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내년 봄 평양에서 "이념 보다 사람" 설파할 수 있을까

[the300]北에 '신드롬' 일으킬수도…김정은의 '모험'

최경민 기자 l 2018.10.18 21:14

【바티칸=AP/뉴시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3월7일 수요일마다 하는 일반신도와의 만남 행사를 위해 바오로 6세 홀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사진을 찍고 있다. 2018. 3. 7.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문재인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평양 초청 의사를 전달할 계획이다. 확답이 나온다면 역사상 첫 교황의 방북이 가시권에 들게 된다. 

교황의 공산권 국가 방문은 역사적인 이벤트로 이어진 경우가 많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이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있어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종교의 자유가 제한된 공산권 국가들에 교황이 방문한 것은 해당 국가에 큰 충격을 줬었다. 북측 역시 마찬가지 상황을 겪을 수 있다.

실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1979년 폴란드 방문은 공산권 붕괴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바오로 2세가 폴란드 출신이기도 했다. 그는 폴란드 국민들에게 "많은 고통을 당해왔지만,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고 위로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는 레흐 바웬사가 이끈 자유노조 운동으로 이어졌다. 훗날 폴란드의 민주화 이후 대통령이 된 바웬사는 "교황은 '두려워 말라, 강한 신념을 가져라'고 말해줬다"고 회고했다.

쿠바 역시 교황의 역할 속에 문호를 개방해온 경우다. 바오로 2세는 1998년 쿠바를 방문해 "세계를 향해 문을 열고, 세계는 쿠바를 받아들이라"고 외쳤다. 이후 쿠바에서 종교 활동이 확산됐다. 크리스마스도 공식화될 정도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예 미국과 쿠바 사이를 중재하며 평화의 메신저가 됐다. 그리고 2015년 9월 쿠바를 방문해 "우리는 이념이 아니라 사람을 섬겨야 한다"고 설파했다.

폐쇄된 국가를 방문한 교황이 보낸 메시지는 '인간의 존엄성 회복'에 맞춰져 있다. 체제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두려워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주민들에게는 "이념이 아니라 사람"을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양행이 성사된다면 이같은 전통의 연장선에 있는 메시지를 전할 게 분명하다. 김정은 위원장의 집권 이후 북한에서 진행돼 온 서구식 변화가 가속화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과 북한 지도층 입장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초청이 일종의 모험일 수도 있었다. 실제 선대인 김일성·김정일이 한 때 추진했던 교황 방북 계획을 백지화했던 것도, 교황 방문에 따른 주민 사이의 '신드롬'을 경계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은 모험을 택했다. 그만큼 변화에 대한 열망이 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을 정상국가로 변화시키기 위한 과정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초청한 것이다. 자신의 부인 리설주 여사를 영부인 격으로 대접하고, 깜짝 싱가포르 야경 투어를 나서며,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깍듯한 예우를 다하면서,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내 서울 방문을 결정한 것의 연장선에 있는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교황의 방북은 동북아 지역의 안보 의제를 약화시키는 역할도 할 것으로 보인다. '평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교황이 방북을 함에 따라 동북아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대립' 보다는 '평화'에 더 모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이 강조해온 것 처럼, 북핵 협상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왔다는 점을 전세계에 알리는 일종의 표지석이 될 수 있다.

교황의 방북 시기로는 내년 봄이 거론되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5일 "교황이 내년 봄 북한을 방문하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던 바 있다. 내년 초 일본 방문 등을 계획하는 것으로 알려진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정을 고려했을 때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다. 연내 종전선언 등이 이뤄져 비핵화 협상이 일정 수준의 결과를 도출했을 경우, '평화'를 앞세운 교황의 방북이 몰고올 파급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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