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文정부를 향한 '소통'령

[the300]

박재범 기자 l 2018.07.25 04:30

  

‘실용주의’를 표방했던 이명박 정부가 ‘이념’으로 회귀한 계기는 2008년 광우병 사태다. 광우병 공포 확산, 촛불 시위 등을 거치면서다. 정권은 광우병 사태를 ‘반정부 투쟁’으로 봤다. 국민의 무지(無知)를 악용한 좌파의 선동이라고 진단했다.

 

알리고 설명해 무지를 깨면 공포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정권은 믿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국내에서 광우병 발생으로 인한 사망자는 한명도 없다. 홍보와 설명은 통하지 않았다. 좌파의 반정부 선동이란 그들의 믿음은 더 확고해졌다.

 

하지만 광우병 사태의 본질을 정권만 몰랐다. ‘과학’이 아닌 ‘소통’의 문제였다는 것을. 국민이 원한 것은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아니었다. ‘선 결정 후 통보’ ‘일방적·주입식 설명’ 등에 대한 반발이었다. 국민은 소통을 원했는데 불통의 상징인 ‘명박 산성’을 받았다.

 

박근혜 정권 때는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진상 규명, 안전 점검 등은 당연한 외침이었다. 국민 생명과 안전 보장은 정부의 존재 이유다. 국민은 그 책임을 물었는데 정권은 답조차 거부했다. 숨거나 피했다. 정권은 오히려 묻는 이들의 진의를, 의도를 의심했다. ‘반정부 선동’의 일환으로 봤다. 정치적 의도를 갖고 악용한다고 확신했다. 이명박 정권이 광우병 사태를 보는 것과 흡사했다. 사실 국민이 바란 것은 큰 게 아니었다. 위로와 공감이었다.

 

정권은 외면했다. 세월호란 단어만 나오면 경기(驚氣)를 일으켰다. 과도할 정도의 과민 반응을 보였다. 놀란 것은 국민이었다. 본질을 외면한 채 정치적 의도의 잣대로 본 때문이다. ‘불통+공감능력 결여’의 정권을, 국민은 버렸다.

 

문재인 정부는 달랐다. 소통과 공감을 전면에 내세웠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추모사를 하다 눈물을 흘린 유가족 김소형씨를 위로하며 안아준 게 대표적이다.

 

최대 난제로 꼽혔던 북핵 문제, 외교 관계에 있어서도 일방적이거나 강압적이지 않았다. 상대국의 외교적 결례까지 감내했고 인내했다. 그렇게 공감하며 신뢰를 얻었다. 여권 고위 인사는 “문 대통령의 엄청난 인내심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다. 높은 지지율은 국민의 준 선물이다.

 

국민은 그러나 곧 경고를 보낸다. 경제 문제다. 고용 지표는 최악이다. 성장도 흔들린다. 정권은 설명하고 해명하고 변명한다. “펀더멘탈은 괜찮다”는 모범답안이다.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과 ‘포용적 성장’ 등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을 그림까지 그리며 설명한다. ‘시차론’에 이어 ‘인구론(생산가능인구 급감)’, ‘산업구조론(자영업자 편중)’ ‘임대료+가맹점’ 등 핑계를 댄다.

 

밑바탕엔 보수의 선동이란 인식이 없지 않다. 정책을 제대로 알리고 ‘을 vs 을’의 구도를 ‘갑 vs을’의 구도로 바꾸면 될 것이라고 정권은 믿는다.

 

하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다. 최저임금, 소득주도 성장 논란을 보수의 정치 공세라고 인식하는 순간, 이른바 ‘디바이드 앤 룰(분할 통치)’의 하나라고 보는 순간, 국민은 입을 닫고 등을 돌린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소득주도 성장의 경제학적 의미, 자영업자 편중 구조, 편의점 출점 현황 등이 아니다. 국민의 문제제기에 대한 ‘자세와 태도’를 본다. 4대강, 광우병, 세월호 등 굵직한 이슈가 이전 정권을 흔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국민이 정권을 버린 이유는 그 과정에서 보인 정권의 ‘태도’ 때문이다.

 

경제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어떻게 공감하고 소통할 지를 국민이 묻고 있다. 129명의 여당 의원들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여당의 자치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들이 진지한 태도로 자영업자·소상공인 등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지…. 국민은 그것을 ‘경고’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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