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기의 외교학, 김정은은 '참매'로 베트남 갈 수 있을까

[the300][뷰300]지난해 中 항공기로 싱가포르행, 北 내부 반발 거셌던 듯

최경민 기자 l 2019.01.17 11:48
【싱가포르=AP/뉴시스】북미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1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에 도착, 이동하고 있다. 2018.6.10 photo@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지난해 6월10일 오전 평양에서 세 대의 비행기가 싱가포르로 향했다. 구 소련제 일류신-76 수송기(IL-76), 에어차이나 소속 항공기 CA122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용기인 '참매 1호'(IL-62M)였다.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예정된 제1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이 출발한 것이 확실했다. 김 위원장이 셋 중 어떤 비행기를 탔을 지가 관건이었는데, '참매1호'가 아니라 CA122편이 유력하다는 분석이 처음부터 나왔다. '참매1호'가 1980년대 도입된 노후화 기종이고, 장거리 비행이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CA122편은 중국 상공에서 CA61편으로 편명을 바꾼 후 싱가포르로 직행했다. 그날 오후 싱가포르에 도착한 CA61편에서 김 위원장이 내리는 장면이 전세계의 전파를 탔다. 곧바로 도착한 김 위원장의 전용기 '참매1호'가 신변 안전을 위한 연막의 도구로 전락한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북한 내부에서는 김 위원장이 중국 항공기를 타고 싱가포르까지 가는 것에 대해 이견이 상당했다고 한다. 낙후된 북한의 경제 상황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특별한 국내 위상을 생각했을 때 북측의 당연한 고민이었다.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담판에 얼마나 목을 매고 있었는지를 보여준 상징이 되기도 했다. 협상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것을 넘어 김 위원장이 중국 비행기를 타서라도 싱가포르에 감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끌려 간다는 인상까지 준 것이다. 실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을 한 차례 취소하는 초강수로 협상 주도권을 완전히 틀어쥐었다.

이같은 분위기와 평가를 반영하듯, 북측은 지난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이후 미국 측과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세팅하는 과정에서, '참매1호'의 비행 범위에 있는 장소에서의 회담 개최를 강력하게 요구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시 타국 비행기를 타고 국제무대에 나서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참매1호'의 비행 범위는 약 3000마일(약 4828㎞) 정도로 파악된다. 한반도에서 싱가포르까지 거리가 약 4700㎞쯤 된다. 싱가포르가 사실상 '참매1호'가 날아갈 수 있는 한계 거리에 위치한 국가인 셈이다. 

즉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싱가포르 보다 가까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개최하자고 북측이 제안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항공기 비행거리 내에 있는 장소"라고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힌트를 줬다.

그런 과정에서 베트남이 자연스럽게 유력 후보지로 떠올랐다. 중국·일본은 현실성이 없고 한국은 북측에 부담일 수 있다. 특히 북미 정상회담과 같은 이벤트는 수천 명에 달하는 각국 언론인들까지 몰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인프라를 갖춘 국가여야 한다.

비행 범위와 인프라, 그리고 북한 대사관이 있는 장소 등을 따졌을 때 베트남이 가장 적절한 장소로 꼽힌 것이다. 이번주 중 유력한 북미 고위급 회담에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장소로 베트남 하노이가 결정된다면, '참매1호'를 타고 트럼프 대통령과 핵담판에 나서는 김 위원장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변수는 있다. 베트남 외에도 미국 하와이, 태국 방콕 등도 꾸준히 유력 후보지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베트남 개최 가능성을 높게 보면서도, 하와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날 경우 연출될 상징성에 주목하고 있다. 가능성은 아직 낮지만, 북한 최고 지도자의 최초 미국 방문이라는 이벤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보다 거리가 더 떨어져 있는 하와이 같은 곳으로 회담 장소가 결정된다면, 김 위원장은 또 다시 '참매1호' 대신 타국의 항공기를 빌려타야 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야 북측이 원하면 언제든 우리 비행기를 빌려줄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북측이 그런 요청을 우리에게 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공항=뉴시스】박진희 기자 = 북한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고위급대표단 수송을 마친 김정은의 '참매-1호기'가 북으로 돌아가고 있다. 2018.02.09. pak7130@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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