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살 헌법 개정, 희망은 살아있다

[the300][런치리포트-제헌70주년]사회 각분야 현안 드러나..정치권이 개헌 천덕꾸러기 만들어

우경희 기자 l 2018.07.17 04:50

제헌국회/사진=머니투데이DB


#대한민국 헌법 제정 70주년, 현행 헌법의 나이는 32살이다. 제헌 이래 헌법은 9차례 바뀌었지만 최근 32년간은 한 차례도 헌법개정(개헌)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새 정치는 민주주의를 향해 진일보했고 경제규모는 몰라보게 커졌다. 그러나 헌법만 한 세대가 넘는 동안 그대로다. 우리 헌법은 '맞지 않는 옷'이라는 오명을 썼다. 모든 정권이 개헌을 시도했지만 번번히 무산됐다. 때론 의도가 불순했다. 또 시기가 맞지 않기도 했다. 문재인정부의 개헌 논의도 현상적으로는 비슷하다. 대통령이 개헌 아젠다를 던지고 국회가 이를 받아 논의했지만 정쟁 속에 사실상 무산 위기다.

그러나 잿더미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게 정치다. 개헌 논의는 아무런 성과 없이 사그러진게 아니다. 사법개혁, 경제개혁, 농업개혁, 교육개혁, 국방개혁 등 우리 사회의 모든 갈등 구조가 확인됐다.  확인된 갈등을 성숙된 논의를 통해 효율적으로 해소시켜나가는지가 정치권과 각 사회계층의 몫으로 남았다. 논의가 성숙되면 시선은 다시 개헌으로 모일 수밖에 없다. 자연스러운 동력이 확보된다는 거다.

◇사법부터 농업까지..개헌 X-레이로 대한민국 찍었다 = 개헌 논의가 시작되자 사회 각층의 요구가 들끓었다. 문 대통령의 공약과 맞물린 사법개혁이 가장 먼저였다. 문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 인사중립성 강화 등을 검찰개혁 공약으로 내세웠다. 최근 검찰과 경찰이 수사종결권의 경찰 부여를 골자로 하는 수사권 조정안에 합의하면서 일정 성과를 냈다.

개헌의 타깃은 영장청구권이었다. 박정희정권 이후 검사에게만 부여된 영장청구권을 경찰에 나눠주자는게 논의의 핵심이었다. 영장청구권을 바탕으로 수사권, 수사지휘권과 종결권이 모두 검찰이 행사해 왔다. 검경 수사권조정에서 이 내용은 제외됐지만 향후 개헌 논의 과정에서 다시 검토될 가능성이 있다. 

박근혜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후폭풍은 개헌 논의가 교육의 영역을 피해갈 수 없게 만들었다. 교육이 정권에 휘둘리는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개헌 과정에서 교육의 중립성과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거다. 특히 헌법 상 개인의 자율성과 기본권 차원에 머물고 있는 교육에 대해 국가의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농업계도 헌법의 전근대적인 규정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현행 헌법은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고수한다.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거다. 뿌리 깊은 소작제에 기인한 개념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해방과 농지개혁을 거치면서 경자유전 원칙과 농지대여 불허 원칙이 헌법에 명시됐다. 당시엔 꼭 필요한 개념이었다.

현재의 개념은 더 복잡하다. 경자유전 원칙 폐지론자들은 대규모 기업농의 탄생을 위해 경자유전 원칙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농업시장의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대형 기업농이 성장할 수 없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거다. 반면 경자유전의 둑을 무너트릴 경우 농산물의 자급자족을 통한 식량자원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향후 전국민적 공론화가 필요한 대목이다. 정부는 일단 경자유전 존치를 결정한 상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내 삶을 바꾸는 정권교체 정책시리즈 스물한번째 - 전국이 골고루 잘 사는 대한민국' 자치분권정책 발표를 하고 있다.


◇지방분권-성평등..아우를 헌법개정 논의 필요 = 문 대통령이 '권력구조개편'보다 더 중요 개헌 과제로 추진한건 지방분권이었다. 수도권 중심 성장 전략을 취하면서 수도권은 비대해지고 지방은 낙후됐다. 문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지방분권을 명문화하고 제2국무회의를 제도화하려 했다. 국무총리와 장관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현행 국무회의를 바꿀 수 없다면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멤버가 되는 별도의 국무회의를 만들자는 거였다.

이와 함께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조정해 지자체들의 재정을 건전화하고 별도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주려 했다. 그러다보면 지방자치 경찰제도, 교육이 지방자치 등 영역이 자연스럽게 확대될 수 있다는 거다. 이 역시 향후 개헌의 핵심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출산율과 취업 등 기본적 지표의 개선을 위해서도 수도권과 지방의 각종 격차 해소는 꼭 필요한 요소다.

성평등 이슈는 개헌의 기본권 논의 과정에서 가장 찬반양론이 뜨거웠던 이슈 중 하나다.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배려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으면서 동성애에 대한 호의적 시각이 커져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보수진영과 종교계는 극렬히 반대한다. 핵심은 헌법 상 현행 양성평등이라는 표현을 성평등으로 변경하느냐 마느냐다. 조문 변경 자체가 이른바 '제3의 성'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국민 여론이 양분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종교의 영역이 개입되는 게 문제다. 동성애 반대의 핵심에 개신교단이 있다. 보수진영의 정치적 수요가 이와 얽히면서 더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집회에 참가하는 등 현장에서 움직이는 보수지지층의 상당수가 종교인들이다.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동성애 문제를 보수 결집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의사당 로텐더홀 벽면에 장식된 제헌국회의원 부조/사진=머니투데이DB


◇나라의 뼈대 헌법, 누가 천덕꾸러기로 만드나 = 대한민국 헌법은 시작부터 흔들렸다. 1948년 198명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제헌국회는 내각책임제를 헌법에 못박았다. 그러나 이승만은 이를 거부했다. 끝내 대통령제와 단원제를 관철시켰다. 타협안으로 국무총리를 두기로 했으나 예나 지금이나 실권은 없었다. 시작부터 살아있는 권력의 입맛대로 고쳐진 헌법이 그해 7월 17일에 발표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왕조의 설립일이었다.

이후 격동의 근대사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려 온 헌법은 개정 논의가 본격화된 이후 32년간 새 모습을 찾지 못했다. 새 정부 들어 국회 차원의 헌법개정특별위원회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힘을 모아 개헌 작업에 나섰지만 결국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사실상 개헌 시한을 넘겼다. 촛불혁명으로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기본 정신을 온국민이 다시 깨달은 시점임을 감안하면 아쉬운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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