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김기식 이후'

[the300]

박재범 기자 l 2018.04.24 04:30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을 때다. 문재인 대통령은 “늘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무난한 선택’과 ‘과감한 발탁’으로 인사를 구분하면서다. 후자일수록 비판과 저항이 두렵다고도 했다. 인사권자의 고뇌가 읽힌다. 안정과 개혁 사이, 그는 선택 또는 발탁을 해야 한다.

다만 현실은 문 대통령이 고민하던 때와 달라졌다. ‘김기식 이후’는 ‘김기식 이전’과 확연히 구분된다. 당장 금감원장을 향해 뛰는 사람이 잘 안 보인다. 정권 초만 해도 자천타천 모으면 열 손가락이 모자랐다. 하지만 ‘김기식 이후’는 다르다. 요새 정치권 안팎에선 이런 말이 돈다. “청와대 수석, 장관은 이제 정권 초에만 가능하다”.

권력이 한창일 때 자리를 맡아야 생색을 낼 수 있다는 의미인 줄 알았다. 헌데 그게 아니란다. 정권 초 입성하지 않으면 높아진 문턱과 기준에 맞출 수 없는 현실을 향한 넋두리다. 검증 문턱은 인사 청문 등을 지날수록 높아졌다.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등 70~80년대 ‘관행’은 부적격 사유가 된 지 오래다.

현 정부 출범 후 기준은 더 강화됐다. 인사 논란 끝 병역기피, 세금탈루, 불법적 재산증식, 위장전입, 연구 부정행위, 음주운전, 성 관련 범죄 등 공직 배제 7대 비리를 정립했다. 반길 만한 시대적 흐름이다.

‘김기식 이후’ 문턱은 한번더 높아졌다. 이른바 ‘의원 불패’의 불문율이 깨진 거다.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2000년 이후 현역의원의 낙마 사례는 없다. 전직 의원도 사실상 전관예우를 받았다. 개인적 성품 때문이건, ‘비판과 저항’ 때문이건 김기식은 예외가 됐다. 시작이 어렵지 한번 열린 문을 닫기 힘들다. 후원금 사용처, 출장 내역 등은 새 검증 매뉴얼이 됐다. 이 기준은 위법 여부를 떠나 ‘도덕적 평균’을 밑돌아도 안 된다. 김기식 ‘이전’이라면 모를까 김기식 ‘이후’는 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검증 문턱만 높아진 게 아니다. 정치권과 언론은 흥밋거리도 의혹의 출발로 삼는다. 검증보다 여론 재판 등을 의식해 출사를 포기한 이들이 여럿이다. ‘무난한 선택’의 대상인 관료들도 포함된다. 나랏일 한번 해 보고 싶다는 포부는 가족의 만류를 넘기 힘들다. 가족의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준 미달의 사람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래도 인사 폭풍이 한번 지날 때마다 전문성, 책임감 등을 가진 인물이 초야에 숨는 것은 문제다. 자연스레 국정을 책임질 ‘인력 풀’이 준다. 국정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인사는 국정의 한 축이다. 야당은 손해 볼 게 없다. 국정운영의 책임은 청와대와 정부, 여당의 몫이기 때문이다.

금융개혁에 대한 저항, 개인적 성품 등 김기식 사태를 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하지만 난 정치의 실종에서 본질을 찾는다. 제도를 정비하고 검증 매뉴얼을 만드는 것만 국정 운영이 아니다. 필요한 것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정치이고 그것 역시 국정의 한 부분이다. 인사도 그렇다. 남북 관계에서 창의적인 ‘문재인 프로세스’를 만들었듯이 국정 운영을 위해선 ‘문재인 정치’가 필요하다. ‘김기식 이후’ 금융개혁보다 시급한 것은 정치의 복원이다.

p.s)‘김기식 이후’, 짚을 게 하나 더 있다. 일부 야당이, 일부 언론이 김기식의 의원 시절 해외 출장 논란 의혹을 제기하면서 동행한 인사를 칭한 표현이다. 성희롱적·성차별적 표현, 직업 폄하 등이 엄연히 존재했다. 당사자가 받은 상처는 엄청났을 거다. 그들은 사과해야 한다. 언론인으로서 대신 머리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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