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왜 삼성같은 기업이 없을까" 김정은의 고민 들어보니…

[the300][나의 방북기]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천지에서 손잡은 文·金 '세계사적 사건'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정리=정진우 조준영 기자 l 2018.09.22 07:10

편집자주 지난 18~20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북한을 다녀온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의 '나의 방북기'를 준비했습니다. 누구보다 북한의 현재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정 대표가 직접 살아있는 북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아들의 눈동자를 계속 쳐다봤다. 아버지의 눈동자와 달랐다. 바라보는 곳도 확실히 바뀌었다. 그는 남쪽을 보고 있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얘기다. 내가 2005년 김 위원장의 아버지인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난 후 13년만에 방문한 평양에서 김 위원장은 확실히 달라진 북한을 보여줬다.

물론 북한 내부와 주변을 장악한 풍모는 그의 아버지와 똑같았다. 하지만 디테일에서 달랐다. 그의 아버지는 너무 조심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큰 결정을 주저하다가 실기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그렇지 않았다. 이번 방북기간 그는 젊은 지도자의 과감성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방북 첫날인 18일부터 김 위원장으로부터 그런 모습을 봤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우리 일행을 극진히 환영했다. 그와 인사를 나누는 동안 가장 눈에 띄었던 건 그의 얼굴이었다. 얼굴이 검게 탔다. 한 나라의 정상이 얼굴이 왜 탔을까. 북한측 얘기를 종합해보니 산업 현장 등 현지 지도를 많이 다녀서 그랬다. '지도자로서 방향을 정하고, 거침없이 돌진하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순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讲话, 덩샤오핑이 남방을 순회하면서 개혁개방을 촉구한 일련의 연설)가 떠올랐다. 개혁과 개방에 주저하는 보수파를 잠재우기 위한 정책을 김 위원장이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검게 탄 그의 얼굴에서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나라를 잘 만들어야 겠다’는 의지를 읽었다.

그를 만나기전에 '혹시 핵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진 않을까'라고 우려했지만, 확실히 핵은 아니었다. 핵은 사람을 거만하게 만든다. 또 눈빛부터 살기를 느끼게 한다. 그래서 아버지와 다른 눈빛을 보인 것 같다. 김 위원장은 확실히 기수를 남쪽으로 돌렸다.

김 위원장은 북한 관료들에게 “우리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인데, 중국보다 못 사는 게 말이 되냐”고 강조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우리 민족은 정말 우수한 민족 아닌가. 그의 확실한 메시지가 지금 북한을 움직이고 있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내가 13년만에 찾은 평양은 많이 변해 있었다. 둘째날인 19일 새벽에 눈이 떠졌다. 잠은 편하게 잤지만 아무래도 설렜던 마음이 잠을 깨운 것 같다. 북한의 일상이 궁금했다. 무작정 호텔을 나섰다. 호텔에 있던 북한측 인사가 제지하지 않았다. 과거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혹시나하는 생각에 나왔지만, 뜻밖의(?) 아침 운동을 하게 됐다.

처음엔 호텔에서 평양역을 향해 걸었다. 남한과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체조나 요가 등 아침 운동하는 사람들, 배드민턴 치는 사람들 등 여기가 북한이 맞나 싶을 정도로 편안했다. 걷다보니 대동강이 나왔다. 대동강변을 따라 걸었다. 3km 정도 걸으면서 서울 집 근처에서 조깅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얘기를 들은 많은 방북 수행단 분들이 나를 부러워했다. 그들은 북한측에서 만류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내가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을 만나 “우리 수행단 분들이 호텔 주변을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크게 제지하진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김 부부장은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2000년대에 방문한 북한은 사라졌다. 그땐 곳곳에 선전판에 ‘미 제국주의 타도’, ‘강성대국 건설’ 등의 구호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자리엔 ‘과학으로 비약하고 교육으로 미래를 담보한다’란 글이 써 있었다. 북한이 확실히 경제로 방향을 틀었단 증거로 보인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그리고 셋째날. 내가 이번 방북에서 가장 가슴이 뜨거웠던 일정이 있었다. 바로 백두산 천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민족의 미래를 얘기했던 그 일정. 이건 정말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상징성을 보여준다. 또 세계사적 사건이다. 남북의 지도자가 역사상 최초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민족의 미래를 얘기했다는 것은 ‘손 잡고 세계의 중심으로 가자’는 얘기와 같다.

우리가 이제 손을 잡아줘야한다. 김 위원장도 이번 방북단 기업인 중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김 위원장이 평소에 "(우리도) 삼성의 반도체 또는 삼성전자를 능가하는 IT기업을 갖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방북기간 북한 측 관계자로부터 그와 비슷한 얘기를 자주 들었던 것 같다. 김 위원장이 서울에 오면 삼성을 비롯해 우리 기업을 방문 할 것이다. 그가 남한을 방문하는 가장 큰 목적이 아닐까 한다.


핵을 버리고 경제에 집중하는 북한, 그리고 하나된 민족. 생각만해도 가슴이 뛴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면 GDP(국내총생산) 8만달러가 넘는 세계2위의 경제대국이 된다는 골드만삭스 보고서가 있다. 이건 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 정상이 천지에서 손잡은 그 순간 우리는 경제부국을 위해 함께 뛰기 시작했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