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이 당대표돼야 한국당이 산다" 민주당 분열의 역사 살펴보니...

[the300][20대 기자, 70년 국회]이해찬 민주당 대표 취임 한달, 순항중인 민주당…시기·질투하는 야당 "어? 이게 아닌데…"

조준영 기자 l 2018.09.24 07:00

편집자주 20대 국회 출입기자가 본 70년 국회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젊은 감각, 새로운 시각으로 국회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이동훈 기자


"이해찬 의원이 민주당 대표가 돼야 한국당에 기회가 온다. 그래야 2020년 우리가 제1당이 된다."

지난달 25일 더불어민주당이 이해찬 신임대표를 비롯해 새로운 당 지도부를 구성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이렇게 말했다. 계파색이 강한 이 의원이 당대표가 돼야 민주당이 내부 분열을 한다는 이유에서다.

전임 대표였던 추미애 의원은 임기를 끝까지 채운 첫 당대표로 기록됐다. 추 대표처럼 뚜렷하게 어느 한 편으로 분류되지 않는 대표가 이끌어야 민주당은 롱런할 수 있다는 게 야당의 분석이다.

이해찬호 출범 한달. 야당의 바람은 아직 찾아볼 수 없다. 민주당이 이 대표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당 지지율은 올랐고, 정책 중심 정당으로 나아가고 있다. 야당은 어떻게 볼까. "고작 한달이 지났을 뿐이다"며 "지난 시절 민주당 대표 수난사를 복기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나섰다. 이 대표의 취임 한달을 맞아 지난 15년간 민주당 당대표들의 변천사를 짚어봤다.

◇ 2003-2007 열린우리당

노무현 대통령을 배출한 새천년민주당 내에 천정배·신기남·정동영(천신정)을 주축으로 한 쇄신론이 득세하며 개혁파를 중심으로 한 열린우리당이 2003년 창당했다. 초대 의장은 현재 민주평화당 대표를 맡고 있는 정동영 의원이다. 의장은 당대표에 준하는 직책으로, '상임중앙위원회'를 별도로 설립해 그 중 최다득표를 한 사람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당시 17대 총선을 앞둔 시점(2004년 3월)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노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지지발언이 선거법위반이라는 게 주요한 이유였다. 이 사건이 도리어 역풍을 불러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과반수 정당에 등극했다. 하지만 정 의장이 통일부 장관에 임명돼 내각으로 들어가게 된다.

정 의장에 이어 신기남, 이부영 등이 의장에 추대됐지만 모두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한채 비상대책의장 체제로 전환된다. 4대 개혁입법(국가보안법 폐지·사학법·과거사진상규명법·언론개혁법) 처리와 행정수도 이전 등에 실패한 데 따른 결정이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자신의 최근 발언에 대해 '블루하우스 스피커'라고 비난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들은 뒤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이동훈 기자


이후 문희상 현 국회의장이 2005년 의장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해 4월 재보궐 선거에서 패해 과반수 의석을 잃고 당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문제 등으로 당내 혼란은 지속됐다. 결국 같은 해 11월 정세균 의원이 당의장 직을 겸하게 된다. 그러나 이듬해 정 의원은 산업자원부 장관에 임명돼 의장직을 그만둔다.

이후 통일부 장관을 사임한 정동영 전 의장이 다시 의장으로 선출됐지만 2006년 지방선거에서 전북지사 1곳을 빼고 전 광역단체장직에서 패배하며 우울한 당내 분위기는 이어졌다. 이후 김근태 의원이 비상대책위원회 의장에 올랐지만 당내수습에 실패하고 2007년 다수 의원들의 '탈당러쉬'로 열린우리당 체제는 막을 내렸다.

이때가 민주당의 대표적인 혼란기 중 하나로 5년동안 총 9명의 대표가 세워졌다. 당대표가 내각에 임명되면서 반복된 개편에 정부와 독립적으로 당 운영이 이뤄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분석이다.

(서울=뉴스1) 이광호 기자 =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한 대표는 4.11총선 공천의 공정성 문제와 관련해,"공천심사위원회가 도덕성, 정체성 등의 여러 기준을 세워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공정하게 잘했다"며 "싸늘한 비판 받은게 사실이지만 여러면에서 굉장히 알찬 공천이었다"고 말했다.


◇ 2011년 민주통합당

2008년 17대 대선을 완패한 후 수차례 이합집산을 거듭한 민주당계는 2011년 다시 다수 정당이 뜻을 모아 민주통합당을 창당했다. 초대 당대표는 한명숙 전 총리가 맡았다. 이 때 지금의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당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하지만 2012년 치뤄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하면서 한 대표는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문성근 대행체제를 지나 이해찬 의원이 2대 당대표를 맡았다. 그러나 18대 대선을 앞두고 출마한 안철수 후보가 당시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조건으로 민주당의 정치혁신을 주장하며 친노세력의 퇴장을 주장했다.

결국 2012년 11월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 전원이 총사퇴를 결행한다. 열린우리당 이후 각종 선거를 거치면서 민주당엔 다양한 세력들이 유입돼 소위 '계파싸움'이 격렬히 이뤄졌다. 동교동계로도 불리는 구민주당계, 친노486, 한나라당 탈당세력 등 한 정당 안의 다른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분출됐다는 설명이다.

문재인 당대표 주재로 개최된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실에서 열렸다.


◇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해 낙선하자 민주통합당 내 갈등이 크게 빚어진다. 결국 당내 수습에 실패하고 2014년 안철수 대표가 창당한 새정치연합과 통합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한다.

당시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대표가 공동대표를 맡아 당을 이끌었다. 하지만 문재인을 필두로 한 친노 주류세력과 박원순을 대표로한 시민단체, 박지원을 필두로한 구 민주계 등 비주류간의 갈등이 커지게 되자 비대위 체제를 가동해 박영선, 문희상 등이 짧게 위원장을 맡는다. 이후 20대 총선을 거치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더불어민주당과 안철수를 중심으로 한 국민의당으로 민주당계 정당은 재편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제3차 정기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 된 뒤 수락연설하고 있다. 2018.8.25/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5~ 더불어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은 2015년 12월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추미애 의원이 2016년 8월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2년간 당을 이끌 대표에 선출됐다. 추 대표는 그간 10여년간 누구도 실현하지 못한 2년이란 당대표 임기를 소화했다.

차기 대표에 선출된 이해찬호는 거침없이 순항중이다. 청와대에도 할 말은 하는 여당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20대 총선, 지난 6월 지선 등을 거치면서 전국정당에도 안착했다는 평이다. 당 지지율도 40% 이상의 고공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실제 야당의 얘기대로 민주당 역사를 돌아보면 지지율이 꺾이고 선거에서 패했을 때 지도부 개편과 분당은 반복됐다. 이른바 '20년 집권'이라 불리는 민주당 장기집권 계획도 그 바탕에 안정적인 지지기반이 필수적이다. 확고한 지지기반이 없으면 지금의 안정적인 분위기도 한순간 사라지기 마련이다. 역사는 늘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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