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모의 자격, 文의 질문 盧의 대답

[the300][춘추관]文대통령의 실력, 참모·내각이 놀랄 정도라는데

김성휘 기자 l 2018.11.25 12:17
【포트 모르즈비(파푸아뉴기니)=뉴시스】박진희 기자 = APEC 정상회의 일정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파푸아뉴기니 포트 모르즈비 잭슨 국제공항에서 귀국을 위해 전용기에 오르고 있다. 2018.11.18. pak7130@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문 수석도 자기 일이 되면…" 

문재인 대통령은 올빼미다. '야행성'이란 얘기다. 정시 출근-정시 퇴근보다 변호사로, 밤새 서류뭉치와 씨름하는 일상을 평생 살았다. 그러다 2003년, 어공(어쩌다 공무원)으로 난생 처음 시작한 공직이 하필 24시간 가동되는 청와대였으니 '최대의 적'은 졸음이다. 

조찬회의, 서류 검토, 대통령 보고, 다시 회의. 치과 치료중에도 깜빡 잠이 들 만큼 피곤했다. 회의때 소관 분야를 벗어난 논의가 진행되면 졸음을 참기 어려웠다. 

그런데 신기했다. 각종 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전혀 졸지 않았다. 바쁘기로는 대통령이 대한민국 최고로 바쁠텐데. 하도 신기해서(?) 문 대통령(당시 민정수석)은 어느날 노 대통령에게 물었다. "문 수석도 자기 일이 되면 졸리지 않을 것"이라는 답이 문 대통령 뇌리에 남았다.

"대통령님 어찌 그런 것까지 아십니까."

청와대 사람들은 문 대통령에 대해 입을 모아 말한다. 기억력이 대단하다. 디테일까지 챙기는 꼼꼼함은 놀라울 정도다. 회의중 문 대통령의 질문이 시작되면 긴장해야 한다. 보고 내용에 미진한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에피소드를 들을수록, 안심이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불안하다.

첫째 대통령이 많이 아는 것 자체로 놀라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어떤 참모보다 정보 우위에 서게 마련이다. 대한민국 최고수준의 보고서들이 매일 올라온다. 수많은 사안을 압축하고 정제한 '고퀄'(고퀄리티)이다. 대통령이 넓게, 깊이 많이 아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둘째 그런 대통령의 강점이 집권세력과 정부의 유능함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또한 완벽한 인간은 아니다. '우리 대통령이 정말 대단하다'는 찬사에 그쳐서는 발전이 없다. 해당 분야의 참모나 각료가 실력이 없다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장관이나 수석이 대통령을 이겨먹으라는 게 아니다. 최소한 자기분야에서는 그런 대통령의 수준에 걸맞은 내공을 갖춰야 하지 않느냐는 거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시절 노무현 대통령(왼쪽)과 함께했다./청와대 제공


"현장을 모르는 것 같다."

대통령이 현장을 매번 갈 수는 없다. 그나마 현장 방문도 잘 짜인 드라마같아서 '현실'을 있는그대로 보는 것과 다르다. 청와대와 민생현장의 거리감도 적잖다. 그 간극을 메워주는 게 참모와 내각이다. 그런데도 주무장관이 대통령에게 현장을 모른다는 지적을 받는다면. 지난 20일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실제 그랬다.

보고서는 번듯했다. 문 대통령은 디테일과 통계로 행간을 파고들었다. 그리곤 말했다. "현장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접근 방법이 잘못됐다." 참석자들은 "세부적인 것까지 어찌 그리 잘 아시나"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정신이 번쩍 드는 일 아닌가.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면 더 불안하다. 누군가는 부지불식간에, 자신이 매섭게 질타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찌 그런 것까지 아십니까"는, "졸리지 않으십니까"라는 질문과 같다. 문 대통령의 답은 여민관 회의실 벽에 지금도 걸려 있다. 춘풍추상(春風秋霜)-남에겐 봄바람같이 부드럽게, 자신에겐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집권 2년차를 시작하며 참모들에게 강조한 글귀다. 

또다른 답변도 우리는 이미 알고있다.

"높은 지지는 정말 등골이 서늘해지는, 저는 등에서 식은땀 나는 정도의 두려움이다. (1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서툴 수 있다는 핑계는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6월18일, 더불어민주당의 6·13 지방선거 승리에 대해)
【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5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고 신영복 선생의 '춘풍추상(春風秋霜)'글이 담긴 액자가 걸려 있다. 2018.02.05. photo1006@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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