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살 증권거래세 '시한부 운명'…10년간 60조 거둬갔는데

[the300][법안이 말한다]역사 뒤안길로, 자본시장 과세 체계 전면 대수술

박종진 기자 l 2019.02.15 04:31



#나는 증권거래세법이다

1978년생 말띠인 나는 올해 마흔 살을 넘긴 증권거래세법이다. 문자 그대로 증권거래세를 부과하기 위해 탄생했다. 처음 세율은 0.5%로 잡혔다. '건전한 자본시장의 육성을 저해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말띠지만 역할은 고삐에 가깝다. 주식시장이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과열되는걸 막는 임무다. 소위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는 기능이다. 거래세를 물려 거래비용을 증가시키면 시장의 거품억제와 변동성 감소에 기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나를 두고 말들이 많다. 증권거래세를 깎거나 없애자고 한다. 애초 거래세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부터 나온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 일반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주식투자로 돈을 벌든 잃든 거래할 때마다 국가가 수수료를 챙기는 꼴이니 불만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정책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크다는 주장도 있다. 애초 의도한 대로 투기적 거래수요를 일부 억제하더라도 거래량 감소로 유동성이 떨어지는 게 자본시장에 악영향이란 얘기다. 다른 나라들은 거래세가 아예 없거나 낮추는 추세라는 점도 내가 설 자리를 위축시키는 요소다.

나를 따라다니는 농어촌특별세법에도 뒷말이 붙는다. 농어촌특별세법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으로 농업 지원 필요성이 커지자 1994년 제정된 이후 연장에 연장을 거듭해 2024년까지 시행 예정인 법이다. 나를 비롯해 법인세법, 개별소비세법, 지방세법, 종합부동산세법 등 여기저기에 얹혀 있다. 현행 코스피 종목에 적용되는 증권거래세율 0.3% 중 절반인 0.15%가 농어촌특별세 몫이다. 자본시장 죽여가며 농촌 살리는 세금이 타당하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사실상 내 운명은 시한부다. 국회에서 나를 포함한 자본시장의 관행과 구조를 혁신할 방안을 본격 추진 중이다. 이달 안에 여당과 정부는 증권거래세 인하부터 폐지까지 다양한 방안을 협의한다. 올 6월까지 구체적 안이 확정될 예정이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반대도 없다. 유일한 반대론자인 기획재정부도 돌아섰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말 "증권거래세가 과도하다는 지적에 공감한다"며 개선 검토 방침을 밝혔다.





#실태가 어떻길래

세제 당국인 기획재정부조차 반대를 고수하지 못할 정도로 사실 거래세는 '과도'하게 걷힌다. 국세청 자료(징수기준) 등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8년은 8조3000억원으로 추정) 거둬들인 증권거래세는 약 60조원에 달한다.

국가가 이익 발생과 상관없이 거래했다는 이유만으로 세금을 연평균 6조원씩 챙겨간 셈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져 코스피 지수 1000선이 무너졌을 때도 거래세는 꼬박꼬박 떼는 식이다.

주식시장 사정을 보면 더 기가 막힌다. 2011년 초 코스피 지수는 2100선 안팎이었다. 8년이 지난 올해 초반 역시 비슷한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 기간 투자자들이 낸 거래세는 약 49조원이다. 투자자들은 번 게 없는데 나라 곳간만 채웠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코스피 증권거래세의 절반을 차지하는 농어촌특별세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약 2조원 이상이 걷히는 등 최근 3년간만 약 5조5000억원이 주식시장 참여자의 호주머니에서 농어촌특별세로 빠져나갔다. 이 돈은 기획재정부 관할의 농어촌 구조개선을 위한 특별회계로 들어가 각종 농어촌 지원 예산 등으로 쓰인다.

한 경제부처 관료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계기로 한시적으로 만들어진 농어촌특별세법이 세월이 흘렀는데도 필요성을 엄밀히 따지기보다 관행적으로 적용해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시장 유동성 감소가 고질적 문제인 만큼 거래세를 그대로 둬선 안 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김갑래·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투자상품 양도소득 과세체계 선진화' 보고서에서 "개인투자자의 주식시장 이탈과 기관투자자들의 비중확대가 유동성 감소의 직접적 원인"이라며 "투기적 수요 억제를 위한 거래세 부과는 재고돼야 한다"고 밝혔다.





#해법과 친구들

당장 폐지보다는 단계적 인하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거래세율은 1996년 0.3%로 변경된 이후 20년이 넘게 그대로다. 시장금리가 5%를 훌쩍 넘던 시절에 0.3%와 요즘처럼 정기예금 금리가 2~3%에 불과한 상황에서 0.3%는 차원이 다르다.

다른 나라는 증권거래세가 아예 없거나 우리보다 훨씬 낮다. 미국, 독일 등은 거래세가 없고 일본도 단계적으로 인하 후 1999년부터 폐지했다. 중국은 2008년까지 우리와 같은 0.3%였지만 이후 0.1%로 낮췄고 대만도 2017년 0.3%에서 0.15%로 내렸다. 홍콩(0.1%), 싱가포르(0.2%) 등 다른 아시아 자본시장에서도 거래세가 우리보다 낮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세수가 있으니 당장 폐지는 어렵고 농어촌특별세를 포함해 증권거래세를 같은 비율로 낮추는 방식이 현실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당은 자본시장은 물론 경제 관련 법안 전체를 손보는 작업의 일환으로 보고 합리적 방안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첨예한 쟁점이 있는 상법 개정안 등의 처리가 지연되더라도 증권거래세법은 신속히 바뀔 수 있다.

국회 정무위원장인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증권거래세 문제는 상법,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비롯해 벤처기업 차등의결권, 가업상속세 개편 등 공정경제와 혁신성장을 위한 경제 전반의 체계를 바꾸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면서도 "그중에서 증권거래세는 (비교적 쟁점이 없어) 기획재정부가 준비가 되는 대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물론 금융상품에 물리는 세금의 전체적인 조정이 함께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금융상품 간 이득과 손실을 합산하지 않고 개인이 손실을 입어도 이월해주지 않아 돈을 벌지도 않았는데 세금을 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A펀드로 1000만원을 벌고 B펀드로 2000만원을 까먹었어도 A펀드 이득 탓에 세금을 내야하는 식이다. 또 작년에 주식투자로 1억원을 손해 봤어도 올해 1000만원 이익을 냈다면 (현행 양도소득세 납세 의무가 있는 대주주 기준) 역시 세금을 내야 한다.

과세 기준도 직접적 주식거래에는 양도소득세, 펀드 투자에는 배당소득세가 적용되는 등 제각각이다.

특히 인하든 폐지든 거래세를 손대려면 단짝과 같은 주식 양도소득세도 같이 바꿔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당정도 이 같은 방안을 검토 중이다. 거래세에서 거둬온 세금을 양도소득세 개편으로 충당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주식 양도소득세는 소액주주가 상장법인을 장내에서 거래할 때와 비상장 벤처기업을 거래할 때는 내지 않는다. 대주주는 예외 없이 내야 하는데 기준이 통상적 대주주 개념과 다르다. 코스피 기준 현행 지분율 1% 이상, 보유가액 15억원 이상이다. 보유가액 기준은 내년 4월부터 10억원, 2021년 4월부터 3억원으로 각각 내려가면서 과세 대상자가 늘어난다. 거래세 인하에 따라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 확대는 더 빨라질 수도 있고 기준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자본시장 본연의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험자본 육성 역할이다. 즉 벤처·스타트기업에 돈이 공급되도록 세제도 맞춰져야 한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기조도 여기에 맞닿아있다.

이를 위해서는 실패를 용인해야 한다. 해당 기업에 투자한 사람이 손실을 봤는데 세금을 물리는 건 맞지 않다. 금융투자상품 간 손익 통산을 넓게 허용하고 손실 이월공제도 늘리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자본시장활성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주식, 채권, 펀드, 파생상품까지 합산 과세 체계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손실이월공제 확대도 논의된다. 미국, 독일, 영국 등은 무기한이다. 손해를 본 투자자는 몇 년이 걸리더라도 만회할 때까지 세금을 안 낸다는 소리다. 일본은 3년까지 이월공제를 허용하고 있다.

아울러 양도소득세를 물릴 대주주 개념도 재정립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2021년에는 한 종목을 3억원 보유하던 사람은 세금을 내야 하고 열 종목을 2억원씩 20억원어치 갖고 있는 사람은 세금을 안 내도 되는 문제가 생긴다. 이밖에 장기투자 우대세율 적용 등도 모험자본 지원 측면에서 고려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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