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北 오늘은 美 내일은 中…남북정상회담 숨은 일꾼들

[the300][2018 남북정상회담 어벤저스]

남북정상회담프레스센터(고양)=심재현 l 2018.04.26 18:44
왼쪽부터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사진=머니투데이 DB

역사상 세번째 남북정상회담이 한두 사람의 의지와 행동으로 이뤄질 리 없다. 역사의 고비마다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의 물꼬를 튼 수많은 만남이 그렇듯 이번 회담의 물밑에서도 분초를 다투며 뛰어다닌 일꾼들이 있다.

○…72세의 노익장을 과시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정상회담 개최 막판 두달 동안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에서 가장 바빴던 사람 중 하나다. 지난달에만 열흘 동안 국내를 비롯해 북·미·중을 거의 하루 간격으로 왕복하면서 한반도 정세의 키를 쥔 3명의 '빅맨'(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다.

문 대통령의 의지를 김 위원장에게 전하고 미중 정상을 만나 북한과의 대화를 이끌어내는 설득 외교의 최전선에서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결정을 내린 것도 정 실장의 방북 결과 브리핑을 들은 직후였다.

남북정상회담 개최 하루 전인 이날까지 정 실장의 행적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 실장은 이달 들어 두번째 방미 일정에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신임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미국의 입장을 최종 조율하고 이날 귀국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지난 24일(현지시각)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을 조명한 기사 제목을 '옛 급진주의자가 남북 화해를 돕다'라고 뽑았다. 학생운동 리더 출신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라는 극적인 스토리와 역할에 쏠린 관심이 단적으로 드러난 대목이다.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지 않은 합리성은 임 실장의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남북관계에 관한 자신만의 콘텐츠에도 불구하고 비서실장, 국정의 2인자로 상황을 장악하려 하기보다 역할 분담을 먼저 고민했다는 평가다.

평창 동계올림픽 직전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이 청년 기회박탈이라는 공정성 이슈로 논란이 됐을 때 달라진 국민정서를 놓쳤다고 인정한 데서 발빠른 정무적 감각도 드러난다.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서 모두 기획·협상의 실무를 담당했던 대북전략통이다.

정보기관의 수장이 외교안보라인의 전면에 나서는 게 적절치 않다는 의견에도 불구하고 서 원장이 정 실장과 함께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잇따라 만난 것은 그가 그만큼 준비된 조율사이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1980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에 입사해 28년 3개월 동안 근무한 정통 국정원맨으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 등 북미 핵심인사와 라인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인사로 꼽힌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어질 한미, 북미정상회담에서 서훈-김영철-폼페이오의 3각 정보라인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세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모두 핵심 역할을 한 서 원장의 향후 행보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능력과 성품은 지난 9일 어렵게 꺼내놓은 "남북관계의 불씨 하나를 살렸다"는 말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대북 저자세' '통일부 패씽'이라는 논란이 불거질 때도 조 장관은 시종일관 신중한 태도로 숨은 조력자 역할을 했다.

지난 1월 2년여 만에 열린 남북고위급회담 당시 북측의 도발을 침착한 대응으로 차단한 이도 조 장관이었다. 북측 단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남측의 비핵화 언급과 북측의 서해 군 통신선 개통 시점 등과 관련해 강하게 항의하면서 긴장이 고조될 때 조 장관이 '상호존중 정신'을 내세워 확전을 막았다.

"남북문제는 유리 다루듯 다뤄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지론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은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낸 문 대통령의 '숨은 복심'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등 외교·통일 전문가 위주로 구성된 대북특사단에 포함된 것을 두고 의문이 나올 때 문 대통령의 의중을 김 위원장에게 가장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따라붙었다.

지난달 6일 대북특사단의 방북부터 지난 2일 예술단의 평양 공연, 20일 남북정상간 핫라인 개통, 25일 정상회담 남북합동 리허설까지 남북이 만나는 자리에 항상 윤 실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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