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상견례에 드러난 '노영민 스타일', 기삿감은 안줬지만…

[the300][뷰300]'외향적' 임종석과 차이…기강, 경제, 협치의 실적 관건

최경민 기자 l 2019.01.13 18:24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2019.01.11. pak7130@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비서실장님이 기사를 어떻게 쓰시게 만들려고 이렇게 말씀을 종료를 하셨는지…"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13일 서울 종로의 한 식당에서 이렇게 말하자 좌중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최근 임명된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강기정 수석, 윤도한 국민소통수석과 청와대 기자단의 상견례 자리였는데, 노 실장이 '심심한' 모두발언을 하자 강 수석이 유머를 섞어 이같은 상황을 정리한 것이다.

실제 이날 노 실장은 "제가 단일기간으로 역대 최장수 당 대변인이었다"며 소통을 강조하면서도 "아직까지 업무 인수인계 중이다. 어떤 것을 말하기가 조심스럽다"고만 말했다. 

언론 앞에 설 기회가 있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유머를 섞어가며 '기삿감이 되는' 말을 하던 임종석 전 실장과 차이점이 보인 자리였다. 외향적인 임 전 실장과 무게감이 있는 노 실장의 면모는 그들의 나이(임종석 53세, 노영민 62세)만큼 차이가 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노 실장 임명을 임 전 실장 발탁과 비교하며 "감동이 없다"고 평한다. 노 실장은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고, 임 전 실장 만큼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인물도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임종석이라는 젊은 비서실장의 발탁은 그 자체가 파격이었고 메시지였기도 했다.

언론과 세간의 평가도 썩 호의적이지 않았다. "올 사람이 왔다"는 수준이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직접 노 실장의 인선과 관련해 "친문을 더 강화했다와 같은 언론의 평가는 조금 안타깝다"고 할 정도였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여당 안팎에는 노 실장에 대한 기대가 존재한다. 3선의원 출신의 경륜을 바탕으로 '준비된 비서실장'의 면모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다. 

일단 노 실장은 조직 구성과 관리에 일가견이 있는 인사로 평가받는다. 청와대 기강 강화라는 숙제 해결의 적임자일 수 있는 것이다. 실제 노 실장은 연일 '춘풍추상(春風秋霜, 남을 대할 때에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대하고, 자신을 대할 때에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대한다)'을 강조하는 중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을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민생경제 개선을 이뤄낼 지 여부도 관건이다. 문 대통령은 노 실장의 청와대 입성 이후 첫 만남에서 "비서실장도 경제계 인사 만나는 게 해야할 일"이라고 특명을 내릴 정도로 신뢰를 보였다. 경제정책에도 비서실장이 적극 역할을 해달라는 의미다.

원활한 경제정책을 위해 필수적인 야당의 협조도 노 실장이 보다 능수능란하게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노 대사는 국회의원 시절 '합리적 중도' 성향을 보인 인사다. 잠재적 대권후보로 꼽히는 임 실장 보다 야권의 견제구를 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냐는 평가 역시 나온다.

문 대통령도 노 실장의 기용을 두고 "정무적 기능을 강화했다"며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과의 대화도 보다 활발하게 하고 싶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했었다.

"감동이 없다"는 평가를 받은 노 실장은 임기 초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 임 전 실장이 정권 출범 직후 문 대통령, 조국 민정수석과 함께 사회적인 인기를 누렸던 점에 비해 한 발 느린 게 사실이다.

여론을 뒤집는 것은 결국 '실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스타일 대로 조용하면서도 묵묵하게, 그러면서도 주도면밀하게 일을 처리해 나가면 되는 것이기에 오히려 노 실장에게 유리할 수 있는 판이다. 확실한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했던 정권 초 보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든 지금이 그의 진면목을 발휘하기 용이한 상황인 점은 분명하다.

노 실장이 청와대에 들어온 후 "제가 부족한 사람", "잠을 설친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도 부담감을 피력한 부분일 수 있지만, "고민과 토론을 거쳐 결국 실적으로 보여주겠다"는 마음가짐의 방증일 수도 있다. 그가 청와대 참모진에 가장 먼저 강조한 것도 '성과'였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