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정지 갈음 과징금 제도의 문제점

[the300][정재룡의 입법이야기]

정재룡 국회 수석전문위원 l 2018.09.17 18:24
2013년 국회는 화학물질의 체계적 관리로 화학사고를 예방하기 위하여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화학물질관리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했다. 당시 구미 불산사고, 삼성전자 화학물질 유출사고 등이 잇따라 발생하여 인명피해가 야기되고 주변 환경이 파괴되면서 화학물질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국회는 그러한 차원에서 입법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국회의 조치를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이 컸다. 특히, 두 개의 입법에 포함되어 있던 과징금 규정이 기업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는 과잉 입법이라는 지적이었다. 국회는 당시 이러한 여론을 반영하여 법사위원회 심사에서 두 개의 입법에 포함되어 있던 영업정지 갈음 과징금 규정 이외에 △행정명령 위반 등 행정상 의무위반에 대한 과징금 규정을 모두 삭제(일부 사항은 영업정지 갈음 과징금 부과 대상으로 전환)하고 △과징금 부과 기준도 ‘전체 매출액’에서 ‘해당 사업장의 매출액’으로 변경하고 △그 비율도 매출액 대비 10% 이하에서 5% 이하로 낮췄지만, 비판은 여전했다. 반면 두 개 입법의 소관 위원회인 환경노동위원회는 법사위원회가 입법의 실질적인 내용을 수정한 것은 국회법을 명백히 위반한 월권행위라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2월 국회는 2013년 법사위원회에서 삭제된 행정상 의무위반에 대한 과징금 규정을 포함하는 내용의, 정부가 제출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가결하였다. 과징금 부과 기준도 당시 논란이 되었던 매출액의 5%로 규정하였다. 이번에는 특별한 논란 없이 넘어갔다. 이는 2013년 화학물질 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국회의 입법조치에 별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2013년 당시 법사위원회에서 행정상 의무위반에 대한 과징금 규정이 모두 삭제된 것이 적절했는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대폭적 수정이 이루어진 것인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당시 법사위원회 심사에서 과징금 규정의 삭제는 전문위원의 검토보고가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당시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는 부당이득이 발생하지 않는 행정상 의무위반에 대한 과징금(이하 ‘순수 금전제재 과징금’) 규정은 우리 법체계에 없는 것이고 과징금은 국민에게 크게 불리하고 벌칙 등과 중복제재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과징금 규정의 최소화 차원에서 모두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그것이 반영되어 입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현행법에서 영업정지 갈음 과징금 규정의 비중이 가장 높지만 순수 금전제재 과징금 규정도 엄연히 존재하고, 오히려 이것이 부당이득환수 성격의 과징금 규정보다 더 많다.

영업정지처분은 영업자가 행정상의 의무를 위반할 때 제재로서 가하는 강력한 수단이지만, 이로 인하여 그 영업자가 수행하는 영업활동을 이용하는 일반국민에게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 대한 공익적 고려에 따라 부당이득환수 과징금과 비슷한 시기에 행정처분을 대신하는 금전적 제재로서의 과징금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후 이러한 영업정지 갈음 과징금 규정이 행정편의적 측면 때문에 대거 신설되고 공익성이 약한 사업 분야까지 확대되면서 현재 가장 비중이 높은 과징금 규정이 되었는데, 영업정지 갈음 과징금 규정의 양산은 영업정지처분이 갖는 제재 효과를 충분히 달성하기 어렵게 하고 위법행위를 조장하는 측면도 있게 된다.

법제처의 법령심사 사례를 보면 방사선 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자에게 영업정지 갈음 과징금을 도입하는 것은 영업정지로 달성할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의 국민생활 보호라는 효과를 과징금으로는 달성할 수 없으므로 허용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와 달리 현행법을 보면 ‘원자력안전법’이나 ‘고압가스 안전관리법’ 등 안전관리 관련법도 대거 영업정지 갈음 과징금 규정을 두고 있다.

또한, 부패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입법 단계에서 행정청에 과다한 재량을 부여하지 않도록 하거나 재량을 부여하더라도 그 행사가 투명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영업정지 갈음 과징금 규정은 기본적으로 행정청에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량권 최소화 방향에 역행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문제점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영업정지 갈음 과징금제도의 입법에 신중할 필요가 있는데, 당시 전문위원 검토보고는 그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마치 순수 금전제재 과징금 규정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본 결과 부적절한 입법을 초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원래 ‘원양산업발전법’에는 어업정지 갈음 과징금 규정이 있었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이 불법어획의 제재금액 산정에 필요한 자료가 충분치 않아 제제금액 산정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어업정지 대신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제재는 불법어획을 억제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제재의 기본원칙에 합치하지 않기 때문에 해당 위법행위는 과징금이 아닌 어업정지로 처분하여야 한다고 이의제기했다. 이에 따라 2015년 1월 개정 ‘원양산업발전법’에서는 어업정지 갈음 과징금 규정이 삭제되었다.

과징금의 수준은 과다해도 안 되지만 과소해도 안 된다. ‘원양산업발전법’ 개정 사례가 시사하듯 현재 영업정지 갈음 과징금 규정을 두고 있는 법률들의 과징금 수준이 영업정지처분에 따른 손실액에 상응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영업정지 규정은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이처럼 영업정지 규정을 사실상 사문화시키는 영업정지 갈음 과징금제도는 재고가 필요하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