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포스트 '문재인 프로세스'

[the300]

박재범 정치부장 l 2019.02.08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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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 북한 관련 메시지가 차지한 비중이다. 82분의 연설 중 1분이 채 안 됐다. 지난해 2483자(알파벳 기준)였던 대북 발언은 540자로 줄었다.

숫자보다 내용 변화가 뚜렷하다. 지난해 탈북민 지성호씨, 북한에서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가족을 국정연설에 초청한 뒤 북핵 위협, 북한 정권의 음흉한 본질 등을 직접 꺼냈던 트럼프다.

올해는 달랐다. 북한을 자극하는 단어는 하나도 없었다. ‘핵’은 북한이 아닌 이란의 문제로 적시했다. 트럼프가 언급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러시아, 중동 등은 긴장과 갈등의 공간으로 표현된 반면 그간 ‘악의 축’ 자리를 지켜왔던 북한은 빠졌다.

실제 북미간 협상이 시작된 후 트럼프의 대북 발언 중 부정적인 것은 없었다. 여권 고위 인사는 “북미간 협상과정에서 어려움이 적잖았지만 미국이 공개적으로 한번도 불만을 표시한 적이 없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한 언어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김정은 위원장과 관계는 좋다”고 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이달말 다시 얼굴을 맞댄다. 260일전 △관계 정상화 △평화 체제 △비핵화 △유해 송환 등 4개 기둥(필라·pillar)을 세웠던 두 사람은 진전된 답안지를 작성 중이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지만 민감한 현안 관리 단계는 넘어섰다.

비핵화와 상응 조치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게 된 것부터 국면 전환이다. 불과 1년 반전 전쟁 위협에 휩싸였던 한반도를 떠올리기 쉽지 않은 대변화다.

무엇보다 남·북·미·중의 ‘종전 선언’을 눈앞에 뒀다. ‘4·27 판문점 선언’ ‘9·19 평양공동선언’에서 사실상 남북 불가침을 약속한 데 이은 성과다. 표면적으론 비핵화에 따른 상응조치 카드로 읽힌다. 속을 보면 한반도 평화를 주도적·적극적으로 만들어 간 결과다. 청와대 고위 인사는 “평화는 지키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에서 ‘수석 협상가’ 역할을 한 문재인 대통령이 만든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도 아닌 한반도가 갈라져 전쟁하는 것을 막는 것은 북한이 아닌 우리를 위한 것이란 판단에서 출발했다. ‘종전선언→주한미군 철수’ 기존의 문법 대신 ‘주한미군=한미동맹’을 전제로 종전 선언을 별개의 위치에 뒀다. 그리곤 “종전선언은 전쟁을 종식하는 정치적 선언”이라고 정의했다.

정치적 종전 선언이 이뤄지면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간다. 이념과 대립은 옛 유물이 된다. 위협을 이겨냈던 과거는 뒤로 밀린다.

역경을 이겨내는 힘으로 지난 100년을 살았다면 이제 기회를 만드는 힘으로 살아야 한다. 역사의 새 페이지가 펼쳐지면 써 내려갈 이는 우리다. 공교롭게도 전 세계적 지정학적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고 있을 때 한반도는 평화와 기회의 영역에 들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장밋빛 전망과 화려한 구호가 새로운 미래를 채워주지 않는다. 정치적 종전 선언 이후 한반도 평화를 구체화할 ‘그랜드 플랜’이 필요하다. 판문점 회담(4월27일), 2차 남북정상회담(5월25일), 북미정상회담(6월12일),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개설(9월14일), 평양정상회담(9월19일), GP 철수 남북 상호 현장검증 (12월12일) 등 험난했던 ‘문재인 프로세스’의 여정을 안다.

하지만 이 역시 과거다. 3·1운동 100주년·임시정부 100주년을 맞는 2019년, 우리가 할 일은 추념보다 설계다. ‘다음’을 준비해야 새로운 시간, 새로운 100년이 우리의 시간, 우리의 100년이 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 때 강조했던 ‘함께 잘사는 나라, 새로운 100년’의 창의적 그림을 3·1절 경축사에서 기대한다. 평화, 통합, 혁신을 총망라한 새로운 100년의 설계도 말이다. 물론 북미정상회담 일정을 두고 황당한 음모론을 펼치는 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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