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패스트트랙은 민생법안만 올려야 하나?

[the300]선거법 개정안 상정은 절차 상 문제없어…패스트트랙 지정 범위 지적은 가능 "대체로 사실 아님"

이의진 인턴기자, 이재원 기자 l 2019.03.22 07:00

(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국회의원 및 당협위원장 좌파독재 저지 비상 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19.3.18/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18일 좌파독재 저지 국회의원 및 당협위원장 비상 연석회의에서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요건에 안 되는 법을 패스트트랙에 태우겠다는 것"이라며 "한마디로 날치기와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선거법 개정안이 시급한 민생법안이 아닌 탓에 패스트트랙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다.

[검증대상]
선거법 개정안은 패스트트랙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나 원내대표의 주장

[검증방식]
①국회법상 패스트트랙 상정 법안의 요건이 있는지 확인
②과거 패스트트랙 상정 법안 사례 조사
③패스트트랙 상정 법안 범위에 대한 기타 논의 확인

[검증과정]
①현행법상 문제 없음

국회법 제85조 2에서는 패스트트랙(안건 신속처리제도)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신속처리 대상이 되는 안건은 법률안 뿐 아니라 예산안, 결산, 동의안, 결의안 등이 포함된다. 법 규정대로라면 모든 안건이 패스트트랙의 대상이다.

위원회에 회부된 안건을 패스트트랙 대상으로 지정하려면 본회의나 소관 위원회에서 무기명 투표를 해야한다. 국회 전체나 소관 위원회에서 재적 인원의 5분의 3 이상이 찬성하면, 해당 안건은 패스트트랙 대상으로 지정돼 최장 330일 간의 심사를 거치게 된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 18명 위원 중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당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8명 △바른미래당 2명 △민주평화당 1명 △정의당 1명을 합쳐 총 12명이다. 5분의 3을 넘는다. 따라서 이번 선거법 개정안의 경우 여야4당이 모두 동의한다면 법 규정과 절차 상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된다.

5분의 3이라는 비율은 상당히 어려운 조건으로 평가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996년 15대 총선 이후 한 정당이 299석의 5분의 3인 180석 이상을 획득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다. 다시 말해 180석의 동의나 해당 상임위원회 5분의 3의 찬성을 이끌어내려면 정당간 타협과 협치가 필수다.


②패스트트랙은 민생법안만 올릴 수 있다?



지금까지 패스트트랙 대상으로 지정된 안건은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사회적 참사법'과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주도하고 바른미래당이 참여한 '유치원 3법'뿐이다. 이 두 법안은 민생 법안으로 한국당을 제외한 타 정당의 지지를 받아 끌어내 '5분의 3 찬성 요건'을 충족했다.

나 원내대표의 발언처럼 패스트트랙의 이 두 전례는 민생을 둘러싼 긴급한 입법이었다. 그러나 민생법안인지 여부가 패스트트랙 지정의 가능여부를 결정한다고 볼 수는 없다. 정당들이 긴급한 민생법안임을 고려해 5분의 3의 찬성 인원을 확보하도록 타협했다고 강조할 수는 있다.

하지만 법안의 성격이 패스트트랙 대상 안건을 선별하는 기준이 되진 않는다. 현행 국회법 상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을 선별 혹은 제한하는 기준이나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민생법안을 지정한다는 관행이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전진영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관행이란 제도가 오래 운영돼야 얘기할 수 있는 것"이라며 "패스트트랙은 관행을 말하기엔 사례가 너무 적다"고 말했다.

③패스트트랙 지정 범위에 대한 지적은 일리 있어

국회입법조사처(입조처)가 2017년 3월 발행한 보고서 '국회 안건신속처리제를 둘러싼 쟁점과 개선과제'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무역이나 전쟁, 핵무기비확산 등 외교와 국방 분야에서 패스트트랙 제도를 인정하고 있다. 안건이 한정돼 있는 셈이다. 보고서는 “국가안보나 외교분야, 또는 위헌결정에 따라신속한 법률개정이 필요한 사항 등으로 대상을 제한해서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해야한다”며 우리나라의 경우도 패스트트랙의 대상범위를 좁힐 것을 제안한다.

원혜영 민주당 의원과 입조처가 2012년 공동주최한 세미나 ‘국회 선진화법과 제19대 국회운영 전망’ 발제에 따르면 영국도 패스트트랙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영국도 경제위기나 테러리즘과 관련된 법안들을 신속입법으로 처리했다. 영국정부는 2009년 비디오 녹화법를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면서 헌법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상, 하원에 해당 안건의 패스트트랙 지정 사유와 명분에 대한 서면설명서를 제출했다. 



한국 국회의 패스트트랙 제도는 대상이 되는 안건에 대한 규정은 전혀 없다. 입조처를 포함해 학계에서도 이를 현 패스트트랙 제도의 맹점으로 지적한다. 패스트트랙은 여야 합의와 위원회 심사라는 대의 민주주의 절차를 뛰어넘는 제도이기에 안건 선정의 기준을 정해서 신중히 적용해야한다는 얘기다. 나 원내대표 역시 입조처 자료를 바탕으로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증결과]

현행 국회법은 패스트트랙 안건의 지정 범위에 대한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는다. 패스트트랙 제도는 시행 사례가 적어 민생법안을 두고 관행이라 말할 수도 없다. 따라서 '패스트트랙은 민생문제를 다루는 제도'라는 나 원내대표의 발언은 구속력이 있는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다만 긴급한 민생현안이 아니라 ‘게임의 룰이 되는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상정할 수 있냐’는 지적은, 현 패스트트랙 제도에 적절한 비판이 될 수 있다. 패스트트랙 안건 지정의 범위와 기준은 추후 논의가 필요한 부분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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