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간 '건배주'의 정치학…이번에는 진달래술과 평안도술

[the300][2018남북정상회담]<9>알쓸신잡⑥ 건배주

안재용 기자 l 2018.04.25 04:06

편집자주 이틀 앞으로 다가온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정상회담 잡학사전)을 마련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스펙·화법·패션, 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 의전, 건배주까지 분명히 쓸데있을 것이라고 믿는 내용들.


2018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건배주는 두견주와 문배주가 선정됐다. 충청남도 당진군 면천면의 두견주는 진달래 꽃잎과 찹쌀로 만든다. 문배주는 평안남도의 술이지만, 대한민국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86호로 지정될 정도로 우리측에서 인정받는 술이다. '봄'과 '남북 화해'의 콘셉트에 맞춘 건배주 선정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건배주에 정치적 의미를 담아 왔다. 지난 2월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남특사로 방남했을 때 이같은 면모가 두드러졌다. 당시 대남특사단과 오찬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한라산 소주'를 건배주로 내놨다. 남북 8도의 음식을 모두 메뉴에 담는다는 취지에서 제주의 소주가 테이블에 올랐다.

김 위원장, 김 부부장과 제주도의 인연도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남매의 생모인 고용희는 제주 출신이다. 고용희의 아버지 등 일가 가족묘지도 제주에 조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위원장도 우리측과 관계개선 과정에서 건배주에 각별한 공을 들였다. 지난달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북특사가 방문했을 때 김 위원장은 프랑스산 ‘미셸 피카르’ 와인을 대접했다. '미셸 피카르' 와인은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정상회담의 건배주였다. 김 위원장은 이날 대북특사단에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김 위원장이 대북특사를 만나서 주로 마신 것은 평양소주였다. 청와대가 제공한 한라산 소주와 짝을 맞춘 것이란 해석이다. 서민의 술이라는 점에서 친근한 면모를 보여주려한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평양소주는 비교적 최근 북한에서 개발된 술이다. 평양소주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주로 중국산 주정을 사용했으나 평양소주에는 북한산 주정이 원료로 사용된다.

과거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건배주는 각별한 의미를 가졌다.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에서는 우리가 문배주를, 북한이 들쭉술을 내놓았다. 남과 북을 대표하는 전통주로 서로를 대접하는 의미가 있었다. 북한의 들쭉술은 해발 800m부터 2200m 사이 백두산 고산지대에서 자생하는 무공해 들쭉나무 열매를 원료로 만든 고급주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담에서는 우리측 천년약속을 건배주로 사용했다. 천년약속은 멥쌀로 빚은 술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건배주로 선정되며 관심을 끌었다. 술 자체의 역사보다는 '천년약속'이라는 이름에 의미가 담겼다는 평가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얻은 평화를 긴 시간 지속시키자는 의미다.

외교 현장에서는 인물배치, 음식, 장소 등에 모두 의미가 담긴다. 국가 최고위급 인사들이 만나는 정상회담도 마찬가지다. 특히 잘 선정한 술 하나가 회담의 분위기 전체를 좌우할 수도 있다. 70년 간의 대립에 큰 진전이 예상되는 오는 27일 남북 정상회담의 '건배주'인 문배주와 두견주가 주목 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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