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원팀'과 '레드팀'

[the300]

박재범 정치부장 l 2018.09.10 05:00

지난해 7월 25일 국무회의.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새 정부 국무위원만 모인 자리다. 회의 말미 문 대통령이 당부한다.

 

“어떤 얘기든 자유롭게 하는 국무회의가 되도록 하자. 자신의 소관 분야가 아니어서 잘 모르는 얘기가 될 지 모른다는 걱정도 하지 말고 토론하자. 오히려 상식적 시선으로 보는 것이 국민의 질문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부처의 ‘장(長)’이 모인 회의보다 국무위원들이 모인 회의를 강조했다. 부처 벽에 갇히기보다 국가 정책 전반을 논의하길 바랐다. 실제 국무회의의 의미가 그렇다. 국무회의는 자문적 기능을 가진 최고정책심의기관이다. 정부 권한에 속하는 정책을 심의한다. 


행정 각부의 장관은 국무위원으로 국무회의를 구성한다. 부처 장관 자격으로 참석하는 동시에 국무위원 자격으로 임무를 해야 한다. 부처 소관 업무를 넘어 모든 국정에 관여하는 게 헌법상 의무다.

 

물론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국무회의는 법령, 안건 등을 단순 통과시키는 게 관행이 됐다. 참여정부 때 변화가 있긴 했다. ‘토론식 국무회의’다. 국무회의를 1부와 2부로 나눴다. 1부 때는 안건을 심의했다. 2부 때 국정 과제를 토론했다. 중장기 과제 등을 다뤘다. 오전 9시에 시작한 국무회의가 정오를 넘기기 일쑤였다. 장관들이 점심 약속에 늦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NATO(Not Action Talk Only) 정부’라는 비아냥이 나왔지만 방향을 잡아가는 시도는 평가를 받았다. 이마저도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잃었다. 토론 시간에서 대통령의 발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다. 국무위원의 상식은 그만큼 전해지지 않았다.

 

자유롭게 말하는 국무회의를 바랐던 이 정부는 어떨까. 참석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초반엔 정치인 출신 장관을 중심으로 자유로운 발언이 나왔다. ‘오지랖이 넓다’고 볼 수 있을 만큼의 발언도 있었다.

 

하지만 점차 줄었다. 최근엔 거의 없다고 한다. 특별한 이유보단 바쁜 일정 탓을 한다. 시행령 의결, 법안 공포 등 절차적 업무만 해도 한 시간 이상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발언을 종용하면 그 때서야 조금 얘기가 오간다. 한 장관은 “다들 바쁜 것을 아는데 굳이 말 한 마디 덧붙이는 게 좀 그렇다”라고 했다. 자연스레 대통령 주재 토론보다 ‘당부’ ‘주문’이 주가 된다. 


수석보좌관 회의, 부처 협의, 당정 협의 등에서 논의한 내용을 다시 꺼내는 게 쉽지 않다. 필요하면 청와대나 여당에 의견을 전달하면 된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국무위원보다 부처 장관 역할과 임무에 관심을 둔 때문이다.

 

소득주도 성장, 최저임금 등 논란거리는 ‘경제팀’의 문제일 뿐 국무위원이 걱정할 거리가 못 된다. 국무위원의 상식적 시선, 국민의 질문은 국무회의에 담기지 못한다. 국무위원은, 부처의 장관은 그렇게 습관처럼 일하고 관성으로 지낸다.

 

어찌보면 인간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습관적으로 하는 일이니 말이다. 게다가 침묵을 지킨다고 해고되는 경우는 없지 않나. 그러는 사이 객관적 시각은 사라진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확증 편향은 심화된다.

 

첫 국무회의 후 1년여가 흐른 지난달말. 여당 지도부 선출을 계기로 당·정·청이 한 자리에 모였다. 여당 지도부, 청와대 참모진, 국무위원이 집결했다. 키워드는 ‘원 팀(One Team)’이었다. 이에앞서 문 대통령도 ‘팀 플레이’ ‘팀 워크’를 강조했다. 정책의 혼선과 갈등을 없애자는 취지다.

 

다만 ‘하나’만 강조하다가 국민의 질문, 상식적 문제 제기가 놓일 공간마저 없어질까 걱정이다. 최근 출간된 ‘레드 팀(Red Team)’의 저자 마이카 젠코는 ‘레드 팀’의 존재 필요성을 강조하며 “자신이 한 숙제를 스스로 점수 매기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여권이 곱씹어볼 지점이다. 정치 공세나 쓴소리와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레드 팀’을 통해 1년의 ‘관성’과 ‘습관’을 짚어본 뒤 ‘원 팀’을 외쳐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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