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 미중 '파워게임' 속 '평화협상' 앞세우기

[the300][뷰300]美 '힘의 외교' 박차…북핵 협상 속도전 회복이 당면과제

최경민 기자 l 2018.08.27 16:12
/그래픽=이승현 기자

북핵 협상이 G2(미국·중국) 파워게임 양상으로 진행될 상황에 직면했다.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협상의 속도가 떨어지자, 패권경쟁이라는 동북아의 구조에 평화 의제가 종속될 가능성이 커졌다. 문재인 정부는 '힘의 논리'를 극복하고 다시 협상의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불충분했던 북한의 비핵화 조치 △중국과의 무역전쟁 구도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의 방북 일정 취소 이유로 들었다. 그러면서 "중국과 무역관계가 해결된 이후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 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더디게 진행되자 대중 무역전쟁의 하위 의제로 북핵 협상을 넣은 모양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국 견제라는 기본적인 전략에 충실한 방식이다. 특히 중국과의 힘겨루기를 끝내는 것이 선결과제임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이 북한의 후견인 격으로 나서고 있고, 북한 역시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밀당'을 하며 되도록 많은 과실을 따려고 했기 때문이다. 강대국 간의 파워게임을 통해 여타 외교적 현안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시각을 가진 '패권국'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이 우선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힘의 외교를 앞세운 미국의 카드는 '제재와 압박'이다. 중국에 대한 무역전쟁의 수위를 높이면서 대북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남북미중 4자 종전선언을 '무역전쟁 후'의 과제로 남겨둔 것은 또다른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반도 종전선언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을 보장하면서, 무역전쟁에서 사실상 항복선언을 받는 방식도 가능하다. 시 주석에게 중국 국내 위상을 챙겨주면서 출구전략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이 무역전쟁을 버티지 못하면, 북한 역시 전적으로 미국과의 협상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미사일발사장 해체와 종전선언을 교환하려고 했던 북한이지만, 중국이라는 축이 무너진다면 핵신고 등까지 추가로 내놓을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같이 특유의 벼랑끝 전술을 통해 중국과 북한을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

문제는 '힘의 논리'가 가진 불확실성이다. 시 주석이 장기간 '버티기'를 택해 미중 간 무역전쟁이 길어질 수도 있고, 북한이 최대한도의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협상 자체를 깨버릴 수도 있다.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우리 입장에서는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중국 봉쇄라는 미국의 궁극적 목표만 달성하고 북한의 비핵화와 경제적 평화체제 구성이라는 우리의 목표는 미결 과제로 남는 상황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과제는 G2 패권다툼 아래로 떨어질 위기에 놓인 북핵 의제를 다시 메인 이슈로 끌어올리는 것이 될 것이다. 미국의 '힘의 외교'가 관철될 경우 선제적으로 협상에 나서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조치다. 이같은 맥락에서 청와대는 최근의 상황을 '위기는 기회'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청와대 측은 "문 대통령의 역할은 더 커졌다. 북미 간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문 대통령의 촉진자·중재자 역할이 더 커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다음달 예정된 평양 남북 정상회담은 정상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의제 자체는 달라질 수 있다. 철도 착공 등 경협을 논하려던 게 기본 구상이었지만, 이제는 북한의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문 대통령이 약속받는 게 더 유효한 방식일 수 있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미국이 무역전쟁을 제쳐두고 협상에 나설 수 있을 정도의 가시적인 결과물을 문 대통령이 도출한다면 다시 속도전 국면이 펼쳐질 수 있다.

우리가 쥐고 있는 '경협'이라는 카드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경제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이용해야 한다. 철도 등 북한과의 경협은 중국과도 연계될 수 있는 이슈이기에 무역전쟁을 겪고 있는 시진핑 주석에게 하나의 출구전략을 제시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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