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 '품격' 실종된 막말정치…왜 할까·끝장내려면

[the300](종합)아군에 '호소', 대중화 부작용, 양극화 반영도…전문가들 "결국 시민사회 토양 문제"

김민우 기자, 백지수 기자, 이지윤 기자, 강주헌 기자, 박선영 인턴기자 l 2019.03.15 11:39



"귀태"·"입을 미싱으로"…막말정치 왜 하나

'막말'논란으로 정치권이 얼어붙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 "막장정권" 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포문을 열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가원수모독죄"라며 군사독재시절의 유물을 들이대며 맞섰다. 양당은 서로를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했다.

정치권 막말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작가출신인 김홍신 전 한나라당 의원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하여 공업용 미싱으로 입을 박아야 한다"는 말로 파문을 일으켰다. 

2004년 한나라당 의원들은 연극 '환생경제'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빗댄 극중 인물 노가리를 향해 육XX놈', '개X놈' 등의 욕설을 퍼부었다. 

2013년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귀태(鬼胎·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라는 표현도 썼다. 

막말은 이중적이다. 공격받은 쪽은 길길이 날뛰지만 대개 말을 내뱉은 이들은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 전문가들은 막말의 속성 탓이라고 지적한다. 막말의 진짜 대상은 자신의 소속집단이라는 분석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목적이 있다기보다 자기 편을 향한 호소의 수단이라는 얘기다. 막말 논란이 일어도 소속 정당에서는 "할 말 했다", "용기 있다"는 칭찬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 원내대표의 이번 연설 논란에서도 같은 장면이 연출된다. 여권에서는 "도를 넘었다"며 비난이 쏟아졌지만 한국당 내에서는 "국회는 야당의 그런 비판도 들어야 하는 자리"라고 강변한다. 한국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나 원내대표의 인기는 치솟고 있다.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이자,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소통한 '그룹씽크'(group think)의 결과이기도 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패거리정치에 익숙해져서 국민들도 정치인들을 '적과 동지'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다"며 "우리 편이 하는건 다 괜찮고 다른 편이 하는 건 전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대 당이 못해야 반사이익을 얻게 되는 양당제의 문제로 연결시키는 시각도 있다. 양당제 체제에서는 상대방이 하는 모든 일을 못 했다고 폄하하고 발목을 잡아야 집권이 가능하기 때문에 건전한 비판보다는 자극적인 막말이 더 각광받는다는 시각이다. 

이찬열 바른미래당 의원은 "서로 막말하는 정치풍토 개선을 위해서라도 다당제가 돼야한다"고 말했다.

막말을 정치의 대중화 과정에서 파생된 부작용으로 여기기도 한다. 과거 정치는 엘리트 기득권 층의 전유물이었다.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어렵게 그들만의 '리그'를 유지하기 위해 '품격'을 강조하며 말을 더 은유적으로 비유적으로 해왔다.

조선시대에 한글을 창제한 이후에도 위정자들이 한자를 사용한 것도 비슷한 이유다. 근대적 의회민주주의가 일찌감치 발전한 영국도 20세기 중반까지 정치권의 말과 글은 어려웠다. 

기득권의 전유물인 정치인의 언어를 대중화키려고 노력한 사람 중 하나가 조지 오웰이다. 오웰은 자신의 저서 '정치와 영어'에서 평이한 언어를 써야한다고 주장했고 직유와 은유 등 수사적 표현을 사용하지 말라고 권장했다. 

정치권은 점차 이를 수용해 나갔고 '어려운 언어'에서 '쉬운 언어로' 가다가 이제는 더욱 쉽고 자극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막말'까지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도 군사독재 시절을 거쳐 '김대중·김영삼·김종필' 3김 체제가 막을 내릴 무렵부터 정치권에서 막말이 쏟아져 나온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최영일 공동소통전략연구소 대표는 "막말정치는 유교적 영향과 권위주의가 강했던 20세기 정치에서 점차 권위주의가 무너지고 민주화가 확산되면서 생겨난 한 단면"이라며 "과거에는 간접 표현이나 비유적 표현이 정치적 수사로 많이 동원됐지만 2000년 이후부터 정치적 수사가 많이 노골화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는 "특히 2000년 이후부터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정치인의 말이 '얼마나 많이 인용되느냐' '트래픽을 얼마나 끌어올리느냐'가 정치적 말의 파워를 판단하는 기준이 돼버렸다"고 분석했다.

양극화 사회가 막말에 영향을 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인이 막말을 하는 것은 지금 사회가 양극화 됐다는 반증"이라고 말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이 대표적 사례다. 거칠고 극단적 발언으로 악명이 높던 트럼프를 미국인들은 자기 손으로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소위 품위를 지킨다는 기성 정치인들과 미국 유권자 절반의 생각은 너무나 달랐다는 소리다.  

그러나 막말은 곧 정치의 품질저하를 불러온다. 정치냉소주의도 부추긴다. 그 종착점은 정치권 전체의 공멸일수도 있다.

조 교수는 "정치인들이 갈등적인 상황을 막말로 악용하기보다 갈등을 순화시킬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투표를 통해 분명히 반영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어느 나라든 막말은 있지만"…'막말정치' 끝장내려면

"내가 무례하게 굴고 싶진 않은데 당신, 축축한 걸레 같은 카리스마에 은행 말단 직원같은 모습이다.…(중략)…당신 누구냐, 들어본 적도 없다."

2010년 2월24일(현지시간) 영국 우파 정당인 영국독립당(UKIP)의 나이젤 파라지 당대표가 유럽의회 의사당에서 헤르만 판 롬파위 유럽연합(EU) 당시 상임의장을 향해 '독설'을 쏟아냈다. 파라지의 당시 발언은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에서 공유되며 논란이 됐다. 당시 영상을 보면 발언이 나오자마자 동료 의원들의 야유가 나왔다. 파라지 대표는 의회에서 견책 처분을 받았다.

정치인들의 '막말'은 우리나라 국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에서든 서로 다른 이념과 가치, 사상이 맞부딪치는 곳이 정치권 또는 의회다. 그만큼 막말이나 독설도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시각도 있다. 무당층이나 상대 정파에서는 눈살을 찌푸릴 수 있지만 막말에 호응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해외 의회에서는 막말 정치인에 대한 조치가 강한 편이다. 의장이 퇴장까지 지시할 수 있고 경호직원이 와서 문제 의원을 데려갈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도 있다.

파라지 대표에게 견책 처분을 내린 유럽의회에서는 의장의 경고에도 질서 방해 행위가 이어지면 의장이 발언권 박탈과 퇴장을 지시할 수 있다. 이때 회의장 안내원이나 의회 질서 유지원들이 명령을 집행한다. 견책에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심할 경우 문제 의원은 본회의 투표권을 박탈당하거나 의회 내 선출직에서 해임될 수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 등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의장 직권으로 독설 등으로 회의 질서를 문란하게 한 의원에게 당일 나머지 회의 시간 동안 퇴장을 명령할 수 있다. 유럽의회처럼 의장의 명령이 떨어지면 경호원 격인 '경위장'이 문제 의원에게 붙어 퇴장을 집행한다. 영국에서는 의원이 의장이나 위원장 권위를 훼손하거나 고의로 의사 진행을 방해하면 직무정지까지 받을 수 있다.

미국 하원은 주로 발언 규정을 담은 '하원의사규정'을 통해 의원들이 인신모욕적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 의장으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게 된다.

동료 의원을 공격하는 행위도 '무질서 행위'로 간주돼 '견책' 사유가 된다. 견책 이후 조치는 의사규정에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하원 양당 내부 규칙에는 견책 받은 의원은 상임위원장이나 소위원장을 맡지 못하도록 정해놨다. 미국 헌법에서 의회에 무질서 의원 처벌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한다.

물론 우리나라 국회법도 의장의 질서유지권 발동을 보장한다. 혼란이 심하면 의장이 문제 의원들에게 당일 회의 퇴장도 지시할 수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게 문제다. 외국 의회와 달리 방호 직원들이 와서 의장 지시를 집행할 수 있는 근거도 모호하다. 국회법에 회의 질서 문란 행위에 징계안을 낼 수 있다고도 돼 있지만 결국 국회의원 간 '셀프 징계'이기 때문에 실효성은 떨어진다.

결국 정치인들의 날선 언어들이 원색적인 비난이 되느냐 품격있는 비판이 되느냐는 이를 받아들이는 정치문화와 제도가 결정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의회가 막말을 자정하고 견제할 제도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막말하는 정치인을 심판할 수 있는 정치 문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제도 자체는 우리나라도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며 "제도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제도를 어떻게 존중하고 운용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국민이 막말한 사람을 당선 안 시키면 되는 문제인데 당선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시민이 균형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토양'의 문제"라며 "자신이 한 말에 책임지는 문화와 말하기 전에 생각하는 문화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막말 정치인을 처벌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결국 시민의 투표라는 지적도 나왔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어느 나라에서든 선출직을 다른 동료가 처벌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국민이 선거로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 유권자 심판이 가장 무섭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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