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코리아 컨틴전시'

[the300]

박재범 정치부장 l 2018.11.05 04:30
#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독일 베를린 괴르버 재단 연설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구상을 밝힌다. 이른바 ‘신 베를린 선언’이다.

2000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이 베를린 자유대학 연설에서 행한 ‘베를린 선언’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청와대는 ‘신 베를린 선언’이란 표현을 부담스러워했다.

‘신 베를린 구상’정도로 표현해주길 바랐다. 북핵과 미사일 위협이 한창이던 상황, 남북 대화 창구가 얼어붙어 있던 현실을 고려한 자세였다.

그로부터 16개월 지난 지금, 구상은 현실이 됐다. ‘신 베를린 선언’속 △평화 추구 △북한 체제 보장·한반도 비핵화 추구 △남북 합의 법제화·종전 선언·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남북 철도연결 등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비정치적 교류협력 등 5대 정책 기조를 우리는 직접 목격하고 있다.

#‘문재인 프로세스’의 결과다. 북미 관계는 ‘교착’, 남북 관계는 ‘과속’ 등의 우려가 겹치지만 정작 문 대통령은 걱정하지 않는다. 참모들이 우려를 표하면 걱정 말라며 다독인다. 철저한 전략·전술의 자신감이 깔려 있다.

‘운전자’ ‘협상가’ ‘메신저’ 역할을 자임하되 몸을 낮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앞세운다. 한미 동맹을 재확인하고 주변국을 배려한다.

무엇보다 ‘문재인 프로세스’의 핵심은 새로운 상상력이다. ‘4·27 판문점 선언’후 북미 관계가 교착됐을 때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판문점 번개’를 했다.

가을 평양정상회담의 핵심 이벤트였던 백두산 회동도 문 대통령의 의지가 출발점이었다. 교황 방북 아이디어는 상상력의 백미다. 경험을 토대로 한 새로운 상상력으로 솔루션을 찾는다. 그렇게 풀린다.

# ‘문재인 프로세스’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했다. 지정학적 위기 등은 사라졌다. 대신 남북 경제협력 등 새로운 기회가 언급된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현실은 냉정하다.

‘문재인 프로세스’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경제는 걱정거리다. ‘불평등’ ‘양극화’의 현실,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원칙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최저임금 인상 등이 경제 악화의 주범인 듯 비춰지는 데 대한 정부의 억울함도 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함께 잘 살자”는 문 대통령의 외침을 뒷받침할 정책적 상상력이 부족한 게 정부의 한계다. 예컨대 ‘일자리 정부’를 위한 ‘프로세스’는 과연 존재했나.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한국 경제의 누적된 모순은 시장에서 만들어 진 것”이라며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의 정책으로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김동연)’ ‘청와대 정책실(장하성)’‘국민경제자문회의(김광두)’‘일자리위원회(이목희)’‘4차산업 혁명위원회(장병규)’‘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홍장표)’ 등이 내놓은 창의적 발제나 상상력이 담긴 솔루션을 들어본 적이 없다.

# 밖에선 ‘코리아 디스카운트’ 대신 ‘코리아 컨틴전시(contingency,만일의 사태)’를 말한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의 정책을 한국 기업이 감내할 수 있느냐에 대한 걱정이자 의문이다.

제때 납품할 수 있는지, 혹 법 위반으로 걸리는 게 아닌지 기본 질문부터 시작한다. 이에맞춰 단기·중기·장기 계획을 다시 짠다. 거기에 맞춰 국내 기업도 계획을 수정한다.

경제주체는 이렇게 움직이는데 정부의 메시지는 구름 위를 떠돈다. 새로운 상상력은 없다. 보완 대책, 보완의 보완 대책이 정책으로 포장된다. 상상력의 한계가 있다면 교체해야 한다. 경제 진단이나 분석의 옳고 그름을 너머 시장은 기대를 접었다.

인사는 메시지다. 정책 기조의 변화 또는 재확인 수준을 넘어야 한다. 시장은 현 정부에 경제할 의지가 있는지 묻고 있기에 그렇다. 인사에서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 정책적 상상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문재인 프로세스’만큼 인사의 상상력을 기대한다. 그래야 경제 관련 ‘프로세스’가 만들어질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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