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천 칼럼] 부동산 정책, 보수와 진보의 3가지 미신(迷信)

[the300]

최병천 정책혁신가 l 2018.09.20 23:09
최병천 정책혁신가


정책 공부를 업(業)으로 하는 사람 입장에서, 부동산 정책은 매우 흥미로운 분야이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재밌는 분야이다. 부동산은 주거 공간이면서, 가치저장 기능을 하고, 투자재(投資財)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

특히 정책을 책임지는 사람들은 이중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나머지를 도덕적-윤리적으로 접근해선 안된다. 부동산 정책 판단에 사회과학적 요인과 윤리적 요인이 뒤섞이게 된다.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잘못된 상식을 ‘다수의 의견’으로 갖게 된다.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됐다는 점에서 일종의 미신(迷信)이다.

보수의 3가지 미신(迷信)은 첫째, ‘노무현 정부 부동산 최고 폭등론’이다. 참여정부 때 우리나라 부동산이 초유의 폭등을 했다는 것이다. 보수언론이 활발하게 유포하고 어느 정도 대중의 상식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둘째, ‘친노정부 무능론’이다. 노무현 정부 때 폭등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니 또 폭등했다는 것이다. 셋째, ‘뒷북 대응론’이다. 무능한 좌파정권의 정책 책임자가 이념적 편향을 갖고 있어 잘못된 처방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결론부터 말해 팩트가 아니거나, 과장된 내용들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노무현 정부 부동산 최고 폭등론이다. 이 주장은 부분적으로 팩트가 아니며 부분적으로 과장되었다. 『대한민국 부동산 7가지 질문』(하승주, 스마트북스)라는 책은 2000년~2006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주요 국가들의 실질 주택가격 상승률을 비교한다.

이 기간 OECD 평균 실질 주택가격 상승율은 42%였다. 반면, 한국은 21%였다. 한국의 주택가격 상승률은 OECD의 ‘절반’에 불과했다. 부동산에 관한 다른 책인 SK증권 김효진 이코노미스트가 쓴 『나는 부동산 싸게 사기로 했다』(카멜북스)에는 더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최근 20년~30년 동안 물가상승, 소득상승, 부동산 상승 데이타를 국가별로 비교하면, 한국은 그 중 ‘가장 적은’ 상승폭을 가진 나라이다. 홍콩, 러시아, 영국이 10배 이상 올랐고, EU 평균, 노르웨이, 네덜란드는 5배 이상 상승했다. 한국을 포함한 호주, 스위스는 2배 이상~3배 미만 상승에 불과했다.

참여정부 시기에 부동산 가격상승이 있었던 것 자체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 과잉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한 박자 늦긴 했지만 ‘금융의 부동산 유입’을 제한하는 LTV(주택담보인정비율) 정책과 DTI(부채상환비율) 정책을 도입했다. 한국이 2009년 세계 금융위기의 피해를 덜 본 이유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글로벌 차원에서 본다면 ‘나름 선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둘째, 친노정부 무능론이다. 노무현 정부 때 부동산이 폭등했는데, 문재인 정부 때 부동산이 폭등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원래 우리나라 부동산 경기변동 주기(週期)가 약 10년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때 국토교통부 장관을 했던 서승환 연세대 교수가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발간한 『부동산과 시장경제』에 자세히 나온다.

서승환 교수는 1975년~2004년 동안 토지가격을 기준으로 한 부동산 경기변동 주기를 정리했는데, 수축기는 7년~8년이며 확장기는 3년~4년이다. 즉, 약 10년이다. 2007년경이 부동산 경기 최고점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다른 정부가 집권했어도 2017년~2018년에 부동산 가격은 상승했을 가능성이 높다. 왜? 원래 부동산 경기변동이 약 10년이기 때문에.

셋째, 뒷북 대응론이다. 서승환 교수는 1978년~2002년의 24년 동안 시행된 부동산 정책을 분석한 이후, 원래 ‘부동산 정책의 역사는 뒷북의 역사’라고 결론 내린다. 왜 그럴까? 부동산 가격상승을 막으려면, 선제적-예지적(叡智的) 대응을 해야 한다. 만일 예측모형에 의해 ‘1년 이후에’ 부동산 가격상승이 예상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정책당국은 ‘미리’ 부동산 공급을 늘릴 수 있을까?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자칫 조금이라도 틀리면 엄청난 정치적 공격을 받는 반면, 정책이 성공적으로 먹혔을 경우 최대 효과는 본전이기 때문이다. 잘하면 본전, 못하면 독박을 쓰는 구조이다.

이제 부동산 정책에 관한 진보의 미신(迷信) 3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주택보급률 100% 초과론’이다. 이들은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었으니 공급부족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둘째, ‘공급무용론’이다. 부동산 공급을 늘리면 투기적 수요와 가수요를 부추겨 가격하락 효과는 없고, 오히려 가격상승만 초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셋째, ‘부동산 거품론’이다. 부동산에는 이미 엄청난 거품이 끼어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들은 타당할까?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주택보급률 100% 초과론이다. 지금도 진보언론에서 칼럼으로 자주 등장한다. 이 분들은 소득이 상승하면 욕망이 상승하고, 욕망이 상승하면 ‘더 좋은 집’을 구매하게 된다는 것을 부정하는 셈이다. 월급이 50만원일 때는 7명 식구가 엄마, 아빠와 함께 단칸방에서 살게 되지만, 월급이 100만원이 되면 엄마-아빠 방은 따로 있고, 아이들 방이 별도로 마련된다.

다시 월급이 200만원이 되면 방에 ‘요강’을 두지 않고 화장실이 딸린 집에서 살게 된다. 이처럼 소득이 오르면 욕망이 상승하게 되고, 욕망이 상승하면 더 좋은 집으로 이사가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주택보급률 100% 초과론’을 논거로 ‘공급부족’을 반대하는 진보쪽 사람들은 ‘김밥’이 충분히 공급되고 있으니 ‘한우고기 수요’는 투기적 수요라고 공격하는 것과 같다. 한우고기 먹고 싶은 사람을 투기적 수요라고 공격하면 안된다.

둘째, 공급무용론이다. 이들은 공급으로는 가격을 잡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SK증권 김효진 이코노미스트가 쓴 『나는 부동산 싸게 사기로 했다』에 수록된 가격-공급 그래프를 보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공급이 늘고, 공급이 늘면 부동산 가격이 잡힌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한국 부동산은 세계적으로 싼 축에 속한다.

그 이유는 노태우 정부가 주택 230만호를 공급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의 총 주택은 600만호가 채 되지 않았다. 그밖에 선분양제 등 ‘주택공급에 유리한’ 제도 역시 한국 부동산 가격이 국제적으로 낮게 된 요인이었다.

셋째, 부동산 가격 거품론이다. 경제 쪽 취재를 오랫동안 했던 로이터통신의 유춘식 기자는 2003년~2017년의 기간 동안, 주택가격과 중간소득자의 가처분소득(3/5분위), 물가상승의 관계에 대해 서울 25개 구(區)별 상황을 조사했다.

결과는 매우 놀랍다. 이 기간, 서울 집값 상승률은 누적 51.2%(연평균 3.0%)였다. 연평균 소비자물가 상승율은 2.4%였다. 반면 중간소득자(3/5분위)의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누적 66.0%(연평균 3.7%)였다. 쉽게 말해, 가처분소득 연평균 증가율(3.7%)이 집값 상승률(3.0%)보다 더 높았다. 집값은 ‘중분위 가구’의 소득보다 적게 올랐다. 물가상승율과 가처분소득증가율의 합계보다 주택상승율이 높은 지역은 25개 구(區) 중에서 용산구가 유일했다.

논의를 정리해보자. 부동산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수요와 공급이다. 소득상승과 주택공급이 가장 중요하다. 소득상승 → 욕망상승 → 수요확대 → 공급부족의 작동구조이다. 대체로 10년 주기로 이런 패턴이 반복된다. 최근 집값 상승도 ‘공급부족’으로 가격이 올랐고, 일부 투기적 수요가 가세한 것이다.

공급부족이 70% 요인, 투기적 수요가 30% 요인이다. 지난 1년간 ‘수요억제 정책’이 실패한 이유이다. 그럼, 부동산 가격 안정화는 그 반대 수순을 밟으면 된다. 9·13대책으로 ‘투기적 수요’를 일단 잡고, 9·21 대책을 통해 ‘공급’을 늘리면 된다. 가장 현실적인 공급대책은 ‘도심의 고밀도, 고층 재개발’을 대량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정책당국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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