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5·18 왜곡 처벌법, 홀로코스트 부정법과 다르다고?

[the300][5·18 특별법 팩트체크]<上>제노사이드가 아니라 ‘인도에 반한 죄’ 여부로 봐야

이의진 인턴기자, 이재원 기자 l 2019.04.10 07:00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지만원 5.18 북한특수부대 개입 주장 관련 피해 탈북자 기자회견'에서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과 피해자들이 증거조작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이 지난 2일 한 토론회에서 "여야4당이 2월22일 발의한 5.18 왜곡 처벌 특별법(이하 5.18 특별법)이 독일 홀로코스트 부정 처벌법(이하 홀로코스트법)의 한국판이다"는 주장에 대해 “명백히 다르다”고 밝혔다.

하 최고위원은 홀로코스트법은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것을 처벌하는 법”이라며 “이민족에게 행한 제노사이드에 대한 것으로 특수한 사례다"고 했다. 5.18 민주화운동의 경우 중요한 민중항쟁이지만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완전한 절멸시키는’ 제노사이드로 볼 수 없기에 홀로코스트법을 국내에 적용할 수 없다는 논리다. 과연 사실일까.


[검증대상]

 

해당 인터뷰 및 취재를 통해 확보한 하 최고위원의 주장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각각을 검증한다.

 

홀로코스트법이 다루는 역사적 사실은 제노사이드뿐이다.

광주민주화운동 무력진압이 국제적 기준에서 역사부정처벌법의 대상 사건이 되긴 힘들다.

민주화운동 탄압을 두고 역사부정처벌법을 만든 사례는 없다.

 

[검증방법]

 

역사부정처벌법에 어떤 사건이 해당될지 선정 범위에 대한 학계 논의 확인

5.18의 국가폭력 사태를 국제법 상 ‘인도에 반한 죄’로 볼 수 있는지 여부 확인

민주화운동 탄압에 역사부정처벌법을 만든 사례 확인 및 각 사례 별 평가

 

[검증과정]

 

제노사이드만 해당되니까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어렵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월13일에 주최한 토론회 ‘5・18 망언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에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가 발제한 내용에 따르면 역사부정처벌법은 유럽에서 특별히 홀로코스트나 제노사이드 부정 및 왜곡을 처벌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를 실시하는 국가는 △오스트리아 △벨기에 △체코 △프랑스 △독일 등 18개 유럽국가와 이스라엘 등이다. 하 최고위원의 말처럼 현존하는 역사부정처벌법들이 제노사이드를 염두에 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홍 교수에 따르면 처벌 대상이 되는 사건을 제노사이드가 아닌 ‘반인륜적 범죄’로 추상적으로 규정한 경우도 있다. 이와 관련해 법의 대상으로 ‘전쟁범죄, 집단살인 등 주로 심각한 인권침해와 관련된 국제법상의 중대한 범죄’를 선정하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이러한 사건들이야말로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보존할 가치가 있는 기억이라는 입장이다.

 

국제법에선 2002년 로마 규정에 따라 제노사이드와 더불어 침략 및 전쟁범죄와 ‘인도에 반한 죄’를 “인류 공동체 전체에서 가장 심각한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제노사이드 외에 인도에 반한 죄에 해당하는 사건을 부정할 수 없는 역사로 지정하는 것 역시 무리가 없다고 볼 수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인도에 반한 죄로 볼 수 있나


현재까지 사법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현장의 인권유린과 폭력보다는 가해자들의 반란, 내란 행위에 초점을 맞춰 판결한 상태다. 이에 최용주 5.18 기념재단 연구원은 작년 7월에 발간한 논문에서 “내란죄 성립 여부와 별도로 국제인권법 상 인도에 반하는 범죄 성립 여부를 판단하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을 인도에 반한 죄로 볼 수 있을까.

 

이재승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화운동 탄압을 인도에 반한 죄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교수는 “독일의 경우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홀로코스트를 국제법 상 인도에 반한 죄로 판결했다”며 “역사부정처벌법은 그 판결을 부인하는 것과 연결돼 있다”고 해당법의 취지를 설명했다. 5.18 관련자들이 국내 재판을 받았기에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국제법으로 재판결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 교수는 역사를 소급해서 인도에 반한 죄 여부를 따져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출처 : 김상걸, 인도에 반한 죄 구성요건과 유형에 대한 고찰, 국제법 평론, 2017


구체적으로 로마 규정 7조를 살펴보면 인도에 반한 죄는 민간인을 의도를 가지고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한 경우를 뜻한다. 권오곤 전 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탄압이 이 요건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권 전 재판관은 2014년 사법정책연구원 학술회의에서 민주화운동 탄압을 두고 “일정한 군부의 정책 내지 방향에 따라 민간인에 대한 체계적일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공격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의 희생이 있었다면, 전형적인 인도에 반한 죄”라고 못박았다.

 

민주화운동 탄압을 두고 역사부정처벌법을 만든 사례는 없지만

 

하 최고위원은 또한 “제노사이드가 아닌 민주화운동 탄압에 역사부정처벌법을 만든 사례는 없다”는 사실을 법제정 반대의 근거로 들었다. 실제로 영국, 미국을 포함한 영미권과 유럽 국가들을 포함해서 동아시아 및 남미 국가들을 조사해본 결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벌어진 탄압과 학살을 두고 역사부정처벌법을 제정한 국가는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각 국의 역사부정죄 현황을 서술한 ‘Genocide Denials and the Laws’(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 2011)에도 관련 사례는 없다.

 

문제는 각 국가의 사정이 다르다는 점이다. 아르헨티나에서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학살과 인권탄압이 벌어졌으나 역사부정처벌죄는 도입되지 않았다. 그러나 1984년 진실위원회가 결성됐고, 진실규명 활동을 펼쳐 1500여 건의 인권탄압 사례를 사법기관에 넘겼다. 칠레 역시도 20여년에 걸친 진실규명 작업으로 군부독재 기간의 국가테러와 인권유린 사태를 공식 기록으로 남겼다.

 

몇몇 국가들은 역사부정처벌법을 제정하기 전 이미 국가적으로 기록 합의를 완결하기도 했다. 이에 최 연구원은 “역사부정죄는 제노사이드에만 해당된다는 국제법규나 규정이 없다”며 “국가별로 논의 수준이 다른데 입법 사례가 없다고 한국에서도 그래선 안 된다고 일반화하는 얘기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없다’과 ‘안 된다’를 구별해야한다는 지적이다.

 

[검증결과]

 

하 최고위원이 역사부정처벌법을 반대하는 근거로 들었던 ‘논거’들은 모두 사실이다. 역사부정처벌법을 시행하는 국가는 모두 제노사이드를 다루며, 민주화운동 탄압에 역사부정처벌법을 입법한 국가는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이 성립하는 맥락을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역사부정처벌법의 대상 사건을 제노사이드가 아니라 인도에 반한 죄로 보는 게 적절하다. 실제 1945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도 홀로코스트 가해자들은 제노사이드가 아닌 인도에 반한 죄로 기소됐다. 제노사이드의 개념이 등장한 것은 3년 뒤인 1948년이다.

 

홀로코스트법과 같은 역사부정처벌법이 다루는 사건이 제노사이드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제노사이드가 역사부정처벌법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인도에 반한 죄' 인지의 여부가 중요하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제노사이드는 아니지만 인도에 반한 죄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이다. 따라서 하 최고위원의 발언을 완전한 진실로 볼 수 없기에 ‘대체로 사실 아님’으로 판정한다.

 

한편 하 최고위원은 위의 논거들과 별개로 역사부정처벌법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 최고위원의 근거를 반박한 여러 학자들도 이에는 공감하여 5.18특별법 제정에 우려를 표한다. 요컨대 특별법은 제정할 수 있는지, 상황에 대한 판단과 제정해야 하는지, 당위에 대한 판단이 다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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