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청와대의 '부러뜨리기'

[the300]

박재범 정치부장 l 2018.12.07 04:40
이른바‘김&장(김동연·장하성)’ 갈등이 불거졌을 때 정부 여당 인사들에게 물었다. 말을 아끼면서도 속내를 감추진 못했다.

평가는 다소 의외였다. 반반으로 갈렸다. 마치 박빙의 투표 결과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각각의 장·단점이 뚜렷했다는 얘기도 된다. 더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을 향한 지지 전선이었다.

과거 청와대와 부처, 관료와 비관료가 대립할 때면 ‘지지 세력’과 ‘안티 세력’이 확실했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은 청와대, 비관료, 캠프 출신 등에 힘을 실었다. 늘공(늘 공무원)은 당연히(?) 관료를 지지했다.

실세에 대들다 떠밀린 관료 프레임, 또는 관료들의 조직적 저항에 굴복한 개혁 프레임 등이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참여정부 때 386과 부닥친 이헌재 전 부총리 등이 그 중 한 예다.

하지만 이번은 좀 달랐다. 어공이 절반으로 나뉘었다. 청와대 내, 기획재정부 내 늘공도 갈렸다. 김동연을 호위하지만은 않았다. 정치권도 그랬다. 바른미래당의 재선 의원은 장하성을, 자유한국당의 초선의원은 김동연을 감쌌다.

여당 내부 기류도 비슷했다. 그만큼 두 사람은 팽팽했다.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언쟁한 것도 여러 번 된다고 한다.

여권 핵심 인사는 “어떻게 만든 정권인데….”라고 토로했다. 지분없는 ‘김&장’의 갈등이 전체 판을 흔든다는 인식도 감추지 않았다. 사실 ‘김&장’동시 교체가 앞당겨진 것도 여권 핵심부 기류가 반영된 결과다.

다른 여권 인사는 “문 대통령이 ‘성과와 속도를 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내기 시작한 시점을 돌아보라”고 했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등을 둘러싼 논쟁에 대한 비판으로 읽혔지만 속내는 내부 경제팀을 향한 질책이었다는 얘기다.

실제 문 대통령이 지난 6월 27일 제2차 규제혁신점검회의를 연기하며 이낙연 국무총리, 임종석 비서실장에게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 개혁 성과를 만들어 달라. 답답하다”고까지 말했다. 그런데도 결과물은 없었다. 수많은 회의와 논쟁만 있었을 뿐이다. 손에 잡히는 게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손에 잡히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청와대에 변화 조짐이 엿보인다. 요새 청와대 비서실(정책실 포함)의 유행어는 “부러뜨리고 가자” “부러뜨리자”라고 한다. 임 실장이 자주 쓰는 말이 전반적 기조가 됐다. ‘부러뜨리자’는 결단(決斷)의 구어적 표현이다. 하나하나씩, 탁탁 일의 매듭을 짓고 가자는 의미다. 기저에는 앞서 언급한 담론 논쟁에 대한 반성이 깔려 있다. 청와대 고위인사는 “개념보다 상품을 팔아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잘 안 됐다”고 했다.

어찌보면 지난 1년반 ‘김&장’이 남긴 것은 기조 논쟁과 통계 논쟁뿐이다. 정책의 배경, 의의 등을 청와대, 정부 내에서 수없이 토론했을지 몰라도 정작 실현됐거나 가시화된 것은 많지 않다. ‘기-승-전-결’이 아닌 ‘기-승-전-종합토론’의 당연한 결과다.

반면 이젠 회의 테이블에 의미와 배경, 담론이 올라오지 않는다. 할 것인지, 말 건인지를 묻는 선택지만 회의 안건이 된다. 논의는 ‘○(한다)’ ‘×(안 한다)’로 좁혀진다. 준비가 안 됐으면 명분과 의의가 있어도 포기한다. 준비됐으면 비판 등을 감당하고 간다. 최근의 카드 수수료 인하, 편의점 자율 규약, 군사보호지역 해제 등이 대표적인 예다. ‘종합’ 대책보다 ‘핀셋’ 정책의 모양새를 띄는 것도 ‘부러뜨리기’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당장 눈앞에 광주형 일자리, 탄력근로제, 최저임금 등이 놓여 있다. 어떤 선택지를 만들어 탁탁 매듭짓고 똑 부러뜨릴지.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더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냐”(임종석 비서실장)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총만의 것이 아니다”(조국 민정수석) 등의 담론을 넘는 과감한 부러뜨리기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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