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제도 합리화 법제의 재검토(상)

[the300][정재룡의 입법이야기]

정재룡 국회 수석전문위원 l 2018.05.09 07:00
현행 법령상 '신고'에는 행정청의 수리가 필요한 신고와 수리가 필요 없는 신고가 있으나 법령에서는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자의적 법령해석, 늑장처리, 부당한 접수거부와 같은 일선 기관의 소극적·비정상적 업무처리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법령상 양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신고의 처리절차가 신속하게 이루어지도록 법제도 자체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이와 같은 취지에서 법제처를 중심으로 2016년부터 3개년 계획으로 신고제도 합리화 정비 입법을 추진 중에 있다. 수리가 필요한 신고에 대하여 법정처리기간 내에 수리 여부나 처리기간의 연장 여부를 통지하지 않으면, 처리기간이 끝난 날의 다음날에 신고를 수리한 것으로 보는 '간주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대상 법률 중 2017년까지 검토 및 개정되지 않은 법률 전체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2018년 내에 검토 및 국회 제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는 수리가 필요한 신고에 대하여 간주제도를 도입하면 민원인의 불확실성이 감소하고 민원 처리의 예측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국민안전, 건강, 환경 등과 관련되어 사후적으로 회복되기 어려운 신고인 경우에는 간주 규정을 제외하기로 하였다.

정부는 2016년 한국법제연구원의 연구용역결과를 토대로 이를 추진하고 있는데, 정부가 제출한 관련 법률의 개정안을 보면 당초 용역결과와는 다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연구결과는 신고를 수리가 필요하지 않은 신고와 수리가 필요한 신고로 나누고 그 각각에 대하여 개정을 추진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정부는 현재 수리가 필요하지 않은 신고의 경우는 별도의 입법조치를 추진하지 않고 있다. 

수리가 필요한 신고의 경우도 당초 연구결과는 모두 수리 간주 규정을 두기로 했으나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 중 일부는 그 대신 “…신고를 받은 경우 그 내용을 검토하여 이 법에 적합하면 신고를 수리하여야 한다.”라는 변형된 조문을 두고 있다. 변형된 조문은 그 내용이 매우 포괄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신고제도 합리화 정비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올해 정부는 수리 간주 규정 대신 변형된 조문을 둔 개정안을 더 많이 제출할 계획이다.

먼저, 수리가 필요하지 않은 신고의 경우 연구결과와 다르게 아무런 조처를 추진하지 않는 게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다. 이에 대하여 법제처는 행정권 발동을 촉구하는 신고, 정보제공적 신고 등의 경우 신고서나 첨부서류 등이 없어 표준문안대로 개정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신고도 있고, 행정절차법(제40조)과 동일한 내용을 개별법령마다 반복적으로 규정할 경우 법체계가 복잡해질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개정 실익이 적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수리가 필요한 신고와 수리가 필요하지 않은 신고를 명확히 구분하기로 한 취지에서 볼 때, 정작 신고제도를 두고 있는 개별 법령에 수리가 필요한 신고인지 여부를 명시하지 않는 것이므로 적절한지 의문이다. 비록 입법조치가 아니더라도 신고제도 합리화 정비의 취지를 고려한다면 그 신고가 수리가 필요하지 않은 신고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하위법령에라도 명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음으로 수리가 필요한 신고의 경우 연구결과는 모두 수리 간주 규정을 두기로 했는데, 법제처는 이 경우도 수리 간주 규정을 수용할 수 없는 부처의 입장을 고려하여 수리 간주 규정 대신에 “…신고를 받은 경우 그 내용을 검토하여 이 법에 적합하면 신고를 수리하여야 한다.”라는 변형된 조문을 두기로 했다. 정부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한 규정을 두는 이유는 수리가 필요한 신고임을 명시하는 것에 불과한데, 그 실익이 무엇인지 의문스럽다. 

단순히 수리가 필요한 신고임을 명시하는 것인데도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들은 모두 제안이유에서 '신고 민원의 처리절차를 법령에서 명확하게 규정함으로써 관련 민원의 투명하고 신속한 처리와 일선 행정기관의 적극행정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수리가 필요한 신고라고 명시한다고 해서 그런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하편 계속)
정재룡 국회 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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