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행정입법 시정요구는 정말 위헌 가능성이 있나

[the300][정재룡의 입법이야기]

정재룡 국회 수석전문위원 l 2018.05.28 14:00
 2015년 5월 29일 국회는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않는 경우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고 정부는 그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의결하여 정부에 이송하였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그 개정안은 폐기된 바 있다. 당시 그 개정안은 의결할 때 재의결 정족수인 재적의원 3분의 2보다 많은 211명의 의원이 찬성하였지만 2015년 6월 25일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된 이후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까지 불러 오면서 그 개정안은 당시 여당의 불참으로 재의 표결되지 못하고 자동폐기되고 말았다. 

이후 20대 국회에 들어와서 같은 취지의 국회법 개정안이 여러 건 발의되었는데, 유승민 의원도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된 것과 같은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지난 2월 국회운영위원회 소위는 그 개정안들을 심사하였는데, 상임위원회가 아니라 본회의에서 행정입법의 시정 또는 수정·변경(이하 ‘시정’이라 함)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처리하는 것에 대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다만, 지금도 국회의 행정입법 시정요구에 대하여 여전히 2015년에 재의요구의 이유로 들었던 것과 같이 위헌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인식 때문인지 국회운영위원회 소위에서는 위헌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2015년 5월 가결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재의요구서는 국회 상임위원회가 수정·변경한 대로 정부가 따라야 할 경우 정부의 행정입법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점, 헌법이 규정한 법원의 행정입법 심사권을 위반할 소지가 크다는 점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먼저, 국회의 행정입법 시정요구에 강제력이 있다는 의견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5년에 법제처도 그렇게 해석했다. 그러나 국회법 제84조 제2항에 따르면 국회는 결산의 심사결과 위법 또는 부당한 사항이 있는 때에 본회의 의결로 시정을 요구하고, 정부 또는 해당기관은 시정요구를 받은 사항을 지체없이 처리하여 그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고,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16조 제2항 및 제3항에 따르면 국회는 감사 또는 조사 결과 위법하거나 부당한 사항이 있는 때에 시정을 요구하고, 정부 또는 해당기관은 시정요구를 받은 사항을 지체없이 처리하고 그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이들 경우 정부 또는 해당기관은 반드시 시정요구를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고 따르지 못할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 처리결과보고서에 그 이유를 적시하면 된다. 국회가 2015년 5월 의결한 국회법 개정안의 시정요구도 이와 같은 내용이어서 정부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명확하다고 볼 수 있는데도 당시 대통령은 타당하지 않은 이유를 들어 재의요구를 한 것이다.

더구나 결산심사 결과 시정요구나 국정감사 결과 시정요구는 그 대상이 주로 정부에 속하는 집행적인(executive) 사항인 반면, 행정입법은 국회에 속하는 입법권의 일부를 국회가 위임해준 것이어서 수임자가 위임의 취지를 위반한 경우에는 위임자인 국회는 당연히 그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결산심사 결과 시정요구나 국정감사 결과 시정요구가 위헌이 아니라면 행정입법 시정요구는 더욱 더 위헌이 아니다. 그리고 종래 국정감사 결과 시정요구에는 당연히 행정입법에 대한 시정요구도 포함되고 있는데, 그것은 위헌이 아니고 행정입법을 따로 분리하여 시정요구하면 위헌이라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

이어서,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시정요구는 사법심사와는 전혀 별개이고 양자는 큰 차이가 있다. 행정입법에 대한 법원의 심사는 구체적 사건에 있어 행정입법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만 사후적으로 심사하는 것이고 이에 대한 판결의 결과로 당해 사건에 한하여 그 적용이 거부될 뿐이고 행정입법 자체를 무효화 시킬 수는 없다. 

반면 국회의 행정입법 시정요구는 국정통제권의 일환으로서 구체적 사안에 관계없이 특정의 행정입법 전체를 심사하여 그 결과 법률에 위배된다고 판단이 되면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시정요구가 사법심사와 충돌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행정입법이 법률에 위배된다면 그 자체로 위법성을 갖게 되는데, 이를 모두 사법심사를 통해 해결하라고 한다면 시간만 오래 걸려 오히려 국민의 피해가 커질 것이다. 따라서 국회의 행정입법 시정요구는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혹자는 미국의 의회거부권이 1983년에 위헌판결을 받은 것을 들어 국회의 행정입법 시정요구도 위헌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시 위헌판결을 받은 미국의 의회거부권은 의회가 정부에 권한을 위임하면서 정부의 권한 행사에 대한 심사권을 의회가 갖는 것이어서 의회는 정부의 결정 사항을 거부할 수 있었는데, 이는 의회가 명백하게 결정권을 갖는 것이라는 점이 달랐다. 위헌판결을 받은 이유도 권력분립원칙 위배와는 아무 관련이 없고 헌법상 의회의 결정이 대외적인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절차적으로 상·하 양원을 모두 거쳐야 하고 대통령에게 제출되어야 하는데 의회거부권은 그런 절차가 결여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미국은 1996년에 의회거부권의 위헌판결의 취지를 반영하여 보다 강력한 새로운 행정입법 통제제도를 도입하였다. 의회가 주요 행정입법을 사전에 심사하는 제도가 그것이다. 그에 따라 행정입법에 대한, 양원을 거친 의회의 거부결정이 대통령의 서명으로 확정되면 그 행정입법은 효력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이미 효력이 발생된 것도 소급하여 효력이 소멸된다. 따라서 국회의 행정입법 시정요구에 대한 위헌 가능성을 제기하기 위하여 미국의 의회거부권 위헌판결을 예로 드는 것은 한 마디로 견강부회다.
정재룡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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