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실험장 폐기 '의식'은 증거인멸?…의문점 셋

[the300][런치리포트-풍계리 핵실험장 폐기]③전문가 없이 '과거 핵' 흔적 삭제 우려도

박소연 기자 l 2018.05.14 17:00
북한이 1~6차 핵실험을 진행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23~25일 폐쇄한다고 12일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3월 30일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의 4월 20일의 위성사진. (38노스 캡처) /사진=뉴스1


북한이 오는 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공개적으로 폐기하겠다고 밝혔지만,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놓고 여전히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당초 공언했던 핵 전문가 초청 없이 3일 만에 서둘러 갱도를 폭파하겠다는 것은 북한의 과거 핵 흔적에 대한 증거인멸이란 우려도 나온다.

◇왜 북한은 폐기 '의식'이라고 했나= 북한은 12일 외무성 공보를 통해 "핵시험장을 폐기하는 의식은 5월 23일부터 25일 사이에 일기조건을 고려하면서 진행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핵실험장의 단순한 '폐쇄'(shut down)가 아닌 '불능화'의 의미를 담은 '폐기'(dismantle)란 용어를 썼다. 다만, 스스로 폐기 '의식'이라고 밝히면서 '세리머니', '행사'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했다. 핵실험장 폐기를 3일 안에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단 점에서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선(先)행동'에 나서고 검증·사찰은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이 나온 후로 미룬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핵 폐기는 '의식'으로 끝날 수 없는데 상징적인 핵 폐기 절차를 행동으로 옮긴다는 차원에서 미국도 용인한 것 같다"며 "카자흐스탄은 17년 걸린 것을 2박3일간 할 수 없기에 일단 행동에 옮기고 추후 검증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4월20일 전원회의에서 스스로 결정한 것을 자발적이고 자기주도적으로 행동에 옮긴다는 차원이고 외부세계의 사찰과 검증은 비핵화 합의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갱도 '폭발' 후 입구 폐쇄는 적절한가= 북한은 3일 안에 1~4번 갱도를 모두 폭발시켜 무너뜨리고 입구를 폐쇄하겠다고 했다. 이후 지상의 관측설비 등을 철거하고 경비 인원과 연구원을 철수시켜 주변까지 완전히 폐쇄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갱도 내부가 폭파를 견딜 정도로 안정적인 상태인지 검증이 안 된 데다 2~6차 핵실험이 진행된 2차 갱도를 폭파하는 것은 방사성 물질 유출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일각에서는 갱도 내부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절차 없이 갱도를 폭파하는 조치가 북한의 과거 핵개발 흔적과 증거를 인멸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보통 핵실험을 하면 1% 정도만 분열하고 99% 이상이 흩어져 남아있기 때문에 2차 갱도 이곳저곳에 플루토늄과 우라늄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보통 핵실험장을 폐기할 때 우라늄·플루토늄을 전부 긁어내고 지하로 스며들지 않게 콘크리트로 타설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면서 "구소련도 모래와 자갈 등으로 매립하는 데 20년 가까이 걸렸는데 북한은 이를 다 건너뛰고 폭파하겠다는 것"이라고 문제점을 제기했다. 

핵실험장을 먼저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원칙인데 북한의 핵개발 진전 상태를 알 수 있는 '과거 핵' 기록을 서둘러 지워버리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 검증 빠진 이유는= 북한은 핵실험장 폐기 일정 발표에서 '국제 전문가' 참가를 언급하지 않고 한·미·중·러·영 언론인만 초청한 것과 관련해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브리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5월 중 실행할 것이며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을 북으로 초청하겠다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한·미·중 등 주변국과 IAEA(국제원자력기구) 등과 접촉한 뒤 전문가집단도 초청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북한이 아직 검증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는 분석도 많다.

고유환 교수는 "청와대 발표는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한 말을 옮긴 것이지 북한의 공식 발표는 아니었다"며 "실무검토 과정에서 지금은 사찰·검증까지 받을 상황은 아니라고 결론내렸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한범 선임연구원은 "지금 전문가들을 데려가면 갱도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여러 이견이 나올 테니 일단 '세리머니'로 처리하고 검증은 추후에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검증이 빠진 불완전한 폐기 '의식'을 미국이 사실상 용인한 것은 정치적 이유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서균렬 교수는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는 '불시점검'과 '무한접근'이 원칙인데 외부에서 강제사찰 들어오기 전에 갱도를 사전에 봉쇄해버리는 이번 조치를 북한이 서둘러 선심쓰듯 하고 트럼프는 '땡큐'라 하고 있다"며 "트럼프는 중간선거 전에 실적이 필요하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익스큐즈 미'라 하고 이를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날 청와대가 이를 '미래의 핵 포기'로 평가한 데 대해서도 "북한은 추가 핵실험 없이 슈퍼컴퓨터를 통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핵개발이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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