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천 칼럼] 국민연금의 ‘3대 모순’과 노무현-유시민의 ‘연금개혁’

[the300]

최병천 (정책혁신가) l 2018.11.10 06:05

최근 국민연금 재정추계 4차 결과가 발표됐다. 4차 결과에 의하면 국민연금 적립금은 2057년에 소진될 예정이다. 5년 전에는 2060년이었는데 3년이 앞당겨졌다.

현행 국민연금법 제4조는 “국민연금 재정이 장기적으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수지를 계산하고, 재정 전망 및 연금보험료 조정이 포함된 계획 수립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승인해야 한다.

◇ 국민연금법 4조 – ‘국민연금 재정안정화’에 대한 대통령의 의무조항

국민연금은 1988년에 처음 시행된다. 도입될 당시, ‘내는 돈’을 의미하는 보험료는 3%, ‘받는 돈’을 의미하는 급여율은 70%였다. 모두 ‘소득’을 기준으로 한다. 예컨대, 월급 100만원을 받는 노동자인 경우, 100만원의 3%인 3만원씩 보험료를 내고, 나중에 65세가 지나면 월급의 70%인 70만원을 매월 받게 되는 방식이다. (노동자인 경우, 보험료의 절반은 회사가 내주기 때문에, 실제 노동자 월급에서 나가는 돈은 1만 5000원이다.)

국민연금법 4조는 1998년에 도입된다. ‘국민연금법 4조’는 <국민연금의 재정안정화>에 대한 대통령의 의무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기금 상태를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현세대와 후세대의 분담 몫 조정에 대해, ‘책임있는 결정’을 법제화한 것이다.

현행 국민연금은 구조적으로 ‘3가지 모순’을 내재하고 있다.

첫째, <현세대와 미래세대 사이의 모순>이다. 아래 표(국민연금의 소득수준별 수익비)는 국민연금의 소득수준별 수익비를 보여준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위원회에 소속된 정의당 윤소하 의원실이 밝혀낸 ‘특종’이기도 하다. 

평균소득자(227만원) 기준으로 수익비는 2.6배이다. 100원 내고 260원을 받는 구조이다. 그럼, 나머지 160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정부가 대신 내거나, 회사가 대신 내주는 것일까? 아니다. 나머지 160원은 ‘후세대’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 국민연금의 3가지 모순 – 세대간 형평성, 역진성, 광범위한 사각지대

둘째, <중심부 노동자와 주변부 노동자의 모순>이다. 국민연금의 ‘역진성’이다. 국민연금은 ‘노동시장과 링크된’ 제도이기 때문에, 노동시장의 불평등과 역진성이 그대로 전이(轉移)된다. ‘고임금+장기근속’ 노동자는 ‘저임금+단기근속’ 노동자에 비해, ‘순(純)혜택’이 훨씬 크다. 순혜택이란, 말 그대로 받는 돈에서 ‘낸 돈을 모두 제외한’ 금액이다.




표(국민연금 소득별/가입기간별 순혜택)를 보면, 10년 가입을 기준으로, 100만원 소득자의 순혜택은 3236만원이고, 468만원 소득자의 순혜택은 4119만원이다. 동일한 10년 기간인 경우, 468만원의 최고소득자가 100만원 소득자보다 순혜택이 883만원 더 많다.

한국 노동시장의 실제 현실은 <고임금+장기근속>이고, <저임금+단기근속>이다. 이런 노동시장의 현실을 고려하면, <100만원 + 가입기간 10년>은 3236만원이고, <468만원 + 가입기간 40년>은 1억8594만원이 될 개연성이 높다. 최대 1억5358만원의 ‘순혜택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

‘수익비’를 기준으로 보면, 저임금 노동자가 4.2배이고 최고임금 노동자 1.9배이다. 저임금노동자의 수익비가 고임금 노동자보다 많다.(표-1) 그러나, ‘절대금액’을 기준으로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고임금 노동자일수록 저임금 노동자보다 순혜택이 크다.(표-2) 즉, 국민연금은 ‘역진적’이다.

셋째, <국민연금 내부자와 외부자의 모순>이다. 성인 인구 중에서, 국민연금 가입자 비율은 55%이다. 국민연금 ‘바깥에’ 있는 사람의 비율은 45%이다. 국민연금 내부자는 약 1800만명, 국민연금 외부자는 약 1500만명이다. 무려 <1500만명이 사각지대인> 제도이다. 국민연금만으로 ‘노후안전망’을 추구하는 것은 한계가 명백하다.

◇ 다층형 연금체계 - 공적연금을 강화하되, 국민연금 3대 모순을 해결하기

요컨대, 현행 국민연금은 ①세대간 형평성 ②소득재분배 및 불평등 ③노후안전망(=노후소득보장) 3가지 측면 모두에서, ‘구조적으로’ 모순을 내재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이러한 3가지 모순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①국민연금이 애초부터 <저(低)부담-고(高)복지>로 설계됐고 ②<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모순이 국민연금 제도에 그대로 전달되고 있으며 ③<광범위한 비(非)노동 성인인구>의 존재를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자체가 ‘역진성’을 내재하고 있기에 ‘국민연금 중심의’ 연금개혁은 필연적으로 ‘역진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다시 말해 ‘불평등을 확대하는’ 연금개혁(?)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해법의 방향성은 ‘다층형 연금체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특히 기초연금의 역할을 강화하되, 보충연금, 국민연금, 법정 퇴직연금을 결합하는 것이다.

◇ 하후상박(下厚上薄)형 연금개혁 – 2007년 노무현∙유시민 연금개혁의 재평가

①세대간 형평성 ②역진성 완화 ③광범위한 사각지대 해소를 하되,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소득보장의 취지를 살린 ‘연금개혁’의 선례(先例)가 존재한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의 미션을 받고,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추진했던 2007년 연금개혁이다. (*편의상 이하 ‘노무현-유시민의 연금개혁’으로 표기한다.)

재정안정화 방안을 명시하고 있는 국민연금법 4조는 1998년에 신설된다. 5년마다 실시되는 재정추계 1차 결과가 2003년에 발표된다. 1차 추계에 의하면, 기금소진 시점은 2047년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하는 스타일이었다. 국민연금 구조가 <저부담-고복지>이며, 후세대에게 덤탱이 씌운다는 것을 알게 되자, 연금개혁을 추진하게 된다. 2007년 연금개혁의 결과는 아래와 같다.

첫째, 기금소진 시점이 2047년에서 2060년으로 늦춰진다. 후세대에게 덤탱이 씌웠던 비용의 일부를 ‘13년의 세월만큼’ 현세대가 추가로 부담하게 됐다.

둘째, 국민연금만 놓고 보면, 보험료율은 9%로 유지되고, 급여율은 60%에서 40%로 줄어들었다.

셋째, 10만원(=급여율 5%) 규모의 ‘기초노령연금’이 추가로 도입된다. 이는 2028년까지 20만원(급여율 10%)로 상향될 예정이었다. 기초노령연금 도입이 중요한 이유는 국민연금에서 ‘완전 배제되었던’ 사람들이 연금혜택을 받게 되었다. 이를 정리하면, [표-3]이다.



노무현-유시민의 연금개혁에 대해 진보적 사회복지학자들과 진보계열 노동단체, 시민단체들은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최악의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여한다. 낙인찍기를 통해 평판을 훼손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에 동의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사회적 약자의 눈>으로 보면, <불평등 해소의 관점>에서 보면, ‘올바른’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손해를 봤는지 살펴보면 명징해진다.

2007년 노무현-유시민의 연금개혁을 통해, ‘세 집단’이 이익을 봤고, ‘한 집단’이 손해를 봤다. 첫째, 미래세대가 이익을 봤다. 둘째, ‘노동자조차도 되지 못하는’ 가난한 노인들이 이익을 봤다. 셋째, ‘평균 미만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혜택을 보게 됐다.

그럼, 누가 손해를 봤을까, <고임금+장기근속 노동자들>의 경우 실제로 손해를 봤다. 대체로 대기업 및 공기업에 종사하는 고임금 노동자들이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이들의 손해는 실제로 마이너스가 되는 손해가 아니라, ‘과거에 비해’ 순혜택이 줄어든 것을 의미한다. [표-1]에서 살펴봤던 것처럼, 2018년 현재, 최고소득자(468만원) 노동자의 수익비는 여전히 1.9배에 달한다. 100원 내고 190원 받는 구조이며, 90원은 ‘후세대’에게 전가하고 있는 구조이다.

정의(正義)란 무엇인가? 20세기가 배출한 가장 중요한 정치철학자인 존 롤즈는 『정의론』을 통해 ‘최소 수혜자의 원칙’을 제시한다. ‘가장 가난한’ 사람의 처지가 개선될 때, 정의로운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7년 노무현-유시민의 연금개혁은, <하후상박(下厚上薄)과 불평등 완화의 관점>에서 볼 때, 명백하게 바람직한 개혁이었다.

여전히 국민연금 제도 바깥에 있는 사각지대가 45%, 무려 1500만명 규모이다. 이들은 ‘노동자조차도 되지 못했던’ 가난한 비(非)노동 민중들이다. 세계 최고의 노인자살율과 세계 최고의 노인빈곤율은 모두 ‘국민연금 바깥에 있는’ 어르신들 문제이다. 5분위 기준에서, 소득 1분위~2분위에 소속된 저임금 노동자의 경우,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매우 짧다.

미래세대와 가난한 민중의 편이 되고자 한다면, 연금개혁은 기초연금을 더욱 강화하는 ‘다층형 연금체계’로의 전환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뜻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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