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포커 게임의 승자

[the300]

박재범 기자 l 2018.06.05 04:01
“파괴적·단절적 지도자(disruptive chief)”.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에드윈 퓰러 헤리티지재단 회장의 평이다. 트럼프의 절친이자 멘토인 퓰러 회장은 “그래서 창조적”이라고 덧붙인다. ‘단절’은 과거를 답습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트럼프는 클린턴·오바마 등 전임 대통령과 확실히 선을 긋는다.

대북정책 관련 트럼프의 메시지는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다”였다. 그렇다고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등 공화당을 따르는 것도 아니다. 전통적 강경파의 노선과 궤를 달리 한다. 북미정상회담, 빅딜 등 ‘가지 않은 길’을 간다. 퓰러는 말한다. “(트럼프는) 고정 관념을 깨고 새롭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 탁월한 해법을 찾는 것을 즐긴다.”   
  
파괴와 단절은 비예측성을 낳는다. 예측은 과거 흐름을 전제로 한다. 과거와 단절하기에 예측은 트럼프를 비켜간다. ‘벼랑끝 전술’과 ‘핵무기 위협’은 북한의 대표적 전술이다. 이번엔 트럼프가 이 전술을 활용했다. ‘북미정상회담 취소’는 지금까지와 다른 미국의 ‘벼랑끝 전술’이었다.

퓰러는 “그는 정말 협상가다. 머릿속에 본인 목표가 있다”고 했다. 목표는 분명하다. 북핵과 대륙간타도미사일(ICBM) 폐기다. 트럼프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당신은 당신의 핵 능력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것이 매우 엄청나고 막강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들이 절대 사용되지 않기를 신에게 기도를 드린다.” 무서운 말이다.

리비아 모델, 이스라엘 모델 등 많은 모델을 비유하지만 의미없다. 과거와 다른, 단절적이고 독자적인 게 ‘트럼프 방식(Trumpian Way)’이다. 그 ‘트럼프 방식’은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확인될 뿐 예측할 수 없다.     

김정은은 나이에 비해 노련하다. 외교 능력만 보면 북한은 강자다. 미국 정가나 언론 등이 트럼프의 행보에 우려를 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코 실력을 무시할 수 없는 상대란 의미다. 외신은 김정은을 ‘가장 영향력 있는 밀레니얼 세대’ ‘청년다운 기발한 행보’ 등으로 평한다. ‘불량국가’ ‘테러지원국’의 수령 이미지를 조용히 없앤다.

남북정상회담, 대미 협상 등을 보면 생각보다 빠르고 과감하다. 그렇다고 과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블러핑’이 안 먹히면 바로 숙인다. ‘김정은 스타일’이다. 주고 받는 테이블에서 ‘받는 것’에 주력한다. 어차피 줄 것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 미국은 이렇게 게임을 한다. 트럼프를 비롯 워싱턴 정가는 ‘포커 게임’으로 부른다. “(트럼프는) 포커페이스에 능한 탁월한 협상가”(퓰너)란 말이 떠오른다. 판돈은 ‘핵’이다. 핵을 만든 북한, 더 많은 핵을 갖고 있는 미국은 핵을 ‘칩’ 삼아 도박을 벌인다. 섬뜩하다. 우리 처지가 처량하고 한심하다. 어찌보면 5000년 우리 역사가 그랬다. 해방 후 분단 과정, 6.25 전쟁 후 대립 과정 등도 결국 국제사회 게임의 결과였다.

우린 당사자였지만 철저히 배제됐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과정에 동참했다. ‘문재인 프로세스’는 가동됐다.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을 신뢰한다. 김정은도 문재인에게 기댄다. ‘중재자’건 ‘운전자’건 트럼프와 김정은을 포커판에 앉힌 이가 문재인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각자 원하는 것을 챙기려 한다.

북핵 폐기와 체제 안정, 노벨평화상과 정상국가 지도자 등을 노린다. 우린 그 사이에서 ‘평화’를 얻는다. 전쟁 공포가 사라진 한반도의 평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영구적 평화다. 도박판 격언이 있다. “결국 돈따는 사람은 판을 깔아준 ‘하우스(도박장)’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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