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거인들의 전쟁' 뚫을 文대통령 비밀병기, 평화 그리고…

[the300][춘추관]현장서 본 아세안·APEC, 美·中 충돌과 러·일 각축 틈에 韓

김성휘 기자 l 2018.11.20 20:24
【파푸아뉴기니=뉴시스】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파푸아뉴기니 APEC하우스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18.11.18. pak7130@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열강들의 각축장. 13~18일 현장에서 본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공동체)의 모습이다. 대립보다 화합이 다자 무대의 이상이지만 현실은 달랐다. 무기만 안 들었을 뿐 저마다 자국이익을 키우려는 국익전쟁이고 외교전쟁을 벌였다. 그 틈에서 평화와 번영의 실마리를 잡으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길찾기 노력도 치열했다. 손에 든 건 석유도 무기도 아닌 비패권, 평화 추구, 상호 호혜성 등 한국만의 가치 리더십이다.

다자외교에선 서로 험한 말이 나오기 어렵다. 보는 눈이 많다. 비공개 양자 회담도 아니고 다른 나라의 정상들이 있다. 올해 파푸아뉴기니 APEC은 달랐다. 포문은 시진핑 중국 주석이 열었다. 그는 17일(현지시간) APEC 최고경영자회의(CEO summit)에서 작심한 듯 미국을 비판했다.

시 주석은 "국제질서는 다같이 만들어야지, 팔뚝이 굵고 힘센 누군가 만드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과 무역 공세를 일방주의와 보호주의라 지적했다. 인민망 한국어판은 이 발언을 "명언이었다"고 칭송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그런 시 주석을 역공했다. 시 주석 다음순서로 연단에 오른 그는 "중국이 행로를 바꾸기 전에 미국은 행로를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중국의 일대일로(One belt, one way)에 대해서는 수축벨트, 일방통행로라며 상대국가를 빚더미에 빠트린다고 비판했다. 

미·중이 APEC에서 잔뜩 긴장을 고조시킨 후 G20 무대에서 극적 타협을 보리란 관측도 있다. 어쨌든 APEC 정상회의는 공동성명을 채택하지 못한 채 다소 민망하게 마무리됐다. 

'거인'들의 각축은 앞서 ASEAN(싱가포르)에서도 치열했다. 전통적으로 동남아시아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일본은 치고 들어오는 중국을 견제했다. 또 아베 신조 일본총리는 펜스 부통령과 회담에선 대북제재 유지에 동감했다.

인도는 중국의 턱밑에서 인도-태평양 구상에 찬동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펜스 부통령과 만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비전에 공감했다. 러시아판 신남방정책도 모습을 드러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취임후 처음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와 양자회담에선 러시아제 항공기를 사달라고 요구했다.
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 한-아세안, 중-아세안, 일-아세안 정상회의를 한 면에 배치했다. 2018.11.15/직접촬영


ASEAN, APEC 무대의 빅 플레이어 가운데 주변국을 긴장시키지 않는 나라는 드물다. 중국 일대일로는 미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자극한다. 남중국해라는 뇌관도 있다. 미국의 보호주의 또한 특히 중국 우려를 증폭시킨다. 러시아는 미국 중국 어느쪽의 일방적 영향력도 용납하지 않는다.

한국은 달랐다. 문 대통령은 조용히 아세안 회원국들을 파고 들었다. 무엇보다 평화를 원한다고 설득했다. 경제적으로 보호무역이나 일방주의 대신 자유무역을 지지했다. 상대국과 서로 도움이 되는 호혜성을 강조했다. 

물론 아직 아세안에 한국 입지가 약하다. 그러나 한국은 "배우고 싶은 모델국가"(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이지만 두려운 상대는 아니란 입지를 굳혔다. 한류 콘텐츠를 갖추고, 위협적이기보다 파트너로 다가가려는 한국의 매력도 적잖다. 달리 말하면 소프트파워의 힘이다.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호주 등 남태평양 도서국가 쪽에서 '우리도 신남방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요청이 온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G20(주요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G20에서도 공룡들의 대결이 예상된다. 미국 보호주의 최종보스 격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온다. 문 대통령은 거인들 사이에서 다시 평화와 번영이라는 국익 찾기를 시작한다. 한·미 정상회담도 추진중이다. 문 대통령은 이를 위해 27일~다음달 4일 체코·아르헨티나·뉴질랜드를 차례로 방문한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문 대통령의 무기는 이번에도 평화, 합리성, 상호 호혜성 등이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일 국무회의에서 "사람을 중심에 두고 평화와 상생 번영을 추구하는 신남방정책에 대해서 아세안과 인도, 호주 등은 환영과 확고한 협력의지를 밝혔다"라며 "신남방정책이 경제협력 확대와 우리의 수출시장 다변화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의 한 부분. 러시아-아세안 정상회의, 러-말레이시아 정상회담 등을 다뤘다. 2018.11.15/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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