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20대 국회의 양보

[the300]

박재범 정치부장 l 2019.03.27 04:25

알고 싶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았다. 내 직책이 정치부장이 아니었으면 굳이 ‘공부’하지 않았을 거다.

여야 4당이 합의했다는 선거제 개편안.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인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국민들은 산식(계산법)이 필요없다. 다 알 필요는 없다”고 말한 그 제도다. 오만한 발언이라 여겼는데 ‘교과서’를 펼쳐보니 고마운 말이다 싶었다.

고차 방정식 수준을 넘는다. 머니투데이 더(the) 300 기자들은 ‘미적분 선거제’라고 했다. ‘미적분 몰라도 사회생활 하는데 불편함 없다’는 학창시절 넋두리를 떠올린 것이리라.

투표, 선거는 사실 수학의 영역이다.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후보가 당선되는 최다득표제(다수결)는 보편적·효율적이다. 하지만 과반 지지를 못 받는 이가 선출되는 대표성의 문제, 다수가 싫어하는 사람이 당선되는 모순 등이 존재한다.

이 불합리한 제도를 없애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프랑스 혁명기에 활동했던 장 샤를 보르다와 콩도르세는 새로운 선거방법을 찾기 위해 연구에 골몰한 대표적 인사들이다. 보르다는 ‘보르다 점수법’을 만들었다. 선호 순위에 따라 차등화된 점수를 부여한 뒤 합산해 높은 점수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이다. 프로야구 MVP 선정 때 활용된다.

콩도르세는 ‘콩도르세 역설’ ‘투표의 역설’로 유명하다. 선거 결과가 유권자의 선호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결선 투표제도 적잖은 허점을 갖고 있다. 결론은 완전한 선거 제도는 없다는 거다.

고민의 출발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표(死票)의 문제점, 표와 의석의 불비례성 등은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실제 2016년 4·13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의 전체 득표율은 25% 남짓이었는데 의석은 41%(123석)를 차지했다.

정치권이 모델로 삼은 것은 독일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여야 4당이 제안한 것도 언뜻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연동형인데 50%다. 50% 연동형이란 말은 반대로 50% 비연동형이란 말과 같다. 여기에 6개 권역을 붙이고 석패율 제도를 더하면 ‘수포자’가 아닌 수학 박사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혹여 노벨수학상이라도 받을까라는 기대를 했던 것일까.

수학의 문제가 아니라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한다. 정치의 문제다. 표의 대표성을 강조하면서 정작 과정의 대표성, 제도의 대표성을 외면한다. 민감한 문제를 ‘이해 관계자’가 모여 주물럭거린다. ‘결단’ ‘타협’ ‘양보’ 등 그럴싸한 레토릭을 쏟아낸다.

이해관계자가 모여 푸는 방식은 새롭지 않다.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대타협기구를 구성하는 식은 옛 패러다임이다. 한때는 신선했지만 유행은 지나간다. 이해 관계자들이 모여 타협을 이루면 진일보라고 착각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다만 그 합의와 타협이 선의라는 믿음은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묻고 싶다.

카풀 사회적 대타협기구의 사례처럼 정책 수요자이자 고객인 국민은 배제한다. 촛불을 경험한, 직접 소통하고 민주주의를 논하는 국민들에겐 싱겁다.


헌법에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적혀 있지만 정치권은 ‘국민=표’ 정도로만 생각한다. 실제 국민이 행사할 권력이 ‘표’ 이외에 딱히 없기도 하다. 그래서 일단 그 권력을 사용해야 한다.

표로 권력을 행사할테니 그 뒤 만들어진 21대 국회가 새 헌법과 새 제도를 만드는 게 낫다. 선거제를 놓고 여야가 서로 양보하라고 티격태격하는데 국민은 국회의 양보를 원한다. 촛불 이후 개헌조차 못한 20대 국회의 양보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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