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천 칼럼]박원순 시장과 ‘도시의 승리’ - 찰스 왕세자와 리빙스턴 시장

[the300]

최병천 정책혁신가 l 2018.10.05 04:05



  

최근 정부는 부동산 대책으로 9.13 대책과 9.21 대책을 발표했다. 발표 회수는 두 번이지만 하나의 패키지로 봐야 한다. 9.13 대책은 대출규제를 핵심으로 하는 ‘수요억제’ 정책이다. 9.21 대책은 그린벨트 부분 해제와 3기 신도시 개발, 도심 재개발을 포함하는 ‘공급 확대’ 정책이다.

 

9.21 대책 중 서울시가 추가로 공급하는 주택은 총 10,282호이다. 세부내역을 보면, 성동구치소 부지 1,300호, 개포동 재건마을 340호, 비공개 부지 8,642호이다. 서울시가 구체적인 공급내역을 밝힌 주택은 1,640호(전체 16%)에 불과하고, ‘비공개’ 부지가 8,642호(전체 84%)를 차지했다.

 

‘4가지 키워드’의 결합이 새로운 이유 - 도심, 고밀도 개발, 중산층, 공공임대

 

최근 서울지역의 부동산 가격상승은 소득상승 → 욕망상승 → 수요 확대 → 공급부족에 의한 것으로 봐야 한다. 가격상승의 최초 발단이 실수요에 의한 공급부족이었고 일부 투기적 수요가 가세한 형국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요 억제’ 정책은 일시적 효과는 거둘 수 있어도, 말 그대로 ‘일시적’ 봉합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반드시 실효적인 공급대책이 병행되어야만 한다. 반 박자 늦었지만, 정책당국도 실수요에 의한 공급부족을 인정했다. 


9.21 공급대책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그러나, 서울시의 추가 공급은 규모와 구체성 모두에서 가격안정화를 위해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보기 어렵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그린벨트 직권해제’를 압박하는 이유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유럽 바르셀로나를 순방 중에 기자간담회에서 ‘도심 고밀도 공급’을 발표했다. 상업지구로 주로 활용되는 종로, 중구 지역의 도심을 고밀도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도심 ▴고밀도 개발 ▴중산층 ▴공공임대라는 4개의 키워드를 동시에 건드렸다. 


4가지 키워드가 이슈가 되는 이유는 그간 진보성향 정부가 이에 대해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진보성향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공공임대는 많이 강조했지만 고밀도 개발과 중산층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거나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 왔다. 이들 단어에 대해서는 마치 ‘투기적인’ 그 무엇인 것처럼 대했던 측면도 있다. 


게다가 ‘도심’은 내 머릿속 지우개처럼 사라진 단어가 되었다. 최근 그린벨트 해제 카드 역시 ‘도심’이 아닌 ‘외곽으로’, 외곽으로 뻗어나가는 생각에 기반한다.

 

그런데, <도심 고밀도 재개발>은 정말 ‘진보적인’ 정책과는 거리가 먼 것일까? 오히려 보수적인 정책과 친화성이 더 있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도시 관련 명저(名著)로 꼽히는, 에드워드 글레이저가 쓴 『도시의 승리』(해냄 출판)는 매우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바로 영국 보수를 상징하는 찰스 왕세자와 영국 진보를 상징하는 켄 리빙스턴 런던시장의 이야기이다.

 

도심의 고밀도 개발 - 보수적인 찰스 왕세자 VS. 진보적인 리빙스턴 런던시장

 

영국 찰스 왕세자는 1948년 버팅엄 궁전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직후 켄터베리 대주교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후 1981년 찰스 왕세자는 다이애나 비와 결혼을 하며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켄 리빙스턴은 찰스 왕세자보다 3년 이른 1945년생이다. 리빙스턴은 런던의 빈민가인 램버스에서 창문 청소부 아버지와 상점 점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0대 시절부터 연구실 기술자로 일했다. 살아온 삶 자체가 ‘노동자 계급 출신’임을 상징했다. 리빙스턴은 런던의 램버스 시의회 의원을 하고, 런던 시의회 의장을 거쳐, 2000년에 드디어 런던시장을 하게 된다. 영국 노동당 내에서도 ‘좌파’를 상징하는 정치인이었다.

 

찰스 왕세자는 ‘전통’을 중시 여기고 ‘개발’에 비판적이었다. 찰스 왕세자는 런던의 고층 빌딩에 대해 “왜 오직 올바른 각도와 기능을 가진 모든 것이 수직적이고, 직선적이며, 구부러지지 않아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리빙스턴 런던시장은 세계적인 건축가인 리처드 로저스를 ‘건축과 도시계획 위원회’ 위원장으로 앉혔고, 위원회는 「컴팩트한 도시에 맞는 주택공급」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그린벨트 보호와 다른 주거 공동체의 개방형 공간을 보호하기 위해 <고밀도 건물의 필요성>을 주창한다.

 

요컨대, 찰스 왕세자는 시골과 전통을 중시여기는 ‘개발 반대’ 보수주의자이다. 반면, 켄 리빙스턴은 적극적인 개발론자였다. 다만 그린벨트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도심 한복판 고층건물을 지어 부유한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허용하되, 그들이 낸 세금으로 공공 사회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도심개발이 공공성의 가치와 부합한다고 봤다.

 

박원순 시장의 도심 고밀도 재개발 구상은 큰 틀에서 볼 때, 찰스 왕세자의 선택이 아닌, 리빙스턴 런던시장의 선택에 가까운 것으로 볼 수 있다. 개발 반대 보수주의자의 길이 아닌, 도심개발과 공공성의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진보주의자의 선택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원순 시장의 도심 고밀도 재개발 구상에 대한 전문가와 시장의 평가는 방향은 대체로 긍정적이지만, 세부적인 추진에 대해서는 반신반의(半信半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①도심 ②고밀도 개발 ③중산층 ④공공임대라는 4가지 키워드에는 ‘상충하는’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방향의 정책을 추진할수록, 정책 목표와 타겟팅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최초의 원인’으로 되돌아가 환기할 필요가 있다.

 

가치의 선후경중(先後輕重) - 실제로, 일정규모 이상의 공급이 가장 중요

 

도심 고밀도 개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추진되어야 한다. 그리고 ‘공급 물량’도 일정 규모 이상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부동산 가격안정화’라는 최초의 정책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정책목표와 정책 타겟팅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대안의 선택지’를 명료하게 정리하고, 가치의 선후경중(先後輕重)을 분명히 해야 한다.

 

‘대안의 선택지’는 분명하다. 서울에 실제로, 일정 규모 이상의 공급을 충분히 하지 않으면, 그린벨트 해제를 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일정규모 이상의 공급을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도심 고밀도 개발을 하는 사업 주체 입장에서, ‘사업성’이 나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개발사업 주체 입장에서 사업성이 없으면, 그림은 멋있지만 실제로 실현되기는 어려운, 말짱 도루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심의 고밀도 개발이 실제로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업성’을 충분히 보장해주는 것이다. 사업성의 보장과 공공성 가치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용적률을 더욱 상향하는 것이다. 9.21 공급대책에서는 400%에서 600% 상향을 발표했다. 그런데, 굳이 600%에 갇혀야 할 이유는 없다. 필요하다면 800%, 1000%는 안될 이유가 없다. 


둘째, 공공임대 비율을 탄력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반드시 공공임대 비율을 50%로 경직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셋째, 용적률 상향과 공공임대 비율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되, 일정 비율과 일정금액은 공공 재원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세계사, 정치사, 경제사는 ‘시장’과 ‘공공성’이 마치 양립불가하며 대립되는 것처럼 싸웠다. 그러나, 20세기의 시행착오 모두를 뛰어넘는, ‘좋은 진보’ 혹은 ‘좋은 보수’가 되고자 한다면, ‘시장’의 긍정성을 인정하는 공공성 혹은 공공성의 가치와 조화를 이루는 시장을 추구해야만 한다.

 

시장의 기능을 존중하는 개발을 하되, 공공성의 가치를 반영하는 것.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부동산 정책의 미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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