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탈권위 행보 뒤 숨은 권위의식

[the300]

강주헌 기자 l 2018.10.18 04:03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1


"뒤에 누구십니까? 자꾸 쪽지 주시는 분. 누구야!"


지난 1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장. 한선교 자유한국당 의원이 정재숙 문화재청장에게 질의할 때였다. 한 의원이 질의를 잠시 멈추고 언성을 높였다. "누구냐"의 화살을 맞은 이는 장 청장 뒤에 배석한 문화재청 공무원이었다. 한 의원은 "청장이 대답하려고 하면 쪽지를 계속 갖다 주느냐"고 지적했다.

순간 국감장은 얼어붙었다. 안민석 문체위원장은 "청장을 보필하는 직원은 쪽지를 건네는 것을 가급적 삼가 달라"며 수습에 나섰다. 그러자 다음 질의 순서였던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안 위원장과 한 의원에게 항의했다. 보좌역이 답변에 필요한 자료를 건네줄 수도 있는데 왜 트집을 잡느냐는 논리였다.

같은 당 소속 위원장과 의원 사이 보기 힘든 위태로운 말싸움은 이어졌다. 우 의원은 쪽지 논란 관련 안 위원장에게 의사진행발언도 요청했다. 안 위원장은 "본인이 무조건 옳다 생각하지 마라"고 일축했다. 우 의원이 재차 요청하자 안 위원장은 차가운 표정으로 "달라 그런다고 꼭 줘야합니까"라고 답했다. 우 의원은 맘이 상한 듯 입을 다물었다.

국회에서 종종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지만 ‘탈권위주의’를 내건 문체위이기에 씁쓸했다. ‘탈권위’는 20대 국회 후반기 문체위원장을 맡은 안 위원장의 취임 일성이었다. 회의실 안팎에 예술작품을 설치, '문화샛길'을 만들었다. 위원들도 '노타이' 차림으로 동참했다. 권위주의에서 탈피해야 '문화적 상상력'이 발현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내용면에서 바뀐 건 많지 않다. 피감기관에 대한 국회의원의 윽박지름과 무안주기는 여전하다. 피감기관장의 답변을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여긴다. 국회 운영이 탈권위적인지, 물음표가 달린다. 국회는 권위를 살린다고 자위하지만 보이는 모습은 꼰대의 권위주의다. 말과 행동이 다르면 쇼맨십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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