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無가치' 보수

[the300]

박재범 기자 l 2018.07.10 04:30
“대선이 이제 끝났다.” 지방선거 후 나온 총평 중 하나다. 촛불과 탄핵, 그리고 그 이후를 담는다. 여당의 압승, 보수의 몰락은 사후 승인일 뿐이다.

대선에 나섰던 선수들은 1년이 지난 2018년 여름, 쓸쓸히 퇴장했다. 홍준표·안철수·유승민 등은 자발적으로 버티다 비자발적으로 물러났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그들은 해 본 뒤에야 알았다. 그들은 ‘담대한’ 도전에 무게를 싣고 싶었지만 국민들은 ‘무의미한’ 도전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촛불 이후 흐름은 소통과 공감이다. 옳고 그름에 앞선다. ‘계몽’보다 함께 고민하고 알아가는 ‘과정’을 중시한다. 하지만 야당의 대표선수들은 몰랐다. 이해와 준비가 부족했다. 대선에 갑작스레 등판했던 홍준표는 대선 이후 곧바로 당 대표가 됐다. 선거 평가는 없었다. 그의 메시지 중 미래지향적 가치로 기억되는 것은 없다. 자유한국당의 비전을 선언한 적도 없다. 보수의 미래를 외치지도 못했다. ‘좌파 척결’이 극우정당의 비전은 될 수 있어도 보수 정당의 지향점이 될 순 없다.

시대의 ‘담론’과 보수의 ‘가치’, 한국당의 ‘비전’을 갖고 논쟁이라도 했다면 한국당의 처지는 지금과 달랐을 거다. 물론 이런 기대가 사치라는 것도 잘 안다. 개혁 보수를 내건 유승민의 한계도 확인됐다. 그는 개혁 보수의 진테제를 말하지 못했다. ‘극우 보수’와 차별화도 실패했다. ‘안보’와 ‘경제’는 더 이상 보수의 가치가 아니다. 유승민은 이를 몰랐거나 애써 외면했다. ‘옛 안보’는 ‘신(新 )평화’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보수 성향의 한 인사는 답답한 듯 “성문 종합 (영어)을 꺼내드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옛날 교과서만 부여잡고 있다는 얘기다. “영어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어떻게 공부하고 접근하느냐의 문제다. 시대가 변했으면 참고서와 공부 방식도 달라지는 것 아니냐.”

안철수는 더 그랬다. 대선 후보와 서울시장 후보, 당 대표와 정치인 사이에서 스스로의 위치조차 잡지 못했다. 포지션이 없는 상황에서 전략·전술은 무의미하다. 남북 관계의 쓰나미에 이슈가 묻혔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하지만 정작 홍준표·안철수·유승민이 말한 가치와 비전은 없다. 보수의 미래를 외친 이가 있었다면 최소한의 내용은 살아 있기 마련이다.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신지예가 대표적이다. 그는 현실의 흐름, 하나의 가치에 주목하고 호흡했다. 그의 목소리는 선거 후에도 이어지고 확산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핑계거리만 찾는 야당과 다르다. 정의당과 녹색당에 야당 수준의 마이크가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결국 중요한 것은 조직의 비전과 가치다. 하물며 정당은 더하다. 강령을 만들고 당헌·당규를 배치하는 게 옛말로 ‘의식화·조직화’의 시작이고 점잖은 표현으로 소통과 공유의 출발점이다. 촛불 이후, 탄핵 이후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못하는 정당은 존재 이유가 없다. 국민의 70%가 촛불을 들었고 이중 절반은 보수일텐데 보수정당은 호흡하지 못한다.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니 거부하거나 좌파로 몰아붙이는 게 전부다. 그러는 사이 시대정신, 가치를 놓친다. 상생, 평화, 여성, 인권, 환경, 노동, 난민…. 보수의 가치로 만든 게 있을까.

그나마 민주당은 촛불정신 등을 강령에 반영하겠다며 비전과 가치를 챙기는 모양새라도 취한다. 예습은 못해도 복습은 하는 정당이다. 정의당과 녹색당은 미래 가치를 챙기며 예습한다. 예습도, 복습도 못하는 정당은 설 곳이 없다. 비상대책위원장 영입보다 더 중요한 게 비전과 가치의 학습과 정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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