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내 아이를 돌봐야 한다

[the300][워킹맘 좌충우돌](17)

이윤진 사회복지학 박사(육아정책연구소) l 2018.06.18 18:10
일을 하면서 가장 마음이 쓰이는 일은 내 아이를 맡기는 일일테다. 특히, 갓 백일을 넘긴 아이를 그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은 어떤 상황보다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아이가 어릴 때에는 집 주변에 어린이집이 있다 한들 ‘내 집에서 아이를 누군가 돌봐줬으면’ 하는 마음을 한번쯤은 가져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월급날이 되면, 내가 왜 경제활동을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들게 될 정도이다. 단순히 내 자아실현을 위해서라면 일을 그만두는 것이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그동안 공들인 시간이 아까워서, 그리고 한 달만 더 버텨보자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더욱이 아이를 맡긴다는 것은 집안 일을 맡겨야 하는 상황과는 차이가 있기에 그 누군가를 선택하는 일이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운 좋게 마음에 쏙 드는 베이비시터를 골랐다고 해도, 늘 불안감이 상존하는 것은 모든 부모의 심리일 것이다. 일단, 내 아이를 전적으로 맡고 있는 사람에 대한 불안감은 원초적인 불안감에 불과하다. 일을 하고 있는 와중에 시터의 사정으로, 혹은 시터와 나와의 궁합(?)이 맞지 않아서 갑작스럽게 일을 그만두게 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전자의 경우에는 휴가를 내고서 집에서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 역시 감수해야 한다. 

만약 기관에 보낸다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굳이 낯선 그 누군가를 집안에서 매일 봐야 할 필요가 없으며 내가 선생님을 택일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관 보육은 그 무엇보다 국가가 인증해주는 기관에서의 보육이다. 막연하게 가지게 되는 불안감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지금의 현실은 내가 원하는 기관에 반드시 내 아이를 보낼 수 있다는 확답을 할 수 없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공보육이 확충되고 영유아 1인당 입소할 수 있는 어린이집이 충분하다고 한들, ‘근거리에, 두 돌 미만의 아이를 데리고 도보로 15분 내외 이동이 가능한, 내가 마음에 드는’ 어린이집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바우처로 소비자에게 기관 선택권을 넘겨줬다는 말이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래서 찾게 되는 것이 집안에서 아이를 봐줄 수 있는 베이비시터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비용과 신뢰성의 측면에서 많은 것을 포기하고 또 감수하여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국가에서 공공서비스로 제공되는 영역이 있다. 바로 아이돌보미 제도이다. 하지만 수요에 비하여 그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2017년 여성가족부의 조사결과 동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들의 전반적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90점에 육박할 정도로 만족도 차원에서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수요자 중심으로 봤을 때의 결과이다. 향후에 지인에게 추천하겠느냐와 관련한 질문에는 응답자의 약 97%가 긍정적으로 답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정부 지원 시간에 대한 만족도는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해당 결과만 종합하여 볼 때, 이용자 입장에서 아이돌봄서비스가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서비스 범위를 확장하여 주었으면 하는 기대 심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전체 이용자 수가 민간 시터 이용자 수에 비해서는 턱없이 낮은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이 기관 보육에 비해 현저히 낮기도 하거니와 공급이 적은 데서 기인하는 것을 이유 중 하나로 들 수 있다. 

여러 가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겠지만 민간 베이비시터 인증제를 국가에서 시행하는 것과 아이돌보미 수를 늘리는 것, 국가의 재정 지원을 확장하는 것, 육아휴직 시에는 기관 보육과 가정 내 시간제 보육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해당 정책들은 새로운 것이 아닌 기존의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 계획에서 한번쯤은 언급되었던 것들로 기관 보육과 병행하여 수요자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는 관점에서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시간제 일자리의 정착, 다양한 근로시간의 수용 등의 정책에 대응하여 일괄적인 기관 보육은 맞춤형과 종일반의 혼돈에서 벗어나 ‘국가가 인증한’ 가정 내 시간제 보육 지원의 확대와 병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아이를 돌보지 않을 때에도 누군가는 내 아이를 돌봐야 한다. 아이의 연령이 일정 수준 도달하기 이전에는 말이다. 그리고 아이가 몇 살이 되든 내 옆에 있지 않으면 불안한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다양한 직업적 환경의 고려, 유연한 일자리의 확산과 더불어 여러 가지 노동 시장 환경에 조응할 수 있는 방안으로 수요자가 중심이 되는 가정 내 보육의 공공화, 그리고 다양한 보육 선택권의 확대가 병행되길 바라본다. (본 글은 해당 기관의 공식적인 의견과는 무관합니다.) [칼럼/외부기고]
이윤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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