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김병준 비상대책위원회의 '비상대책'

[the300]

박재범 기자 l 2018.11.21 04:40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박근혜 정부 국무총리 내정자’.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독특한 이력이다. 정치적으로 극단에 있는 두 사람(노무현과 박근혜) 모두의 선택을 받은 것만 봐도 분명 만만찮은 내공의 소유자다.

지난해 대선 전후로 보수 진영의 러브콜을 받은 수차례 받은 그는 6·13 지방선거 참패 후 난파선의 선장이 된다. 대선 직후 당 대표,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 등 그의 이름이 거론될 때면 우연찮게 만나 궁금한 것을 물었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의 답은 한결같았다. 화두는 ‘보수의 가치’였다. “자유한국당이라는 보수 정당은 무슨 가치를 점하고 있느냐”를 묻고 대화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게 ‘마이크’라고도 했다. 한때 서울시장 출마를 고민했던 것도 당선보다 가치를 말 할 ‘마이크’ 때문이었다.

김 위원장은 국정교과서를 예로 들었다. 총리 내정자 시절 “국정 교과서가 합당하고 지속될 수 있는가 의문”이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던 그다. “국가 권력이 사람의 생각을 바꾸려 들면 안 된다”며 한국당 의원들의 의견을 묻겠다고 했다.

이면엔 “반성하고 나와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가치를 세우면 조직 정비, 인적 청산 등이 자연스레 될 것으로 봤다. ‘가치 정립→반성→정책·조직 정비→인적청산’ 이 그가 그린 그림이다.

그는 현 여권의 힘을 김대중·노무현의 가치에서 찾았다. 쓰러져도, 분열해도 결국 부여잡을 가치가 있기에 뭉치고 힘을 발휘한다는 설명이었다. 실제 평화, 지역주의 극복, 인권 등의 가치는 여권의 몫이다.

반면 보수의 가치는 ‘박정희’와 ‘산업화’가 전부였다. 그마저 찢겼다. 새 깃발을 걸어야 하는데 깃대만 앙상하다. 취임 일성으로 “혁신 비대위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역사의 흐름에 맞는, 국가 발전에서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정립하는 문제”라고 말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는 곧 문재인 정부를 ‘과도한 국가주의’로 규정한 뒤 대신 ‘국민성장론’을 내건다. 메시지는 제법 먹혔다. ‘보수 vs 진보 ’‘좌파 vs 우파’구도를 벗어난 떄문이다. 국가주의 논쟁은 ‘작은 정부 vs 큰 정부 ’ ‘국가 vs 시장’등의 구도로 만들었다. 정부 여당과 대척점을 세우면서 보수 야당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홈런까지는 아니었지만 장타는 됐다. 하지만 후속타가 없었다. 김병준 비대위의 한계로 초기 인적 청산 부재를 들지만 돌이키면 이 때 호흡을 놓친 게 발목을 잡은 측면이 있다.

사실 국가주의는 문재인 정부 공격 효과뿐 아니라 안을 향한 도발적 질문이기도 했다. 국가주의는 박정희와 뗄 수 없는 개념이다. 산업화 국가주의, 민주화 국가주의 다음을 보수·진보 모두에게 묻는 화두였기에 힘을 얻었다는 얘기다. 이후 메시지는 안보다 밖을 향한다. 가치 정립을 내부가 아닌 외부의 대립점에서 찾는다. ‘비상대책위원장’보다 ‘관리형 야당 대표’에 위치한다.

“지금 이 순간부터 가치를 바로잡고 이념체계를 바로 잡는 일에 얼마만큼 동참하느냐에 따라 같이 할 수 있는 분인가 아니면 없는 분인가가 정리되고 평가가 나올 것”이라고 했지만 가치가 현실에 밀렸다.

여권을 공격할 때 오는 지지자들의 달콤한 환호에 취한다. 조직강화 특위를 구성하고 I노믹스를 발표해도 끊긴 호흡을 되살리기 쉽지 않다. 마이크는 쥐고 있지만 질문이 사라진 때문이다.

오히려 당 내부에서 ‘탄핵’ ‘전당대회’ 등의 화두를 그에게 묻는다. 비상대책이 가치 정립이고 그 출발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는데 공수가 바뀌었다. 

선수들은 틈을 귀신같이 찾아낸다. 그리고 공략한다. 홍준표 전 대표의 복귀, 태극기의 질주 등은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비상대책위원회의 ‘비상대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일 수 있다. 지지율이 떨어지는데도 여당만 조용히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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