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천 칼럼] ‘데이타 기반’ 부동산 정책을 위해 - ‘주택안정 보고서’의 법제화

[the300]

최병천 (정책혁신가) l 2018.10.19 04:53


참여정부 시절에 새로 도입된 부동산 정책 3가지를 꼽으라면 ①실거래가 의무화 및 공개 ②LTV(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제도 ③종합부동산세 등 이다. 

이 중에서 ③종합부동산세 도입은 진보/보수 사이에 지금도 첨예한 논란거리다. 그러나, ①실거래가 의무화 및 공개 ②LTV·DTI(부채상환비율) 제도 도입의 경우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대체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이중에서 ‘실거래가 의무화 및 공개’는 요즘 말로 하면 ‘데이타 기반’ 부동산 정책의 밑거름이다. 그러나 그동안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 한국은행의 ‘금융안정 보고서’와 유사한 ‘주택안정 보고서’의 법제화 = 한국은행은 1년에 두 번 ‘금융안정보고서’라는 것을 발간한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2018년 6월호를 살펴보면 분량은 132페이지, 주요 내용은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자산시장으로 채권, 주식, 부동산, 환율시장을, 금융기관으로 은행과 비은행, 그리고 금융 현안을 다룬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는 ‘한국은행법’ 제96조(국회 보고 등)에 의거해서 만들어진다. 한국은행법 제96조는 “한국은행은 매년 2회 이상 통화신용정책의 수행상황과 거시 금융안정상황에 대한 평가보고서를 작성하여 국회에 제출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는 ‘금융안정’과 관련된 주요 이슈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효과를 갖는다. 행동경제학에서 ‘부드러운 개입’을 의미하는 ‘넛지’가 주장하는 한국의 모범 사례인 셈이다. 

한국은행이 ‘금융안정보고서’ 를 발간하듯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주택안정 보고서’의 법제화 및 발간을 제안드린다. 

국토교통부는 한국감정원과 국토연구원을 활용해 ‘주택안정 보고서’를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서울시는 조례에 근거하든, 자체 판단으로 하든 국토교통부의 추진 여부와 무관하게 ‘서울시 주택안정 보고서’를 발간할 필요가 있다. 

◇ 참여정부의 ‘실거래가 의무화’ → ‘데이타 기반’ 부동산 정책의 가능성 = 최근 정부는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해 9.13 대책과 9.21 대책을 발표했다. 기존 발표와 다른 점은 ‘공급의 필요성’을 적극 인정했다는 점이다. 

정책당국은 지난해 8.2 대책을 발표할 때만 해도 가격상승의 원인을 ‘투기적 수요’로 봤다. 그래서 ‘수요 억제’에 정책 비중을 뒀다. 서울시는 언론에 의해 ‘공급’의 필요성이 제기될 때마다 공공임대 혹은 매입임대 주택을 늘리겠다는 발표를 하곤 했다. 

그러나 2016년 이전부터 국토교통부 및 서울시와 ‘다른 판단’을 하는 일군의 사람들이 있었다. 언론에 의해 소위 ‘여의도학파’로 불린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이다. 이들은 공공 데이터와 민간 데이터를 넘나들며 한국감정원의 실거래 데이터, 주택금융공사가 개발한 K-HAI(한국 주택구입부담지수), KB주택지수, 호갱노노 등의 자료를 활용했다. 경우에 따라 직접 가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실제 참여정부 때와 구분되는 최근 부동산 가격상승의 가장 큰 특징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과 ‘직주근접’이라는 키워드이다. 이들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보다 ‘진일보한’ 분석 및 전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참여정부가 만들어놓았던 ‘실거래가 데이터’의 공(功)이 컸다. 

◇‘주택안정 보고서’가 발간되면 좋은 3가지 이유 = 부동산 가격은 크게 보면 두 가지 원인으로 결정된다. ①실물 수요-공급과 ②화폐 수요-공급이다. 다만 주택 자산의 특성상 수요자와 공급자가 ‘단일한’ 시장이 아니라 소득분위별로 ‘구획된’ 특성을 갖는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국토교통부가 ‘주택안정 보고서’를 법제화하고 서울시가 ‘서울시 주택 안정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발간할 경우, 예상되는 잇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가격안정화 정책의 준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가 금융 동향을 종합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역할을 해주듯, ‘주택 동향’의 수요-공급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줄 필요가 있다. 

‘허름한 단칸방’과 최근에 ‘새로 지은 아파트’를 주택보급율이라는 개념으로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 이 둘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게 되면 정책당국과 언론이 ‘오판’을 하게 된다. 이런 오판을 막는 방법은 주택의 수요량, 공급량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지표를 ‘세분화’해서 공개하는 것이다. 

예컨대 주택유형별(아파트, 연립다세대)로 구분하고, 주택연식별(10년차, 20년차)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그냥 아파트가 아니라 10년 된 아파트, 20년 된 아파트별, 30년된 아파트별로 신규 공급, 멸실 현황, 매매가격은 어떤지 ‘상세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러면 가격안정화에 필요한 정책수단을 더 잘 활용하게 될 것이다. 

둘째 ‘정책 타겟팅의 섬세화’가 가능해진다. 노동경제학, 노동사회학에는 ‘분단 노동시장 이론’이 있다. 혹은 ‘이중 노동시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노동시장은 단일하지 않고 서로 ‘분단’돼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택시장도 실제로는 ‘분단’돼 있다. 5분위를 기준으로 나눌 경우 상층 5분위(상위20%)는 부부 합산 연봉이 1억원이 넘기에 ‘좋은 집’을 구매할 여력이 충분한 사람들이다.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도 이들이 주도했다. 

반면 4분위(상위 20%~40%)의 경우 ‘대출을 끼고’ 주택을 사는 사람들이다. 3분위(상위 40~60%)의 경우 전세살이를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현재 개인임대 시장에 던져져 있는데 기업형 민간 임대 시장을 정부가 조성해줄 필요가 있다. 

2분위와 1분위의 경우 근로소득이 불안정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로 주택바우처 또는 공공임대 주택이 필요한 분들이다. ‘주택 거래’ 분석을 세분화하면, ‘소득분위별 맞춤형 주택 정책’의 설계가 가능해진다. 

셋째 ‘국제 비교’가 용이해진다. 주택 정책은 나라마다 상이한 점이 있어 단순 비교하기에는 부적절한 경우도 많다. 그래도 가능한 국제 비교도 많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참여정부 시절에 ‘부동산 폭등’이 사상 최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2000년~2006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주요 국가들의 실질 주택가격 상승률을 비교하면, OECD 평균 상승율은 42%인 반면 한국은 21%였다. 한국은 오히려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파워 블로거인 산타크로체님이 소개한 자료에 의하면 공공임대 주택으로 유명한 복지국가 스웨덴의 경우, 공공임대주택으로 들어가려면 대기 기간이 무려 23년에 달한다. 주택지표에 대한 다양한 국제비교는 한국 부동산 현실을 좀 더 냉정하게 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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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압축적인 그리고 가장 높은 경제성장율을 이룩했고 가장 높은 수준의 인구밀도를 가졌고 가장 빠른 속도의 도시화를 이룬 나라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예외적인 사례이다. 그러다보니 부동산 정책에서도 가격 변동폭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정책당국은 ‘수요-공급’을 조절하는 다양한 정책기제를 발달시켜야만 했다. 

LTV-DTI를 정부가 주도해서 도입한 사례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다. 그러나 그 덕택에 2009년 금융위기의 피해를 덜 겪을 수 있었다. 『주택안정 보고서』의 법제화 및 발간은 ‘데이타 기반’ 부동산 정책의 새로운 단계를 여는 단추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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