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97조원 기업에 '벌금 500만원'…저공해차 누가 만들까

[the300][법안이 말한다]미세먼지법, 사업장 실시간 감시 '기대'…저공해차 의무판매제는 '글쎄'

이원광 기자 l 2019.04.03 04:30

#나는 미세먼지법이다.

나는 ‘미세먼지법’(대기관리권역의 대기환경개선에 관한 특별법)이다. 외딴 곳에서 매캐한 연기를 내뿜는 공장들을 보면서 세상에 나오기로 마음 먹었다. 

공장 밀집지역 등을 대기관리권역으로 지정해 상시 들여다 볼 생각이다. 현재 수도권에만 적용 중인 ‘대기관리권역 지정 제도’를 사실상 전국으로 넓혀갈 계획이다. 

미세먼지 배출 지역 뿐 아니라 인접 지역도 한 데 묶어 통합 관리한다. 관리 대상을 대기관리 ‘지역’이 아닌 대기관리 ‘권역’으로 정한 이유다. 미세먼지가 공기를 타고 이동하면서 배출 지역은 물론 인접 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석탄화력발전소가 밀집된 충남 인근 지역들이 연일 미세먼지로 고통 받는 것이 그 예다. 

해법은 미세먼지 배출량 자동 측정기다. 대기관리권역으로 지정되면 이 지역의 모든 오염물질 배출 사업장은 해당 측정기를 반드시 부착해야 한다. 오염 물질이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총량을 제한하기 위해서다. 

이른바 ‘오염물질 총량관리제’다. 자동측정기 부착 비용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한다.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 공장들의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려고 애썼다.

도로 위에서 배기 가스를 내뿜는 노후 경유차도 관리 대상이다. 대기관리권역에 등록된 특정 경유차는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의무적으로 달아야 한다. 논란을 피하기 위해 특정 경유차는 배출가스 보증기간이 지난 차량으로 특정했다. 장치를 달지 않으면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따라 운행이 제한된다.

공사 현장의 비산 먼지도 잡는다.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이 대기관리권역에서 토목·건축 사업할 경우 노후 건설 기계에 해당 장치를 부착해야 한다. 공항 운영자도 항공기 이착륙 시 배출되는 미세먼지 등에 대해 스스로 개선 계획을 수립하고 시·도지사 승인을 받아야 한다.

#대기환경보전법, 든든한 조력자

내 동생은 든든한 조력자다. 이름은 ‘대기환경보전법’이다. 내가 전국 사업장과 건설현장, 공항 등의 미세먼지 배출을 ‘제한’한다면 내 동생은 저공해 차량 ‘확대’에 집중한다.

동생은 국내 자동차 사업장에 매년 저공해 차량의 보급목표치를 정하고 환경부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이른바 '저공해차 의무 판매제'다. 위반 시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이 제도를 전국에 도입하겠다는 동생 뜻에 따라 저공해 차량의 정의 규정도 동생에게 넘겼다.

동생은 형을 위해 '대기환경규제 지역' 제도를 과감히 포기했다. 대기관리권역 제도와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다. 기존 대기환경규제 지역에 해당했던 수도권과 구미·부산, 광양만 등 지역은 대리관리권역으로 관리되며 충남권과 충북의 일부 지역도 새롭게 포함될 전망이다. 전국을 대기관리권역 시스템으로 통합 관리하기 위한 법적 준비가 마무리된 셈이다.

또 성능 저하를 우려해 배출가스 저감장치 등을 개조하거나 훼손하지 못하도록 했다. 내가 노후 차량의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의무화했다면 동생은 처벌 조항으로 보완했다. 노후 경유차와 건설기계에 대해 저공해 조치할 경우 예산 지원이 가능하도록 했다.

#국민 분노에 ‘화들짝’…“일단 국내부터”

“미세먼지가 중국 탓인가, 국내 탓인가” 나는 이런 소모적 논쟁보다 실천에 힘쓰기로 마음 먹었다. 최악의 미세먼지 사태는 중국의 영향이면서도 국내 오염물질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중국발 미세먼지는 정부와 중국 당국 간 공조에 맡겨 둔다. 

환경부는 중국 당국과 △고위급 정책협의체 설립 △대기질 예보에 대한 기술교류 △엑스포 개최 △인공강우 기술도 공유 등을 추진하는 상황이다. 난 당장 실현 가능한 국내 미세먼지의 저감에 힘쓸 생각이다. 

실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문위원실이 2017년 9월 작성한 ‘전국 PM2.5(지름 2.5㎛ 이하) 초미세먼지의 부문별 배출량 현황’ 자료를 보면 국내 PM2.5 배출량 28만2770톤 중 40.8%가 제조업·폐기물 처리 등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이어 △건설기계 등 비도로 이동 오염원(16.7%) △발전소 등 에너지산업연소(14.1%) △경유차 등 도로 이동오염원(12.3%) △비산먼지 등 생활주변 오염원(10.8%) △냉난방(5.4%) 등 순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인력과 장비 부족을 이유로 5만여곳의 전국 대기배출 사업장 사실상 ‘단속 사각지대’에 방치됐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 대기배출 사업장 5만7500곳 중 4·5종의 소규모 사업장이 전체 90.4%(5만2004곳)에 달하지만 상시 단속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1~3종의 중대형 사업장 5496곳 중 3.3%만 굴뚝자동측정기를 부착해 실시간 감시하는 데 그친다.

모두의 응원 속에 우리가 탄생한 배경이기도 하다. 우리 형제 법안은 여야가 미세먼지 관련 법안 처리에 합의한 지 6일만에 국회 본 회의 문턱을 넘어섰다.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된 지 하루만이다. 당시 나경원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 논란으로 국회가 경색 국면에 빠졌으나 환노위는 여야 구분 없이 40여개 법안을 일괄 상정해 처리했다. 

#매출액 97조원, 벌금은 500만원…남은 과제는?

과제도 남았다. 내가 제 역할을 하려면 대기관리권역의 지정 기준이 더 정교해져야 한다. 해당 기준이 높으면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진다. 반면 지나치게 낮으면 전국 사업장의 영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 미세먼지가 한 풀 꺾인 상황에서 경기가 바닥을 치면, 내가 제조업 침체의 장본인이라는 오명을 쓸 우려가 있다. 

대기관리권역으로 지정되면 미세먼지 배출 지역 뿐 아니라 인접 지역까지 강도 높은 관리·감독을 받는다는 점에서 측정 방법의 설계도 중요하다. 환경부가 미세먼지 측정 방법과 해당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밤샘 회의를 이어가는 이유다.

내 동생의 근심은 더 깊다. 2020년부터 저공해차 의무 판매제를 전국적으로 시행하지만 위반 때 벌금이 미미하다. 자동차 회사에 매년 저공해자동차 보급계획서를 작성하고 환경부 승인을 받도록 했는데 벌금은 500만원 수준이다. 지난해 국내 자동차업계 1위 기업인 현대자동차의 매출액은 96조8126억원 규모다.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도 고민이다. 당초 환노위는 저공해차 보급계획보다 생산량이 부족할 경우 1대당 과징금을 매기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논의 끝에 심의 과정에서 삭제했다. 현재 일부 업체가 저공해차를 시범 제작하는 현실과 업계 부담 등을 고려했다.

환경부는 저공해차 보급목표 미달성 기업에 대한 조치 방안을 마련 중이다. 특히 해외 사례를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미국은 10개주에서 연 판매량 4500대 이상 기업에 의무 판매제를 적용한다. 또 의무판매 비율을 전체 생산량 대비 7%로 2025년까지 22%로 높일 계획이다. 실적 부족분당 5000달러(약 568만원)의 과징금을 부여한다. 캐나다와 중국 역시 올해 각각 6%와 10%의 의무판매비율을 적용한다.

환노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한정애 의원은 “관계부처, 업계와 논의를 거치는 한편 오는 6월 과징금의 형태와 도입 시기 등을 환경부로부터 보고 받기로 했다”며 “깨끗한 대기 환경을 만드는 데 국회가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실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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