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 말라” …김정은 대남 압박에 '딜레마'

[the300] 文대통령 '중재 노력' 북미협상 기여 …'하노이 노딜' 후 태도 바꿔

최태범 기자 l 2019.04.15 14:45
【서울=뉴시스】북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1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에서 한 시정연설을 했다며 13일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2019.04.13. (출처=노동신문) photo@newsis.com

북미협상의 중재자로 남한을 바라보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인식이 변했다. 지난해 1차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킬 때 남한은 ‘책임 있는 중재자’였지만 올해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뒤에는 ‘오지랖 넓은 중재자’가 됐다.

지난해 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을 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긴급 만남을 요청했다. 남북정상은 5월 26일 판문점 내 북측지역인 통일각에서 비밀리에 회담을 가졌다. 제안 이후 12시간 만에 이뤄진 회담이었다.

김 위원장은 2시간여 진행된 회담을 마친 뒤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문제에 우리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우리가 각자 책임과 본분을 다해 준비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북미정상회담의 성사에 있어서 남한의 책임있는 중재 역할을 요청한 것이다.

1차 정상회담 후인 지난해 8월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 취소 등 북미관계가 출렁일 때도 북한은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으로 활로를 모색했다. 올해 2차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 문 대통령의 중재 노력은 상당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남한을 대하는 북한의 태도가 돌변했다. 4.27 판문점 선언의 합의사항이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북측 인원을 일방적으로 철수하는가 하면, 9.19 군사합의에 따라 이번 달부터 실시하기로 했던 공동 유해발굴도 착수하지 않았다.

특히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한에 대한 압박과 비난성 발언을 쏟아내며 기존에 쌓아왔던 남북관계를 크게 흔들었다. 

김 위원장은 “(남측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한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의 인식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문 대통령의 운신 폭도 좁아지는 형국이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4차 남북정상회담→3차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질 것 같았던 대화 흐름에도 난항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북미 정상간 3차 회담에 대한 의지는 확인됐지만 구체적인 비핵화 협상방식(일괄타결 vs 단계적 해법)에서 여전히 간극이 큰 상황이다. ‘내 편을 들라’는 북미 사이에서의 딜레마다. 

북한의 대남 압박은 연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김 위원장이 “연말까지 미국의 용단을 기다린다”고 언급한 것과 맞물려 남한에 대한 압박성 발언도 지속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김 위원장 자신이 하노이에서 했던 실수(노딜) 때문에 한국 정부도 싸잡아서 외부의 탓을 하고 명분을 만드는 것”이라며 “김 위원장의 비외교적 발언에 대해 우리 정부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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