가치에 대한 낮은 평가 등으로 여전히 여성보다 남성이 더 재산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 가정 경제에 상당한 기여를 한 여성의 재산도 남편 명의가 되는 경우가 많다. 부부별산제가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평등의식 조성이 전제돼야 한다.

 

참여정부 시절인 17대 국회에서 정부가 별산제를 개선하기 위한 민법 개정안을 제출한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당시 법무부 뿐 아니라 한명숙·이계경·최순영의원도 비슷한 개정안을 발의햇다. 하지만 성과를 맺지 못한 채 2008년 폐기됐다. 그 후 10년, 다시금 민법 개정 움직임이 시작됐다.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부부주택 공동처분법'이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주거지와 관련된 재산을 처분하는 경우 누구의 명의로 돼있는지 상관없이 상대방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다. 건물이나 대지의 소유권 뿐 아니라 임대차보증금도 상대방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상대방 몰래 처분한 경우 2년 이내에 취소 할 수 있다. 부부가 합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거래한 제3자의 권리는 보호된다. 부부 중 명의자가 배우자 동의 없이 부부주택을 임의로 처분할 경우 명의를 갖지 못한 배우자의 거주권·재산권이 침해되는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법은 반드시 필요한가?" = 부부재산제도는 결혼한 부부가 혼인생활 중에 취득한 재산의 소유와 분배에 관한 제도다. 민법상 부부재산제도는 부부재산계약제도와 법정재산제라는 두 가지 규정을 두고 있지만 부부재산계약을 하려면 결혼 전에 해야 하고 등기를 해야 하며 결혼 후 자유롭게 변경하지 못한다. 따라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법정재산제도를 따르고 있다.

 

혼인 전부터 갖고 있던 재산과 혼인 중 본인 이름으로 취득한 재산은 특유재산, 즉 개인 것으로 하고 불분명한 재산은 공동재산으로 간주한다.

 

이런 상황에서 별산제는 수입과 재산을 가진 여성에게는 유효한 수단이지만 가사를 전업으로 하는 여성에게는 그렇지 않다. 남편 명의의 수입에도 아내의 기여도가 분명히 있지만 인정받기 어렵다. 혼인 중에 아내가 부부재산을 마음대로 쓸 수 없고 남편이 자신의 명의로 돼 있는 부부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하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이혼 후 재산분할이나 남편 사망 후 상속을 통해서나 가능하니 현실적으로 결혼 생활 중에는 불평등한 제도다.

 

◇"이 법은 타당한가?" = 부부재산제도는 혼인 중에는 부부의 재산관계에 관한 자유와 독립성이 인정되는 별산제가 이상적이며 이혼 할 경우 부부의 노력을 같은 가치로 평가하는 공동재산제가 이상적이다. 하지만 부부재산의 공유원칙과 공유시점이 현재가 아니라 미래라는 점은 부부간에 현실적 불평등을 낳는다.

 

재산명의가 대부분 남편으로 이름으로 돼 있는 한 민법상 '부부의 공유로 추정되는' 재산은 가족공동생활에 필요한 가재 도구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혼인 중에는 현재처럼 별산제를 유지하되 주택 등 명의자의 중요한 재산을 처분할 때는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하다. 부부 각자 명의의 재산이라도 혼인 해소 시에는 동등하게 분배될 잠재적 공동재산이다. 독일에선 이런 내용의 부가이익공동제를 통해 부부의 공동재산을 보호하고 공동재산에 대한 배우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다.

 

◇"이 법은 실행 가능한가?" = 김 의원의 법안이 담고 있는 '선의의 제3자 보호규정'이 쟁점이다. 배우자가 취소권을 행사할 때 선의의 제3자를 보호하는 규정은 대부분의 제3자가 선의일 것이므로 부부 한쪽의 거주권이나 재산분할청구권을 보호하려는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 민법은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를 이유로 취하의 경우에도 선의의 제3자를 보호하는 규정을 갖고 있다. 부부 한쪽의 거주권 보호가 사기나 강박의 피해자 보호보다 더 우월한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또 임대차계약의 경우 동의 없이 체결된 계약을 취소할 수 있게 한다면 임차인의 권리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과도 충돌할 수 있다. 배우자의 주민등록을 조건으로 하는 방안이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거주주택에 주민등록이 된 경우에만 적용하면 거래 상대방은 주민등록등본만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법은 생활공동체로서 부부가 같이 살고 있는 집을 어느 쪽이 자신의 명의로 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처분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법이다. 무조건 다 처분을 제한하는 게 아니고 살고 있는 집일 때 함부로 못 하게 하자는 거다.

 

'부부공동의 재산을 이루는 데 기여한 배우자의 권리를 주거용 건물의 처분제한으로 한정하는 것은 협소하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재산분할판례에서 여성배우자의 분할분이 가사와 취업 모두를 전담한 여성이라도 1/2을 넘지 못하고 전업주부는 최고 1/3까지 낮게 평가되는 현실을 외면하긴 어렵다. 작더라도 변화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문화된 부부재산계약제도도 이용하기 쉽도록 바꿔야 한다. 혼인 전 뿐 아니라 혼인 후에도 체결할 수 있고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부재산계약 등기의 서식을 마련하고, 유형을 법정화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민들이 국가로부터 받아야할 법률서비스다. 불평등의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성평등의 미래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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